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러 가는 걸음은 언제나 사뿐

기린 맥주 공장 탐방 (2025년 10월 13일)

by 그래도 캠핑


다시 치토세 공항으로 가는 날. 정말 이제 휴가의 끝이다. 휴가도 그렇고 여행도, 심지어 맛난 음식을 먹을 때도 좀 아쉽다 싶을 때 딱 끊는 게 중요한데 이번엔 좀 길었던 것 같다. 10일 정도가 딱 적당한 듯. 그래도 매번 여행 다닐 때마다 아파서 골골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엔 정말 큰 부상 없이 잘 버틴 셈이다...라고 말했었는데, 입이 방정이었던 건지..


어제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숙소로 돌아오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버렸다. 워낙 이런 일이 잦다 보니까 보통 살짝 얼얼하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멀쩡해졌는데, 이번엔 묵지륵한 게 느낌이 다르다. 아침에 목욕하러 갈 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았는데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찔끔찔끔 쑤셔온다. 마침 또 저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할 날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것도 그렇지만 연초에 생겼던 왼쪽 무릎 부상이 지난밤 자다가 재발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것도, 흑흑흑, 자면서 이불 차댕기다가 ㅠㅠㅠ. 잠 볼품없구나. 애초에 무릎을 다친 것도 부츠를 신다가 그랬던 건데. 이런저런 일로 오늘은 정말 조심조심, 천천히 움직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제껏 재미있게 놀았는데 휠체어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급 우울해졌다. 아놔 종이를 접어 만든 몸뚱이도 아니고. 어제 축축한 날 조금 많이 걸었다고 당장 탈이 나다니. 이게 만일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경통이라면... '은퇴하면 부부가 오붓하게 여행을 다녀야지..'라는 귀여운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들. 은퇴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떠나시길. 손가락 한 개라도 덜 아플 때.


아침에 지하에 있는 대욕장에 갔다 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부타동 냄새가 가득했다. 오늘 호텔 조식은 부타동이 나온 걸까? 아, 이젠 정말 지치는구나. 계속해서 쌓인 여독이 짜증의 가장 큰 이유겠지만, 특히 오비히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온 동네에 부타동 냄새가 진동을 한다. 비단 부타동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도 죄다 돼지고기다. 어젯밤 본 유튜브 클립에서 추천한 조식식당의 주력 메뉴는 카츠동과 돈까스 카레였다. 이 정도면 돼지를 모시는 신사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닌지.









조금 일찍 나선다. 발목과 무릎 상태도 그렇고. 최대한 여유 있게, 천천히, 쉬엄쉬엄 다니기 위해서. 아내는 오비히로 마지막 식사를 기념하기 위해 역 안에서 파는 부타동 에키벤을 먹어보겠다고 한다. 핫핫핫. 난 이제 냄새 맡는 것도 지겨운데. 걷다가 쉬고를 반복하면서 왔는데도 역에는 출발시간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예전에 부모님들 모시고 여행을 다닐 때, 출발 한 시간 전에 이미 옷 다 챙겨 입고 짐을 문 앞에 갔다 두고 안절부절 서있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렸었는데 이제 내가 딱 그 짝이 되었다. 그런 거 보면 불안과 초조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내가 부타동 도시락을 고르는 동안 나는 세븐일레븐에서 요깃거리를 찾는다. 삼각김밥과 콜라, 샌드위치, 마카로니 샐러드를 집었다. 숙취해소 강황음료도 빼놓지 않는다. 놀랍게도 샌드위치가 제일 비싸서 450엔. 삼각김밥은 150엔. 빵이 밥보다 비싼 건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건가?



