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촉 깎는 노인

사라지는 것들과 해장 파르페 (2025년 10월 11일)

by 그래도 캠핑


이민을 작심하면서 생각했던 직업이 순돌이 아빠였다. 어떻게든 눈먼 정부지원금을 타먹기 위해서 무의미한 기획을 남발했던 애니메이션 일에 질력이 났을 때여서, 조금이라도 세상에, 아주 작은 일이라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갈수록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인 생산에 약간이라도 걸림돌이 되고 싶었다... 뭐 이런 거창한 생각들로 스스로를 세뇌시켰던 적도 있었지만, 어릴 적 동네 전파사 아저씨에 대한 좋았던 기억도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한테도 만만치 않은 바가지를 썼었지만) 각종 부품 서랍들로 둘러싸인 어두운 책상에 앉아서 어떤 종류의 고장 수리도 척척해내던 그 아저씨는 당시 나에게 있어서 무림의 절대 고수이자 전설적인 해결사였다. 물론, 상가건물마다 대기업 가전 대리점이 하나둘씩 들어설 무렵, 그 전파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지만.


캐나다에 도착한 2천 년대 초반에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는 동네마다 여전히 백색 가전 수리센터가 있었다는 거였다. TV나 라디오 같은 전자제품의 수리는 캐나다에서도 이미 찾기 힘들었지만, 진공청소기 혹은 세탁기처럼 모터나 벨트가 장착되어 있고 사용량에 따라서 소모품을 교체해 주는 것이 당연한 백색 가전의 수리 사업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새로운 운영체제가 공개될 때마다 새로운 기능으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컴퓨터 수리 사업 역시 꾸준히 유지가 되고 있었다. 하드웨어 수리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 치료와 같은 소프트웨어 수리까지 수요가 있었기에 한동안 뭔가를 고쳐서 쓰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었다. 적어도 자가복구 기능이 처음 도입된 윈도즈 8 (2012)의 출시와 $70불짜리 초저가 휴대용 컴퓨터인 인텔 컴퓨트 스틱 (2015)이 나오기 전까지는 (결국 가정용 상품 수리로 먹고사는 일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비단 전파사나 컴퓨터 수리업종뿐만 아니라, 살면서 수많은 산업과 직업들이 명멸해 온 걸 목도해 왔다. 사진관, 비디오 대여점, 쌀집, 얼음가게 등등. 그리고 분명한 건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때로는 선망했던 직업들 역시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걸 꼭 Ai나 로봇의 대중화에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그게 세상의 변화일 뿐. 비록 그게 세상의 부(富)가 일부에게 집중되는 걸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깝긴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세상이 변해가고 시장이 바뀌어 감에 따라 산업 트렌드가 달라지는 것 자체에는 크게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변화에 불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렬히 환영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기술문물이나 규약에 적응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한번 새로 생긴 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어쩌다 보니 깨닫게 된 것뿐이다.


하지만 세상과 기술문물의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고, 그걸 단지 구식이라든지 노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한다. 현재 내가 일하는 빌딩의 지하 주차장은 공공주차 구역을 두고 유료주차가 가능하도록 하는데 주차요금을 휴대폰 앱을 이용해서만 낼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스마트 폰에 주차 앱을 설치할 줄 모르거나 모바일 데이터가 없는 사람들은 주차요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 연방 정부 건물에 있는 공공 주차장이 이런 상황이니까 캐나다에서 다른 공공 서비스나 민간 서비스에서 디지털 약자를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지난번 한국에 가서 대형마트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어느 할머니 한 명이 남자 화장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랐던 사실은 그 화장실 어느 곳에도 한글로 남자 화장실이라는 표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픽토그램과 영어만 있을 뿐.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 할머니를 욕할 수 있나?


