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도시 - 오비히로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25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는 오비히로라는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순전히 남편의 한마디에 일정에 넣게 된 곳이다. 그 한마디에 대해서는 다음다음 글에 자세히 쓰기로 하고. 너무 생소한 곳이라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머리를 약간 쥐어뜯게 만든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점이 세 가지나 되는 도시였다.








기차에서 내려 짐을 끌고 호텔로 향한다. 도시 자체의 풍경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였지만, 역과 호텔 사이 짧은 거리에서 만난 귀요미 맨홀 뚜껑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アローラロコン(알로라 식스테일)과 ドロバンコ(머드나기): 포켓몬 캐릭터인가 봄...



역에서 내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간장을 발라 숯불에 굽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겨온다. 여기 부타동이 유명하다더니, 도시 전체에 은은한 돼지구이 냄새가 배어 있구나. 저 가게에 가면 남편이 연기 냄새에 얼마나 투덜거릴까 ㅎㅎㅎ




오비히로에 유명한 온천 지구가 있다고 들었지만, 거기까지 다시 차로 이동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대신 역 근처에 그 온천수를 사용하는 숙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역과 가까우면서도 가격이 적당한 호텔을 예약했다. 우리가 간 날은 주말인 데다 월요일이 공휴일(스포츠의 날)이어서인지 큰 할인은 기대할 수 없었다.




호텔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방 안 가구들은 골동품상? 고물상? 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구식이었다. (그래도 청소는 깔끔한 편이었다.) 특히 금고가 굉장히 특이한 수동식이었는데, 호기심에 물건을 넣고 닫았다가 열리지 않아 당황하며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직원분이 오셔서 여는 법을 알려 주셨는데,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여유로워 보이심? 껄껄



소도시(라고는 해도 공항도 있고, 한국 청주와 직항편도 있다고 한다)의 오래된 호텔인데도 방 크기는 매우 작았다. 침대 바로 옆에 서랍장 겸 책상이 붙어 있었는데, 침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의자가 아닌 침대에 앉아서 책상을 써야 하는 구조였다. 보통은 남편이 방 사진을 남겨두곤 하는데 이상하게 사진이 한 장도 없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분들도 친절하셨고, 별로 흠잡을 것 없는, 인상이 나쁘지 않은 숙소였다.










짐을 두고 밥을 먹으러 나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식당은 예약이 꽉 찼다며 거절당했다. 구글 맵 리뷰에서 예약을 꼭 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갔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문득 일본어 수업 시간에 '초대와 거절'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일본식 거절은 "すみませんが、ちょっと…" 이런 식인데, 직역하면 "죄송하지만, 좀..." 정도다. 좀...이라고 했는데 눈치없이 들이대면 안 된다고. 하긴 그러고 보니 한국말도 "아 그 날은 좀 그래요..."같은 표현이 있긴 하네. 아무튼 수업 시간에 각자 문장을 써서 서로 묻고 답하는 연습을 했는데, 그때도 거절당하면 웬지 기분이 별로일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안전빵의 제안을 해서인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자는 내 제안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다... 껄껄)




그렇게 또 거절을 당하고 결국 역전 번화가의 포장마차 거리로 향했는데, 남편이 맛나다고 들었다던 작은 가게에 마침 자리가 있었다. 게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자 들어오라는 환대를 받았다. 아유 기뻐라.


여기서 먹은 음식이, 이번 여행 최고의 맛이었다. 작은 접시 요리를 몇 가지 시켰는데, 하나하나 정말 맛깔났다. 술도, 음식도 눈이 반짝 뜨일 만큼 훌륭했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 정원이 일곱 명 정도였는데, 각자 수다를 떨다가도 주인장이 한마디 던지면 다들 귀를 쫑긋 세우는 정겨운 분위기였다. 주인장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여행 중인지 등을 일본어와 영어 단어를 섞어 물어보셨고, 우리가 (간신히) 대답하면 옆자리 젊은 친구들이 추임새를 넣거나 다른 간단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두 마디 이상의 대화 진행은 어려웠습니다만... 껄껄.

그렇게 아주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가지 않았지만, 오비히로 역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도카치가와 온천 지구가 있는데 이곳의 온천수가 '모르(Moor) 온천'이라고 한다. 물색이 약간 진하고, 미끈 - 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매끄러운 느낌이다. 은은한 한약재나 흙 내음 같은 향이 감도는데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참 좋았다.

이 호텔은 목욕 손님만도 받는 모양이어서, 목욕탕 관리도 꽤 잘 되어 있었다.




여행 막바지라 긴장이 많이 풀어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온천수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이날은 무려 8시간 이상을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했다. 그동안 편하게 자려고 가능하면 트윈 룸을 잡았었는데, 이 호텔은 앞에 말했듯이 휴일이 겹쳐 트윈 룸 가격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수준이라 작은 더블 룸을 예약했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정말 푹 잤다. 남편은 내가 자면서 이불을 다 끌어갔다며 투덜댔지만, 저는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네요...? 껄껄



여행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 가장 좋았던 온천수, 그리고 가장 잘 잔, 기대는 없었지만 반전이 가득했던 도시, 오비히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