tempImaget8TTLt.heic 아내의 부타동 주먹밥 에키벤


오비히로 역은 작은 상가와 바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상가 안에 의외로 도시락을 까먹을 공간이 애매했다. 나름 노숙자들에 대응하기 위함인가? 다시 역으로 돌아와 대합실에 자리를 잡는다. 마침 TV 앞자리라서 아내가 대놓고 먹기 불편하다 했지만, 뭐, 사실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적었고, 워낙 일본은 도시락 까먹는 것에 관대한 것 같으니 (그래도 길거리에 걸어 다니면서 먹는 건 또 싫어한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역사 내 화장실에는 '청소 중' 팻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응? 들어가 보니 남성들이 소변기를 사용하는 동안에도 여성 미화원이 그 사이에서 바닥을 닦고 있다. 아... 이건... 하긴, 목욕탕 남탕의 비품 정리 같은 것도 여성스텝이 영업시간 도중에 들어와서 하곤 했으니 그것과 별반 다른 일이 아니다 싶다. 근데, 요즘 한국도 이런 일이 여전히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영화 <7급 공무원>이 일본에 수출되더라도,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구남친을 한눈에 알아보고 재회를 하는 코미디를 일본 관객들은 이해할 수 있겠구나.


히가시 무로란 역과 달리 오비히로 역에는 플랫폼에 몇 호차가 어디에 정차하는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오오오 역시. 히가시 무로란 역만 이상한 거였구나. 암튼 요정도만 해줘도 승객입장에서는 무척 편리해진다. 지난 며칠간의 JR 홋카이도 열차 탑승 경력을 바탕으로 잔머리를 굴려본다. 예를 들어, 좌석번호 1번과 2번 앞에 큰 가방을 보관하는 선반 공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열차에 탑승하자마자 재빨리 그 공간을 먼저 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개별 좌석 위에도 짐을 두는 선반이 있지만 거기에 싣고 내릴 때마다 다친 손목이 무척 아프기도 했고, 저 큰 짐가방을 끌고 양쪽 좌석 사이 통로로 지나가는 것도 여간 민망하고 갑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일본 기차도 여러 번 타 보니까 이런 잔머리가 가능해지는구나. 한국에서 지하철로 십 년 넘게 등하교 출퇴근하는 동안에도 환승역 계단이나 통로까지 가장 덜 걷게 되는 출입문의 위치까지 다 알고 있었으니 나도 어지간히 효율중독이었네, 헤헤.



그런데,



6호차가 선두로 들어오던데요.



정말 이러기냐? 아놔.



결국 좌석 간 통로 사이로 큰 가방을 살살 끌고 거의 차량 반대 끝에 있는 좌석까지 가야 했다. 짐 싣는 선반은 이미 다 차서 짐을 좌석 위로 올리는 건 덤. 어쩌면 이렇게 인생이 조목조목 헛스윙인 건지.










캐나다에서도 삿포로 프리미엄 (일본의 블랙라벨과 동일) 맥주는 즐겨 마셔왔다. 특히 갈증 해소 차원에서. 북미에서 판매량이 넘사벽인 '버드와이저'나 '코캐이니' 등이 가지는 텁텁하고 들큼한 끝맛이 없고, 입 안에서 산뜻하게 사라지는 끝맛이 좋아서 여름용 맥주로 애정해 왔는데, 그건 사실 그냥 음료수 차원에서 인정했던 것이지 맛 좋은 술이라고 보기엔 좀 어려웠다. 비단 삿포로 맥주뿐만 아니라, 라거 일변도인 일본 맥주 전반에 대한 생각인데, 좋은 술이 주는 아로마와 풍미, 바디감, 최적 서빙온도와 같은 형질에 다양성이 전무하다 싶고, 매우 미묘한 입 안의 느낌 만으로 차별성을 주는 제품들만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맥주라는 음식을 대하는 일본 사회나 문화의 태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퇴근 후에 차가운 병맥주나 캔맥주 일 잔을 하는 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왔다는 반증이고, 이자카야나 라면 집에서는 당연하게 꽁꽁 얼린 잔에 살얼음 끼는 맥주와 함께 상쾌함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일본 사회에서는 술로서 맥주의 성격이나 특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주를 마시는 경험 자체의 콘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로 보인다.... 뭐 어떻게 미리 수습을 해보려 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은 술이라는 기준을 두고 볼 때, 그동안 일본 맥주를 좀 우습게 보고 있었다는 얘기.