그래서 일본에서 첨단 로봇 기술로 인간대신 도장을 찍어주는 로봇을 만들거나, 엊그제 하코다테의 Co-op 매장에서처럼 실제 결제는 셀프 계산대에서 하더라도 바코드를 찍는 일은 사람이 직접 도와주는 일본의 시스템을, 그냥 '디지털 갈라파고스'라는 별명을 붙여서 비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약자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배려라고 할 수는 없고, 그보다 일본 시장 경제에 있어서 가장 강한 소비력이 여전히 노인세대에 있다는 것이 더 큰 이유겠지만, 세상이 미친 듯이 질주하더라도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중물의 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삿포로에서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그러고 보니 휴가 자체도 다 끝나가는구나.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는 걸 느낀다. 배낭 메고 자유여행을 다니는 것도 젊을 때나 다니는 거지, 짐 싸들고 옮겨 다니는 것도 지치는 일이지만 말이 잘 안 통하는 나라로의 여행은 열흘 내외가 딱 적당한 것 같기도 하다. TV나 대중교통에서 나오는 일본어 안내방송을 계속 듣다 보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영어가 그리워졌다 (헐).


삿포로 시내의 관광 명승지는 그럭저럭 구경을 한 것 같아서 마지막 날은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다니기로 한다. 먼저 맥도널드 아침 식사부터. 며칠 전 다시차즈케 아침을 먹었던 일본생명 건물로 다시 가보는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맥도널드 매장 앞에 마련해 둔 테이블에 벌써 사람들이 많다. 노숙자 차림새의 사람도 있고, 신나게 수다를 떠는 학생들,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 다양하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테이블을 장시간 사용하지 말라는 잔소리도 써 붙어있다. 아항. 그렇구나. 잔소리가 많은 일본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방법 중 하나는 그냥 무시하면 되는 거였구낭.




보험회사 빌딩에 걸맞은 공포 마케팅




맥도널드 커피는 일본도 제법 괜찮았다. 어제 그렇게 먹고 먹고 또 먹다가 잠들었는데, 일어나니까 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걸 보면 사람의 소화능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가족들과 수다를 떨면서 천천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카렌가 (구 홋카이도 도청) 주변을 걷는데 이번 주말도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이름하여 Foovie Fest. 그러고 보니 저 행사 포스터를 처음 도착날 공항에서부터 본 것 같다. 음식과 관련된 영화를 야외 상영하고, 배우나 관련 종사자들 초청하고, 또 그 음식들을 노점에서 판매하는 행사였다. 아카렌가 건물 입구에서 도청 정문까지 레드카펫까지 깔아 뒀던데, 정말 스타들이 방문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무대 위에 스크린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데 야외상영을 한다고? 아무래도 야외 상영은 주변이 어두워져야 가능할 테니, 저녁 즈음이 되어서 스크린을 설치할 텐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돌아다녔는데, 나중에 보니 커다란 LCD 전광판이 설치된 탑차를 동원해 거기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하하하. 선거의 나라 답구나.


스타들이 오기 전에 포토라인에서 찰칵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짐을 맡긴 후 다시 시내 구경을 한다. 아니 시내구경을 핑계로 문구전문점에 가본다. 아날로그 문화의 정점에 있는 일본은 전통적인 문구 산업 역시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 여기까지 온 김에 재미난 필기구 혹은 그림도구 같은 게 있으면 하나 사갈 생각이었다. 마침 삿포로에는 1906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하고 있는 문구 잡화 전문점이 있었으니 '다이마루 후지이 센트럴 (大丸藤井セントラル, 통칭 센트럴)'이 되시겠다. 현재는 지하를 포함해 총 8층 건물 안에서 한 층 공간은 갤러리로, 그리고 4개 층에서 종목별로 다른 문구 상품을 판매 중인데, 또 한참 동안의 이별을 앞두고, 쇼핑이 아니라 언니와 애틋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처제는 아내도 문구점 구경을 좋아하는지 슬쩍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단호하게


"여긴 나한텐 디즈니랜드야."


결국 아내와 처제가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문구 쇼핑으로 보내고 말았다. 최단시간 코스로 구경하고 살 것만 사서 직진으로 나오는 나보다. 그럼에도 무척 흥미로웠던 건, 2층 만년필 매장 한가운데에서 만년필의 촉을 튜닝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작은 벤치 그라인더를 두고. 마치 도검의 날을 가는 것처럼. 뭐, 따지고 보면 '나카야' 브랜드나 '몽블랑' 브랜드의 만년필의 경우 몇 백만 원씩 하니까 저렇게 수리해 가면서 쓰는 일이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 어떤 필기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평생 동안 고쳐 가면서 쓴다는 건 여전히 고장 수리 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도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필기구가 일회용품이 간주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펜 하나의 잉크를 다 쓰고 버리는 일도 무척 드물고 보통 쓰다가 잃어버리면 새 걸 사서 쓰게 되질 않던가? 분명 어릴 적에는 모나미 153 볼펜도 심을 교체해 가면서 쓴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라디오나 진공청소기를 수리해 가며 썼던 것처럼, 펜촉도 저렇게 튜닝해 가면서 쓰는 게 당연했던 적이 있었을 것도 같다.










