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27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오비히로를 가게 된 이유는 남편이 반에이 경마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오비히로 일정의 메인 이벤트.
경마장이라는 곳에 처음 가 봐서 다른 곳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반에이 경마장은 입구에 들어서면 자료관이 있고, 안쪽 마당에는 경마에 출전하는 거대한 품종의 말부터 작은 일반 말, 당나귀들까지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 두어 어린이들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박장이라기보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온 놀이공원 같은 느낌.
건물 입구 주변으로는 음식을 파는 매대와 지역 특산품 매장들이 있었고, 건물로 들어가면 각종 말 관련 캐릭터 상품점이 있다. 이어 식당가와 모니터 화면들이 여기저기 걸린 공간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판매기나 창구에서 마권을 구매하거나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데, 말과 기수의 정보, 순위 등이 리스트되어 있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말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도 있었다.
곧 경기가 시작되기에, 아무 생각 없던 우리는 일단 눈에 띈 유일한 여성 기수의 말에 베팅해 보았다.
경기 시간이 되자 트랙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뒤쪽 스탠드에 마련된 좌석에 앉을 수도 있다.)
반에이 경마 출전 말들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말과는 체격 자체가 달랐다. 몸집이 일반 말의 두 배 정도랄까, 엄청나게 크고 근육질이었다.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는 방식이라 속도가 느린 편이다. 기수는 수레에 타서 채찍으로 말의 엉덩이를 때리며 어서 가라고 재촉한다. 열심히 응원을 하다가도, 엉덩이를 찰싹찰싹 채찍질당하는 말들을 보면 기분이 묘해졌다. 트랙 주변 안내문에 의하면 말들이 워낙 크고 강해서 채찍은 그저 어깨를 두드려주는 정도의 자극이라 적혀 있었지만, 그걸 사람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밴쿠버에도 동물원과 수족관이 있다. 지금은 성인이 된 조카가 밴쿠버에 자주 놀러 오던 십여년 전, 밴쿠버 수족관에는 벨루가 고래가 있었다. 벨루가는 (실제로 미소를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띤 아름다운 생물체였다.
어두운 실내에서 벨루가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는데, 나는 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로운 벨루가의 미소에 매료되어 조카가 돌아간 후에도 연간 회원권을 끊어 종종 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러다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보게 되었고, 전 세계 수족관의 많은 돌고래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두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수족관 멤버십을 유지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다. (참고로 현재 밴쿠버 수족관에는 더 이상 벨루가가 없다.)
이런 시설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는 동물들을 구조해 보호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종결되곤 한다. 내가 동물이라면 (특히 부상을 입었거나 약한 개체라면) 정기적으로 밥을 주고 집을 청소해 주고 포식자로부터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나의 (게으른) 성격 + 200% 인간 중심적인 가정일 뿐이다. 갖혀 있는 동물들은 울타리 안에서 주는 밥을 먹고 응가하는 모습도 보이며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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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극단적인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쯤 되면 아, 몰라몰라하며 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듯 생각을 쓱쓱 밀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했던 말은 그럭저럭 순위권으로 들어왔으나 단승식(1위 말 하나만 맞히는 방식이란다. 나중에 알게 됨 ㅎㅎ)으로 베팅한 탓에 배당금은 없었다. 그렇지 뭐... 껄껄.
다음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마당에 있는 말들을 보러 갔다. 무슨 간식까지 주겠냐며 쿨한 척하던 남편은 어느새 당근을 두 컵째 사서 "마리짱", "후쿠스케군" 하며 이름을 부르며 먹이고 있다…?
한 경기 더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화면에서 제일 귀엽게 보이는 녀석에게 베팅합니다... (응?)
다시 매우 빠른 속도로 1,000엔을 날리고... 껄껄
남편이 이렇게까지 안 될 수 있냐기에 필승 방법을 생각해냈다. 모든 말에 100엔씩 건다면 반드시 하나는 이기잖아. 의기양양하게 제안했지만 남편은 이제 그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하긴, 그건 필승이 아니라 확실하게 나머지 900엔을 잃는 방법이지... 껄껄. 도박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이제 경마장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오늘 갈 집은 기본 안주 (오토시, 자릿세 개념)가 무제한 오뎅인 집이란다. 우오오
어쩌다보니 주류 무제한 상품을 주문했고, 본전을 뽑아보겠다고 또 열심히 시켜댄다. 주류뿐 아니라 일반 음료도 가능해서 찬 우롱차를 열심히 시켜 마시다 밖으로 나와 보니… 아오오 추워.
다행히 숙소가 바로 앞이라 얼른 뛰어가서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