그러다가 이번에 일본으로 오면서 비행기에서 마신 기린 이치방시보리 맥주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단지, 답답하고 시끄러운 기내여서 시원한 맥주의 감동이 더 컸던 걸까? 그러기엔 이후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다 마시는 동안에도 기린 맥주가 홋카이도 지역에서만 판매한다는 삿포로 클래식 맥주보다 더 나에게 맞았다. 라거 향을 결정하는 쌉쌀함의 정도가 내 기준에 가장 적절했던 것 같은데, 그게 기린 맥주의 말대로 처음 짜낸 맥아즙만으로 발효를 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현재로는 어쩐 일인지 밴쿠버 주류매장에서는 기린 이치방시보리 맥주를 구할 방법을 없어 보인다. 한 때는 Labatt에서 라이선스 제조 / 판매를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뭐,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 여행의 마지막 관광 코스는 공항 근처에 있는 기린 맥주 공장 견학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90년대 후반에 종종 놀러 가던 술집 중에 압구정동 '기린'이 있었구나. 그때 거기서 기린 생맥주를 팔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트레이드 마크였던 허니 버터 브레드는 잘 기억난다. 커다란 통식빵에 X자로 칼집을 낸 후 꿀과 휘핑버터를 올려서 나왔던.










열차를 타고 2시간 남짓 달려 미나미치토세에 도착한 후 여기서 신 치토세 공항으로 한 정거장 갈아탄다.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다음날 출국 전에 치토세 공항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 묵고 갈 예정. 볼거리나 쇼핑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심지어 숙소와 온천도!) 치토세 공항을 보면 작은 지역 공항이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도 같다. 적어도 여기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느낌이 안 들도록 해주는 기획이 중요한 것.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잠시 쉬었다가 1시쯤에 신 치토세 공항 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기린 맥주 공장이 있는 오사츠 역 (長都駅)으로 향한다. 여긴 뭐,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플랫폼, 계단, 개찰구마저 아무도 없다. 밖으로 나와도 황량하기 짝이 없다. 공장지대라는 말인가? 기린 맥주 공장까지는 1킬로 정도 걸어야 한단다. 참 이상하지. 왜 술을 마시러 가는 길은 이리도 몸이 가벼워지는가? 발목도 무릎도 가뿐하기 짝이 없다.



tempImageP95FJA.heic 오사츠 역 계단에도 밖으로 노출된 콘센트가... 심지어 오래된 걸 테이프로 동여맸다. 이 정도면 일본 사회의 전기 안전기준이 좀 다르다고 볼 수밖에.




tempImagewLvJ9p.heic 술 마시러 영차영차




헛헛헛.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터무니없이 일찍 도착했다. 갑자기 팔팔해진 무릎과 발목 컨디션 덕택인가. 3시 투어를 예약했는데 2시 살짝 넘어서 도착. 접수를 보는 직원이 잠시 우리 관상을 보더니 혹시 2시 투어에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물론이죠. 이이데쓰. 젯다이 이이데쓰. 맥주 제조공정 견학, 맥아 시식, 호프 시향, 맥즙 시음이 포함된 투어가 1시간 동안 진행되고 이어서 30분간 맥주 시음 (12온스 3잔)이 제공된다. 인당 500엔이라니 이것도 무척 혜자네요. 하지만 다른 양조장 견학코스와 같이 맨 처음 코스는 비디오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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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시향과 발효공정 견학
tempImageu1MI9H.heic 맥즙시음. 첫 번째로 짠 맥즙이라서 이치방시보리라고 한다. 그 아래엔 영어로 된 설명


