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도시 - 하코다테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19

1월부터 시작된 일본어 수업 때문에 브런치 글 쓸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지난 연말 휴일 동안 글을 몇 편 미리 써 두고는 한동안 손대지 못했다.


남편이 꼼꼼하게 매일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나는 남편이 쓴 글과 연결되면서도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사진으로 기억을 끄집어내서 기록 위주로 작성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회가 며칠 전 발행한 남편의 글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느낌이었지만 (한 여행, 두 개의 시선) 그래도 결이 다르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사진들도 거의 같은 것들로 써서인지 정말 너무 똑같다. 한 여행, 거의 하나의 시선일세.


남편에게 사진을 죄다 썼다며 욕심쟁이라고 구박을 한 뒤(장난입니다...), 이 글을 폐기할지 새로 쓸지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두 사람의 글을 모두 읽는 분들이 많지 않을 수 있겠다는 (당연한) 가정하에 그냥 발행하기로 했다. 대신 글 말미에 요즘 일본어 수업을 들으며 선생님들과 일본인 동료들을 통해 알게 된 교과서 밖 팁 몇 개를 부록으로 붙여 보려 한다... 후훗.






오늘 아침도 따뜻한 호지차 한 잔과 목욕. JR Inn은 천연 온천수가 아닌 수돗물을 사용하는 대욕장이지만, 아침저녁으로 몸을 덥히고 피로를 풀기에는 충분했다. 대욕장 한편에는 천장 부근이 트인 작은 노천탕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 창밖으로는 우리 방에서 보이는 것과는 반대편인 기찻길 풍경이 내려다보였고, 시간을 잘 맞추면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도 볼 수 있었다.




Oct8.jpg 라운지. 그런데 알고보니 이 사진엔 슬픈 사연이 있더군요. 다음 다음회를 기대하세요...



호텔의 대욕장과 라운지는 꼭대기 층인 12층에 자리하고 있다. 라운지의 커다란 통창 너머로는 확대된 항구의 전경이 펼쳐졌다. 삿포로 미나미점처럼 라운지에 커피 머신이 비치되어 있었으나, 고장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대신 로비에서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제공한다고.





8시쯤 호텔을 나서 시장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상점에서 성게, 게, 연어알 등을 깨끗하게 손질해 팔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에 뭔가 했더니, 수조에서 오징어를 낚으면 손질해 주고 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든 이벤트 공간이었다. 본인이 직접 낚은 생선도 눈이 마주치면 못 먹는 남편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후다닥 내뺀다. (반전: 남이 잡아주는 건 아쥬 잘 먹음...)



20251008_075856.jpg 오징어 낚시 코너




시장 안쪽 소박한 식당가에는 생선을 굽거나 튀겨 파는 푸드코트 스타일의 식당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아침을 먹을까 하다가, 길 건너편에 하코다테 관련 유튜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럭키 피에로'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일찍 열었기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기 줄이 그리 길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앞에 몇 사람 없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갔을지도.



20251008_083654.jpg 범상치 않은 비주얼. 아유 정신 없어



카운터에 가 보니 줄이 줄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메뉴 옵션 등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고 현금만 받는다.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시간도 일반 패스트푸드점들보다는 조금 더 길다. 덕분에 기다리는 줄은 길지만 테이블은 여유가 있다.



oct8c.jpg
Oct8b.jpg
이 집의 시그니처라는 차이니즈 치킨 버거와 새우 마요 버거, 그리고 생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치킨 버거는 간장 치킨을 빵 사이에 끼운, 예상 가능한 맛. 그런데 이제 짠.

새우 마요 버거는 좋았다. 적당량의 양상추와 함께 신선한 맛의 마요네즈가 아주 듬뿍 들어있어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쟁반을 직접 닦으라는 안내문과 함께 물수건이 마련되어 있어, 다 먹은 뒤에는 (조금) 투덜대면서 뒷정리를 열심히 하고 가게를 나왔다.









이날은 찐 관광객 모드로 열심히 걸어다녔다. 먼저 향한 곳은 하치만자카.


oct8d.JPG

언덕 위에서 바다까지 탁 트인 풍경이 아름다워 여러 광고 및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란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드라마인 <런치의 여왕> 마지막 회에도 등장했다고 하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완벽한 데미그라스 소-스를 만들기 위한 여정 뿐...)




oct8f.jpg
oct8g.jpg
oct8h.jpg
예전 모습이 남아있는 모토마치 언덕을 따라 걷다보면 예쁜 색의 하코다테 공회당이 나온다.





oct8j.jpg






10월의 홋카이도답지 않게 초여름 같은 날씨다. 한참을 걷다 보니 차가운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근처 로스터리 카페를 검색하니 걸어갈 만한 거리에 한 곳이 눈에 띄었다. 매장 내 사진 촬영이 금지라며 투덜대는 리뷰가 많았는데, 요즘 같은 인스타그램 시대에 참 뚝심 있는 주인장이네.


