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을 걸어 - 하코다테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21

하코다테에서 이동하는 날이다. 오늘도 여전히 일찍 일어나 온천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간다. 해장 겸 국물을 먹어야겠다 싶어 라멘집을 검색해 봤더니, 바로 앞 시장에 새벽부터 라멘을 파는 집이 있다.




函館味の一番 (하코다테 아지노이치방)의 아침 세트메뉴



남편의 미역 라멘과 나의 라멘, 미니 카이센동 세트까지 합쳐서 2,865엔. 이른 아침에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저렴한 가격은 좋았지만, 이름처럼 '이치방(一番, 최고)'까지는 아닌 걸로. ㅎㅎ



밥을 먹고는 항구 쪽을 잠시 산책했다.


예전 선박을 페리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다






호텔로 돌아가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여기도 체크아웃 시간이 10시로 이른 편이다.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밖으로 나선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덥다. 홋카이도의 10월 중순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반팔로 다녀도 전혀 무리가 없다. 기차 시간이 오후니, 그전에 하코다테 동쪽 해안을 따라 다녀보기로 한다.








이 부근엔 관광객이 많지 않다. 여행지에서 관광지보다 이런 생활의 모습이 담긴 장소를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기 사람들은 주로 무슨 일을 하며 생활을 영위하나 궁금해지곤 한다.



하코다테는 2025년 기준 인구가 234,000명인데, 일본의 많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34만 명이었다고. 지난해 갔었던 도쿄 교외의 친구네 집 동네도 빈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도 그렇다고 한다. (어제 이자카야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하코다테 산 전망대에서 보는 야경이 어두워졌다는 이야기까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척 한적하게 느껴지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걷다 보니 하코다테 공원이 나온다.








平成(헤이세이) 17년 (2005년)에 닫았으나 건물은 비워둔 도서관


분수도 예쁘고 전반적으로 잘 관리되어 있지만, 오래전에 문을 닫은 도서관은 그냥 빈 건물로 보존되어 있다.









조금 돌아보니 어린이 동물원이 있다. 직원분들도 몇 분 보이고 작은 공간에 토끼, 다람쥐 등 작은 동물들이 (주로) 자고 있었다. 보러 온 사람은 우리뿐이다. 하긴, 평일이니. 주말에는 좀 북적거리려나.





세상 쿨한 참수리







어제 커피 로스터리 주인장께서 추천해 주신 돈카츠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생맥주 두 잔과 돈카츠 두 개 해서 4,110엔. 계속 느끼는 거지만 외식비는 밴쿠버에 비해 저렴하다.


돈카츠를 먹고 희희낙락 걸어서 숙소로 돌아온다.



옛날에 전차 신호를 바꾸던 곳이라는 조차탑.





가는 길에 참새 방앗간처럼 편의점에 들러 유산균 음료를 하나 사 마신다. 나는 몇 번 마셔보았지만 남편은 처음 마셔보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 남편이 조용해진다. 보통 이럴 때는 1. 머리가 아프다, 또는 2. 배탈이 날 것 같다, 3. 배탈인 것 같다, 4. 배탈이다…인데.




남편은 장이 약한 체질이다. 꾸준히 복용하는 유산균 덕분에 나아졌다고는 해도 탈이 나는 일이 꽤 잦은 편이다. 이는 우리의 연애사와도 궤를 같이하는데, 나름 유니텔 식도락 동호회(아유, 연식이 너무 나오네요) 회원이었던 나는 첫 데이트 날 그를 내 맛집 리스트 중 하나인 시청 부근 진주집 콩국수로 안내했다. 남편은 별말 없이 콩국수를 먹었고,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폭풍이 시작되었다.


그날 우리는 시청 일대의 화장실을 순회하며 첫 데이트를 채웠다. 삼성플라자와 호암아트홀 (어휴 또 연식이...) 화장실, 참 고마웠어요. 그날부터 시작해 결혼 이후에도 주변의 화장실 파악은 매우 중요했다. 잠겨 있지 않은 화장실 데이터베이스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지금은 화장실 찾기 앱이 있더라고요. 개발자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나저나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단순히 장 때문이 아니라 콩을 싫어해서 콩국수 자체를 먹지 않는다는데, 도대체 왜 말을 안 한거냐고요.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손예진 배우가 감우성 배우 바지에 뭔가 묻은 걸 보고 "똥 쌌어?" 하는 장면을 퍽 좋아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다른 이유로 애정을 담아 그 대사를 쓴다. 오늘 장이 안녕하시냐고. 쓰고 보니 너무 TMI 남발이네요. 하지만 잘 싸야 건강한 법이니까요.


아무튼 하코다테의 마지막 날 오후 그 시간에,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전속력으로 호텔로 향했다. (저럴 때 말 시키면 짜증 냄). 그 폭풍 후 지친 모습이 이전 글 사진에 담겨 있었죠.

그럼 그날의 기록은 여기까지. 남편이 쓴 글을 보고 "와, 이런 드러운 TMI를 이렇게 날린다고?" 했는데, 제가 부창부수를 해버렸네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