투어는 내내 일본어로 진행되는데, 삿포로 맥주나 닛카 위스키 때와는 달리, 이곳에는 딱히 통역기나 통역 웹사이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대신 가이드의 원고를 영어로 번역해 써놓은 종이를 그때그때 전달받았다. 이것도 뭐 ㅎㅎ 큼직하니 스마트 폰보다 훨씬 보기 좋네. 근데 이번 투어는 어떻게 전국에서 I 들만 공개추첨을 해서 모아 왔나. 어쩌면 이렇게 가이드의 질문에 모두 묵묵부답인가. 너무나도 무성의한 투어 참가자들의 태도에 갓 사회생활 시작한 걸로 보이는 가이드가 울음을 터뜨릴까 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윽고 시음장. 기린 이치방시보리, 이치방시보리 프리미엄, 이치방시보리 블랙을 시음했다. 역시 흑맥주는 아직 어설프구나. 프리미엄이 가장 좋았다. 지난 삿포로 맥주 투어 때처럼, 맥주 시음은 맥주를 컵에 따르는 시연부터 시작한다. 일단 콸콸 따라서 맥주와 거품이 5:5 비율로 잔을 채울 때까지 따른 다음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1분 정도 기다린다. 거품의 비율이 7:3 정도로 줄어들면 나머지 맥주를 천천히 따라서 전체 거품의 비율을 8:2로 만드는 것. 이것이 맥주 거품을 가장 쫀쫀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삿포로 맥주에서도 똑같이 소개). 여윽시 매뉴얼의 나라 답구나. 그래도 기왕 배운 거,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종종 써먹어 봤는데 확실히 거품 맛이 다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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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맥주안주 감씨과자 (카키노타네(柿の種, かきのたね))도 선물로.


이렇게 자세한 매뉴얼을 따라 시음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이제껏 경험한 홋카이도 이자카야에서는 하나같이 꽁꽁 얼린 잔에 맥주를 따라서 살얼음 낀 맥주를 제공했는데, 제조사 입장에서 이런 서빙형태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맥주를 술이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제품마다 최적인 서빙온도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 관한 제조사의 입장 역시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지. 파파고로 정성스럽게 번역을 해서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더니, 앗차, 또 저 표정. 외국인 관광객에게 나라를 대표해 대답을 해줘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의 표정. 안 그래도 투어 참가자들이 너무 비협조적이라서 기운이 빠졌을 텐데 기껏 받은 질문이 이런 난감한 질문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무척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지난번 무로란 이자카야에서 마신 맥주


그런데, 내가 질문을 하면서 들이민 사진을 한동안 찬찬히 들여다보던 가이드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뭔가 최고의 대답을 찾았다는 것처럼. 그러곤 통통 튀는 '솔' 음계의 톤으로 자신 있게 대답을 한다.


"아사히 맥주의 거품은 원래 빙점에 가까운 온도에서 마시는 게 가장 쫀쫀해지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


경쟁사 제품의 특징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훌륭한 직원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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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방식의 가정용 생맥주



시음장을 나오는 과정에서 재미난 걸 발견한다. '회원제 생맥주 서비스' 월정액을 납부하면 집으로 생맥주 키트를 배달해 주는 개념인 것 같은데, 아직 일본 국내에서만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마치 한국이나 일본에서 흔히 보는 정수기 서비스 같은 개념. 그런데.. 캐나다의 맥주 소비량 정도면 저걸 돈 주고 할 사람도 꽤 많을 것 같은데... 급관심이 생겨 자세히 뜯어봤는데, 저 작은 케그의 냉장 방식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반 라거의 적정 서빙 온도가 2도에서 4도 사이니까 제법 튼실한 냉방기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무튼 다 좋다. 기술적인 건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일반 돌아가면 저런 방식의 사업 아이템이 캐나다에서도, 적어도 밴쿠버와 같은 대도시에서 통용이 가능할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공장 부지 안에 레스토랑 하우베 (キリンビアレストラン ハウベ)라는 식당이 있긴 했지만 저녁은 치토세 공항에 돌아가서 먹기로 한다. 2000엔에 공장에서 갓 양조된 생맥주를 무제한 마실 수 있다고는 하던데... 네. 사양하겠습니다. 어제 마실만큼 마신 것 같거든요. 날씨도 아직 쌀쌀하고. 이곳에 올 때처럼 준쾌속열차 (Semi-rapid train)를 타고 돌아간다. 몇 정거장 안 되는 거리에 좌석 지정을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자리도 많이 비었네. 정말 일본 와서 기차는 원 없이 탄 것 같다.


