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Less, Enjoy Life - 삿포로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23

숙소인 도미인(Dormy Inn) 은 뭐랄까, 운영 방식이 좀 귀엽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해진 루틴이 있어서, 아침에는 로비에 커피 머신을 준비해 두어 자유롭게 에스프레소 음료를 뽑아 마실 수 있게 하고, 낮 시간이 가까워지면 직원분이 머신을 정리한 뒤 커버를 씌워둔다. 숙박비에는 아침저녁으로 제공하는 요구르트나 아이스크림 바, 라면이 추가되는데, 조식을 선택한다면 그 도시가 자랑하는 메뉴를 포함시킨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하지만 귀엽고 정성이 담긴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걸까.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어젯밤 캄캄한 어둠 속 동네를 헤맬 때 홀로 밝게 빛나던 약국을 지나 생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동네를 걷다가 돈키호테 몰 1층 식품코너에서 이것저것 사서 기차에서 먹기로 했다. 연어 마끼와 군고구마,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당고. 아, 이건 그냥 '단짠단짠'이란 단어를 음식으로 만든 거네. 재밌어라.


그렇게 먹거리를 사들고 기차를 (또!) 타러간다. 다음 여행은 숙소 안 옮길 거다. 진짜다.



이제 몇 번 안 남았어. 힘내라구.








우리 취향에 맞춰 구성한 에키밴 ㅎㅎ 으로 간단한 점심을 대신하며 삿포로에 도착했다. 일단 체크인을 해두고, 저녁에 동생 부부와 만날 때까지 동네 구경을 한다. 삿포로 시내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다.



가차 개미지옥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눈길을 끄는 귀여운 존재들을 발견했다.



너 일루 와 봐


Lovot이라는 반려 로봇이다. 요즘 빨래를 개거나 하는 다양한 기능성 로봇들이 발표되던데,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아니다. 그야말로 ‘반려’로봇으로, 본체가 사람의 체온 정도로 따뜻하게 유지되어 사람에게 온기를 전달하고,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문 앞으로 조르르 마중을 나오고,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아한다고 한다. (로봇에게도 '기분'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차치하고...)

머리에 달린 카메라로 사람을 인식하고, 이름을 부르면 주춤주춤 다가온다. 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가장 큰 한계는 에너지원 — 충전 중인 녀석들이 있었다. ㅎㅎ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곁에 머무는 인공지능 로봇은 소설이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술이 정말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느낌이다. 챗GPT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았지만, 이제는 영리하게 AI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주로 업무 이메일의 철자나 문법 체크에 AI를 쓴다. 몇 년 전 업무가 바뀐 후 이메일을 쓸 일이 대폭 늘었고, 다 쓴 후 실수 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소요됐는데, (특히 이민자로서 항상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메일을 작성한 후 보안내용을 제외하고 스펠링과 문법 체크를 부탁하면 순식간에 매끄럽게 다듬어준다. 물론 원한다면 이메일 작성까지도 해 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내 문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리 업무 이메일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써야 직성이 풀린다... ㅎㅎ



최근에는 시스템에서 추출한 복잡한 엑셀 시트에서 필요한 내용만 뽑아 표를 만들어야 했는데, AI에게 물었더니 파이썬(Python) 활용법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게 아닌가. (참고로 나는 파이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안 사람). 못 알아듣는 걸 몇 번이고 다시 물어도 화도 안 내고.


내가 이런 이야기들과 함께 이메일 보내기 전 검토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었는지 남편에게 자랑 섞인 수다를 떨자, 그가 물었다. “그래서, 일하는 시간이 줄었나요?” 참 좋은 질문이에요, 껄껄.






10여년 전, 밴쿠버에는 Work Less Party라는 정당이 있었다.





2003년에 창당해 2017년에 해산한 그들의 슬로건은 "일을 나누고, 지구를 구하고, 실업을 줄이자(Share the work, Save the planet and reduce unemployment)"였다. 내 철학과도 잘 맞아 관심 있게 지켜봤지만, 아쉽게도 선거에서 큰 힘을 얻지 못한 채 사라졌다. 종종 그들이 '일을 안 해서(Work less)' 정당도 해산한 게 아니냐며 농담을 하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이런 움직임을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AI의 도입으로 일자리는 줄고, 실제 업무는 AI가, 그리고 사람은 AI의 업무 결과물을 검토하는 일 정도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줄어든 업무량만큼 적은 사람들만이 일을 하고 누군가는 실직하는 구조가 아니라, 일을 나누어 (예를 들면 주 5일제를 주 2~3일제로 전환) 모든 사람이 여유를 즐기는 삶을 사는 것이 맞지 않을까. 행복을 '더 많은 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즐거운 일에 '시간'을 쓰는 삶 말이다. 그래야만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아무튼, 로봇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쪼꼬미들을 보니 반려 로봇과 함께하는 삶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알아듣고 쪼르르 다가오는 모습이라니.

직원분의 열정적인 (일본어 ㅎㅎ) 설명이 죄송해 금방 자리를 떴지만, 마음 같아서는 한참 더 같이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자인이 참 중요하다. (전 R2D2는 그냥 그렇더라고요...) 로봇에게도 마음을 열게 하는 일본의 디자인 감각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저녁 때가 되어 동생 부부를 만나 맥주와 만두를 먹었다.








선선해진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온다.


멀리서 보면 당황스럽도록 닮은 동생과 나. 심지어 옷 취향도 비슷한 모양.






지난번 만남 때 동생이 "티켓 사서 타워에 올라갈 필요 없이 근처 호텔 라운지에서도 충분히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나 그곳에도 들렀다.






그렇게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내 맘대로 에키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