센트럴 매장 입구에서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살피니 파르페 전문점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오 파르페. 여기도 우산이 꽂혀서 나오려나? 90년대에 미팅이나 소개팅에서나 먹을 수 있던 파르페. 1년 남짓했던 학교 앞 카페 알바 생활을 하며 무진장 많이 만들었었는데.. 딸기, 바닐라 투게더 아이스크림에 미제 병조림 체리와 구운 호두를 얹은 후 파인애플 주스와 통조림 과일을 채워서 만들었었나 그랬다. 물론 그 위에 웨하스나 빼빼로에 우산을 꽂는 것도 무척 중요했었지.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파르페를 먹어본 적이, 아니 그냥 본 적도 한 번도 없구나. 원래 프랑스에서 탄생한 파르페라는 건 일본에서 발전했다고 하던데... 유지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내 대장 컨디션에 대해 잘 아는 아내는 파르페를 먹자는 제안에 경악했지만.. 뭐 이렇게 여행 와서나 한 번 먹어보는 거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생크림으로 가득 채우기 있습니까?






게다가 이 집은 한 사람 당 한 가지는 꼭 주문해야 하는 집이었다. '고스로리 (고딕 스타일과 롤리타 스타일이 결합한 일본의 패션)' 스타일의 드레스에 시커먼 화장을 무섭게 한 쥔장이 눈을 내려 깔면서 주문을 받는데, '전 그냥 와이프 꺼 한 입만 먹을래요'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 초코시럽과 딸기시럽 하나씩. 그리고 나로선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두 가지가 나오는데 음식이 모두 나오는데 30분 넘게 걸렸고, 또 30분이 넘도록 아주 천천히 먹었다. 혈관에 지방이 쌓이는 느낌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어느 정도 먹고 나니 현기증이 나기 시작해서 모두들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어우 정말,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는데 x2) 총각김치 하나 딱 물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마음으로 카페 밖에 나와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데, 고스로리 쥔장께서 갖 볶은 야키소바 도시락을 사가지고 가게로 총총 들어가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하긴, 작은 컵 하나 먹는 것도 나로선 이렇게 힘겨웠는데 매일 이런 걸 수십 개씩 만드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야키소바에 염분이 충분하기를 맘 속으로 기원했다.


알고 보니 일본에는 '해장파르페 (シメパフェ)'라는 문화가 있었다. 말 그대로 음주 후 파르페로 숙취를 달래는 거라기보다는, 그냥 음주모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계인 것 같은데 바로 삿포로가 시초라고 한다 (https://visit.sapporo.travel/ko/discover/cuisine/shime-parfait/). 심지어 '삿포로 파르페 추진위원회 (https://sapporo-parfait.com)도 있다고. 워낙 홋카이도의 유제품 품질이 훌륭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춥고 긴 겨울이 있는 동네다 보니까 야외에서 노는 문화보다 실내에서 (음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많은 오락문화가 발달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자기 전에, 몸속에 이렇게 유지방을 주입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나야 정로환의 은혜를 입어서 이렇게 버틴다고 하더라도, 다른 멤버들의 장은 도대체 어떻게 견뎌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 정도 맥주와 유제품을 매일같이 먹으면 배탈이 나야 정상이 아니던가요? 나름 며칠 동안 삿포로에 있으면서 몸뚱이에게 지옥훈련을 시킨 건가? 아니면 하루에 2만 보씩 걸으면 뭘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몸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표지는 다이마루 잡화점의 초창기 모습. 출처 : 다이마루 후지이 센트럴 공식 홈페이지 (https://www.daimarufujii-central.com/大丸藤井セントラルの歴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