카페는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가와 중앙에 테이블이 하나씩 있고, 바 좌석이 조금 마련된 아담한 공간이었다. 여러 원두 중 가장 산미가 있는 라이트한 원두로 아이스커피를 부탁드렸다. 시간을 들여 내려주신 커피를 기대를 품고 한 입 머금었는데, 와, 맛있다. 입안 가득 은은한 과일 향이 퍼졌다.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밴쿠버에도 훌륭한 카페가 많지만, 내 기억 속 베스트 몇 곳은 일본에 있다. 여행지에서의 증폭된 감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내 입맛이 이쪽인 건지 모르겠지만.


바리스타의 솜씨를 온전히 따라갈 순 없겠지만, 집에서라도 이 맛을 흉내 내보고 싶은 마음에 원두도 주문했다.

그런데 뒤에서 계속 '토독토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라벨지에 타이프라이터로 원두 품종을 한 자 한 자 정성껏 치고 계신 게 아닌가. 서너 봉지 정도가 되는 분량을 주문한 터라, 타이프라이터 소리는 한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그 정성 어린 수고로움을 듣고 있자니 나중엔 조금 죄송한 마음이 ㅎㅎ



IMG_2624.JPG 이렇게 많은 내용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쳐 주셨어요. 독수리 타법으로.







oct8k.jpg
oct8e.jpg
oct8i.jpg
오징어 하코다테 오징어 하코다테



아침에 버거를 하나씩 해치웠음에도 꽤 걷고 커피까지 마셨더니 배가 고파졌다. 일본에 왔으니 스시 한 번 먹어야지 싶던 차에, 남편이 봐 둔 바다 바로 옆 스시집이 있다고 한다. 거리가 좀 있어 노면 전차를 탔다.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앉을 수 있었다.




oct8m.jpg
oct8l.jpg
생맥주를 곁들여 양껏 먹고 9,000엔 정도 지출



맛있다... 특히 밴쿠버에서 흔히 먹던 거라 별도로 주문하지 않았던 연어가 모둠 접시에 포함되어 나왔는데, 한 입 먹어보니 정말 고소해서 눈이 번쩍. 남편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바로 추가 버튼을 눌렀다.

후일담이지만, 밴쿠버로 돌아오니 스시가 맛이 없다. 예전엔 기쁘게 먹던 맛이었는데 일본에서 먹어본 맛과 비교하게 되니 성에 안 찬다.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의 여행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네.






그럼 부록으로다가 공부 3주 차에 주워들은, 저로서는 신기했던 일본어 이야기 몇 가지를 나누기로 하죠. 일본어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니 자연스레 관련 화제들이 대화에 오르네요.


さよなら(사요나라): 보통 오랫동안 못 볼 사이에 쓰는 작별 인사라고 하고, 심지어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오지만 사실 내일 만날 사람에게도 흔히 쓴다고 하는군요. 선생님에게 듣고는 제 동료에게 말했더니 그렇다면서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칠 때마다 さよなら!를 외쳐대고 있습니다.

こんにちは(콘니치와): Good afternoon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오전 10시경부터 저녁 때가 될 때까지 거의 하루 내내 쓸 수 있다고 합니다.

おじいさん(오지이상)과 おじいちゃん(오지이짱): 할아버지를 뜻하는 말인데 어떤 어르신들은 '오지이상'이라고 하면 너무 멀고 어려운 느낌이라 '오지이짱'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일본 동료의 딸이 할아버지를 그렇게 부른대요.

しちじ(시치지)와 ななじ(나나지): 숫자 7은 なな(나나)인데, 시간을 말하는 일곱 시는 しちじ(시치지)를 씁니다. 그런데 기차역 등에서 안내방송을 할 때는 헷갈리지 말라고 ななじ(나나지)를 쓰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시간과 분을 표시할 때 변화형이 엄청나게 많던데, 뭐가 더 나은 표현인지 선생님께 여쭤보니 다 쓰고, 다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말을 알아듣긴 하지만 잘 하지는 못하는) 한국계 동료에게 투덜댔더니 , "서른 살"이라는 표현이 더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 저에게 투덜대더라고요... 깜짝 놀랐다네요, 껄껄.


그럼 여기까지 하고, 완전 초짜 일본어학도의 '(나만?) 신기한 일본어'는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