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9
홋카이도 대학에서 나와 오도리 공원을 따라 걸었다. 몇 블록이고 이어지는 긴 공원을 따라 끝없이 나오는 가을축제의 음식 창구들을 구경하면서도 와, 바가지네 하며 지나가기만 하다보니 어느새 속이 허해졌다. 거리 구경도 할 겸 숙소까지 슬슬 걸어가도 상관없다 싶었지만, 강경 못.걷.겠.다. 파들이 우세해서 전철로 두 정거장을 이동했다. 역 주변 이온몰에서 안주거리를 왕창 집어 들고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획 담당을 자청해서 기차를 어떻게 타야 할지 시뮬레이션 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던 나와는 달리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한 세 분은 숙취가 좀 있어 보였다. 특히 남편. 뭐, 마시는 동안은 행복했겠지.
친구가 부른 우버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서 요이치행 기차에 올랐다. 세 숙취인들 사이에서 내 머릿속은 너무 분주했다. 일어가 아닌 영어로 검색해서인지, 아니면 정보들이 불친절한 것인지 온라인으로 찾은 일본 정보들은 사실과 다를 때가 너무 많았다. 기차도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고 이해했으나, 실제로는 가서 예약 없이 타는 것도 (특히 짧은 구간의 경우에는) 큰 문제 같지 않았다. 지정석 예약비가 표값 이상으로 비쌌기 때문에 웹사이트를 뒤져 몇 편 되지 않는 완행 시간에 맞춰 간 건데, 나중에 역에 가서 알아보니 급행을 예약 없이 타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아무튼 웹사이트는 친절하지 않았다 쳇.
오타루를 거쳐 요이치로 가는 기차는 바다 바로 옆을 달린다. 창밖으로 계속 보이는 바다가 예쁘지만, 숙취에 시달리는 내 옆의 일인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친구 부부도 만만치 않은 만담 콤비라, 식사며 집에 오는 기차편을 검색하느라 여념이 없다가도 옆에서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찍 나오기도 했고 어제 음주의 여파로 다들 식사를 거르고 나왔기에 혹시 해장할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오... 청어 라멘이란 듣도 보도 못한 라멘이 있네? 리뷰를 봤더니 나쁘지 않다. 해장하고 싶은지 좌중의 의견을 묻고 마침 예약해 둔 투어 시간도 여유가 있어 파파고로 "45분 안에 먹을 수 있나요?"를 찾아 입구에서 보여주었더니 흔쾌히 문제없다고 한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게 되어 있었다.시오와 미소가 있어 몇은 시오로, 몇은 미소로 주문했다.
아, 그런데 이 라멘집 내부 인테리어가 심상치 않다. 멋진 긴 석재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돌로 만든 테이블 매트 위에서 라멘을 먹도록 해 두었다.
나온 청어 라면은 본인의 정체성이 청어라는 걸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국물 한 모금 한 모금이 나 청어!라고 부르짖으면서. 얇은 면은 익힘 정도가 좋았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옆에서 먹던 남편이 화장실을 간다. 그릇을 보니 어라, 국물을 다 남겼네? 흔하지 않은 일인데. 입에 정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나중에 모두에게 물어보니 좋은 경험이긴 했지만 다시 먹으러 오진 않아도 되겠다 정도의 평이었다. 특히 남편은 큰 충격을 받은 듯 ㅋㅋㅋ 그래도 해장은 얼추 된 것 같아서 나는 만조쿠.
닛카 위스키 투어는 아주 좋았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투어에서의 언어 소통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다.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서는 프리미엄 투어 (1000엔)에 오디오 번역기 (유료, 500엔)까지 추가로 대여했음에도 어색한 표현과 타이밍 때문에 내용을 따라가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닛카 양조장에서는 휴대전화를 통해 가이드의 스크립트를 타이밍에 맞춰 그룹 채팅처럼 보내주었다. 무료였는데, 유료였다 해도 불만이 없었을 만한 구성이었다. 심지어 농담까지 전부 스크립트에 포함되어 있어 다들 웃을 때 함께 웃을 수도 있었다.
홋카이도여서 더 그랬겠지만, 일본의 많은 관광지나 온천 호텔들이 내수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명확했다. 그래서인지 웹사이트나 투어 상품에 외국인을 배려한 부분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닛카의 투어는 모두를 배려한 느낌이었고, 덕분에 투어를 100퍼센트 즐길 수 있었다. 남의 나라 관광 상품에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지만, 뭐 그렇다는 거지.
투어의 대미는 역시 시음.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는 통창 앞에서 마신 싱글 몰트 요이치, 좋았다. 세 가지 위스키를 가이드가 제안한 대로 조금씩 맛을 보았다. 청어 라멘이 해장 효과는 있었는지 남편도 룰루랄라 시음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