몸이 약간 으슬으슬한 것 같아서, 저녁은 라면입니다. 그리고 홋카이도에서 라면 먹기는 사실 신치토세 공항만한 곳이 없습죠. 이름하여 '홋카이도 라면 도장'. 지역 최고의 라면집을 모아 만들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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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에서도 인기가 갈려서 삿포로에서 제일 유명한 '에비소바 이치겐 (北海道名物らー麺 えびそば一幻)'의 경우 줄이 너무너무 길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부슬비를 맞으며 맥주공장까지 걸어 왕복하고, 또 시원한 맥주를 3잔 들이켠 탓에 뜨끈한 국물 주입이 무척이나 시급한 상태였던 것. 그래서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대기줄이 그냥 적당한 길이로 있는 집에 갔더니, 아항, 여기도 삿포로 스스키노에서 제법 유명한 미소라멘 가게라고 한다. 이름은 '케야키 (けや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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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작가 타케이코 이노우에와 신기할 정도로 똑닮은 점주의 얼굴


아침에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이제껏 여기저기 다닌 터라 왠지 잔뜩 먹을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자신 있게 '면추가 替え玉(かえだま:카에다마)'가 가능한지 물어본다. 밴쿠버에서 좋아했던 대부분의 일본 라면집은 후쿠오카 돈코츠 스타일의 라면을 바탕으로 했기에 이런 면추가가 당연했으나, 이곳 케야키에서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구나. 우우우웅. 많이 먹고 싶단 말이에요. 입이 삐죽 나온 상태에서 메뉴판을 자세히 보니 다른 옵션을 발견한다. '곱빼기 大盛り (おおもり, 오오모리)'. ㅋㅋㅋㅋㅋㅋㅋ. 참 융통성 없는 서버 같으니라고. 테이블에 오래 머물까 봐 그런 겁니까? 제가 말이쥬, 곱빼기로 먹어도 다른 사람보다 훨 빨리 먹을 수 있단 말입니다. 자신 있게 말한다. "데와 오오모리 구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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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버터콘미소, 오른쪽은 카라미소



예전에 밴쿠버에서 중국인이 하는 일본 라면 집에 갔을 때, 저렇게 통조림 옥수수를 잔뜩 쌓아서 주는 걸보고, 아놔... 이게 어디 일본 라면이냐, 어디서 짝퉁을 팔아... 하고 속으로 불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삿포로 스스키노에서 제일 유명한 미소라멘을 주셨던 거였군요. 카라미소와 버터콘미소를 먹었는데... 음... 의외로 버터콘미소가 더 얼큰했다. 느끼하지도 않았고. 후끈한 국물을 싹싹 들이키니 이제 조금 몸이 풀리는 것 같다. 그래도... 라면에 맥주를 빠뜨릴 수는 없었다.










빨래할 때 속옷 계산을 잘못한 건지, 아니면 어딘가 건조기에 두고 나온 건지 갈아입을 게 딱 한 장 모자라게 되었다. 그래도 뭐.. 공항에는 유니클로가 있으니까. 공항 탐방을 좀 더 하다가 쇼핑도 마저 하고 그 유명하다는 - 하지만 나에겐 역시 캐나다 맥도널드 아이스크림과 다를 바 없는 - 홋카이도 아이스크림도 먹고 나서 공항온천으로 향한다. 마지막 온천욕인가? 아니 내일 아침에도 올 시간이 되려나? 그러고 보니 아내가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찌 되었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려니 피곤이 등짝 아래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는구나. 어우 시원해. 탈의실에서 만족스럽게 온몸을 구석구석 탈탈 털고 있는데, 아이 깜짝이야. 여기도 여성 스텝이 휙 들어오네. 공항에 있는 호텔이라 외지인들 방문이 많은 온천일 텐데, 이 정도면 어제 오비히로 호텔 욕탕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는 목욕탕 모두 여성 스텝들이 남탕에 들어와 일을 한다고 봐도 되는 건가?



숙소로 돌아와 이런 일본의 목욕 문화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하면서 일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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