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항, 근데 이제 맥주랑 라면을 곁들인 - 치토세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28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이 있는 치토세로 다시 이동한다. 비행기 출발은 다음 날 저녁이지만, 당일에 움직이는 건 불안해서 하루 전에 가서 호텔에 묵고 떠나기로 했다.


치토세에는 기린 맥주 공장이 있다. 월요일에는 보통 닫지만 이날은 휴일이라 투어가 있다고 해서 오비히로에서 일찍 출발했다. 또 JR Pass의 마지막 날이라 끝까지 알차게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치토세역에서 오사쓰역까지는 급행으로 세 정거장, 10분 거리인데도 인당 편도 1,170엔이라 둘이 왕복하면 차비만 거의 5만 원이다. 패스를 쓰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아낄 수 있으니까.) 남편의 일본 맥주 원픽이 기린이라길래 마지막을 기린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다.






오비히로의 온천에서 마지막 아침 목욕을 마치고 체크아웃 후 역으로 향했다. 어제 역에 들러 기차표를 아침 시간으로 바꿔 두었다. 아침식사는 역에서 간단히 해결하기로 해서, 남편은 편의점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그리고 나는 역 안에 작게 테이블을 두고 판매 중인 부타동 주먹밥을 샀다. 이왕이면 이 동네에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었거든요.


대합실에서 아침을 먹고 오조라 급행을 타고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했다.

일단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한다. 다음 날 체크아웃 시간도 추가 비용을 내고 늦췄다. 마지막 날은 늦잠도 자고, 공항 온천도 즐기고, 미뤄둔 선물 쇼핑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출발할 예정이다.



여행 막바지까지 큰 사고 없이 잘 보냈음이 감사하다. 여행 계획은 사실 꽤 강도 높은 노동이다. 시간, 비용도 적절히 맞춰야 하고 여러 가지 가능한 변수에 또 나와 동행의 컨디션까지 고려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릴 때도 있다. 남편은 내가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재미있기도 하다 ㅎㅎ) 내가 계획을 열심히 세우는 가장 큰 동력은 불안함인 것 같다. 예를 들면… 길바닥에서 자게 될까 봐…? 껄껄.






결혼하고 얼마 후,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몇 개월간 여행을 떠났다. 때는 2001년,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당시 준비를 하며 읽었던 많은 여행기에서 숙소를 잡지 못해 무거운 짐을 끌고 유럽의 밤거리를 방황하는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보를 뒤져 예약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출발했었다. 그중 하나가 밴쿠버의 유스호스텔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곳을 예약했을까 싶은… 껄껄), bedbug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벌레 - 빈대를 처음 보았고, 평생 갈 트라우마가 생겼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은 그냥 비유가 아니었음을 찐 진심으로 이해하게 됨.

그리고 프라하에서 묵은 민박집. (알고 보니 본인의 집이었다.) 유럽의 여느 아파트답게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돌계단을 짐을 끌고 열심히 올라가 보니, 방의 침대엔 전 손님이 자고 간 이불이 그대로 널려 있었다. 황당해하며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본인이 일이 생겨 청소를 못 했다며 직접 시트를 빨아 쓰면 하루 숙박비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 그걸 또 좋다고 희희낙락하며 세탁기를 돌리고, 주인장이 부탁한 대로 화분에 물도 줬다. 세탁기 문에 금이 가 있어 물이 새길래 그 물까지 닦은 건 덤. (이메일로 물어보니 원래 그랬었다고, 덕트테이프 찾아 붙이라고 ㅋㅋ)

그 집의 하이라이트는 아직이다. 저녁 즈음에 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주인장 친구라며 “그 녀석 없어? 괜찮아, 난 거실에서 잘게.” 하던 일. (방 하나짜리 숙소였고, 하나뿐인 화장실은 침실에 딸려 있었다.) 어버버하고 있는 우리는 아랑곳없이 핑크 플로이드 음악을 틀고 향을 피우고 명상을 하더니 밤에 화장실을 쓰려고 방에도 불쑥 들어와 (살짝 노크는 했던가?) 기겁을 했다. 예전 히피들의 문화란 게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1960년대 아닙니다. 2001년입니다… 껄껄) 그리고 다음 날 야무지게 아침까지 챙겨먹고 인사하며 떠났고.


암튼, 계획은 아무리 철저하게 세운다고 세워도 계획일 뿐이더라는. 신기한 것은 그런 일들을 겪었음에도 프라하는 참 좋았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여행에 동행하는 파트너가 있으니 계획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분업을 하게 된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숙소와 이동편은 내가 정하고 매일의 일정과 먹거리는 남편이 정하는 편. 나는 효율적인 이동과 (내 기준) 쾌적한 숙소가 중요하고, 매일은 그때그때 벌어진 상황 자체를 즐기는 편이라. 또 남편의 컨디션이나 (이전 글을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특히) 장 상태에 맞춰 먹거리나 일정을 정하는 게 더 마음이, 그리고 몸도 편하기 때문이다... 껄껄









호텔에 짐을 맡기고 두 손 가볍게 오사쓰역으로 향한다. 주변엔 역 말고는 별다른 게 없는 조용한 동네다.




기린 맥주 공장 투어도 재미있게 마치고 - 맥주를 가장 맛있게 컵에 따르는 법을 배운 것이 큰 수확 -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





저녁은 홋카이도 라멘 도장 중 줄이 짧은 곳으로. 무난하게 맛있는 라멘이었다. 디저트로 홋카이도 소프트크림까지 하나 먹고, 이제는 익숙해진 온천에서 잘 쉬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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