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에는 인색한 편 - 신치토세 공항

남편과 함께 쓰는 홋카이도 여행 이야기 3

눈을 떴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커튼을 젖히니 여전히 휴식 중인 비행기들이 보이고, 어둠 속에서 활주로의 불빛이 깜박이는 것이 예쁘다.

호텔 방에 비치된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여 따뜻한 호지차를 만든다.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려서 잘 마시지 않는데,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호지차는 찻잎을 볶아서 만든 차로 구수한 맛이 나고 위에 부담이 적어 여행 내내 애용했다.


오늘 오전에는 신치토세 공항 내에서 머무를 예정이다. 신치토세 공항은 온천뿐 아니라 맛집들이 밀집한 곳으로 유명하다. 시내에서 길게 줄을 서야 하는 인기 식당들의 지점이 다 모여있다고 한다.

TV를 켜보니 공항에 위치한 호텔답게 비행기 출발 편 안내가 나온다. 가끔씩 활주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6시 반이 되어 일찌감치 조식을 먹으러 나선다. 선택할 수 있는 경우 조식 신청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호텔은 숙박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었고, 흰쌀밥에 낫토, 된장국, 구운 생선, 채소 절임 등을 가져다 먹었다. 특별할 건 없지만 짜지 않아 좋은, 정갈하게 준비된 조식이다.



식사를 하며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나이대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유리잔에 우유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홋카이도 유제품이 유명하다더니. 그래서 나도 마셔봤는데 음.. 우유 맛.

유당불내증까진 아니지만 우유를 마시면 속이 불편할 때가 있어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여행을 왔으니 호기롭게 커피에 우유를 넉넉히 부어 부드러운 밀크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이후 여행 내내 유제품을 평소보다 많이 먹었지만 고맙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식사 후 잠시 쉬었다가 온천을 이용하러 가보기로 했다. 이 호텔은 체크인 카운터가 3층에 있고, 2층으로 내려가면 복도를 통해 공항 내 시설과 연결된다. 2층 복도를 따라 탑승구역 입구들을 오른쪽으로 두고 걸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각종 면세품들(홋카이도 어딜 가도 보이는 대표 과자 '시로이 코이비토(白い恋人, 하얀 연인)' 쿠키 등을 비롯한 먹거리들이 가득 쌓여있다. 헛 그러고 보니 이 과자를 안 먹어보고 왔네)과 소프트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들을 파는 곳들이 잔뜩 나오고, 3층은 식당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가면 온천이 나온다. 온천 입구로 가는 길에 건담 샵이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아직 열진 않았다. 대형 건담을 본 남편은 잔뜩 흥분했다.




우리는 호텔에서 받은 쿠폰으로 온천을 이용했다. (온천 홈페이지에 의하면 2025년 10월 기준 온천 이용료는 성인 1인당 2,600엔이었다.) 일단 신발을 벗어 입구에 비치된 천 가방에 넣어 들고 카운터로 가서 쿠폰을 제시하면 열쇠와 바코드가 달린 팔찌와 수건 가방을 준다. 왼쪽에 있는 나무 계단을 올라 온천탕 입구로 가면 입구 바로 앞에 귀중품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과 커피, 차, 물 등을 마실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수건 가방엔 큰 수건과 작은 수건이 있다. 받은 열쇠 번호의 캐비닛을 찾아 개인 물건과 옷가지를 보관한 후 작은 수건을 가지고 욕탕으로 들어가면 된다. (공항에 있는 온천답게 큰 물건은 카운터에 보관 가능하다.)

칸막이로 나뉘어 있는 샤워공간에서 일단 몸을 씻고 탕으로 들어간다. 노천 온천도 있는데, 남편은 거기서 활주로가 보였다고 했으나 여탕 쪽에서는 높은 벽으로 막혀 있어 하늘 외엔 보이지 않았다. 온천물은 매우 좋았다. 전날의 피로가 싹 씻기는 느낌이었다. 탕 안에서는 작은 수건으로 몸을 살짝 가리고 다녔고 (너무나 오랜만의 대중탕 이용이라...) 물에 들어갈 때는 수건을 어떻게 하나 했더니 주로 접어서 머리에 얹고 있었다 ㅎㅎ


손목에 차는 팔찌에 있는 바코드로 자판기(음료 외에도 화장품이나 면도기 등이 있는 것 같았다) 나 식사(이 온천에는 식당과 휴식할 수 있는 라운지 의자들이 있다. 남편 말로는 식당이 아주 인기가 좋은 것 같더라고) 이용을 할 수 있고, 나갈 때 전체 정산을 하는 시스템이다. (기계에 바코드를 찍으면 총금액을 보여준다. 정산 후 프린트되는 영수증의 바코드를 찍으면 출구 문이 열린다.)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이미 나온 남편은 건담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촛점이 다른 곳에 맞았지만 맛있어서 남겨둔 사진

텔로 돌아가는 길에 홋카이도 특산물 중 하나라는 유바리 멜론 젤리를 하나 사 본다. 그것도 프리미엄 버전이 있고 일반 버전이 있다. 프리미엄 버전으로 구입해 하나 먹어봤는데, 오... 윗껍질(마개?)을 벗기는 순간 코에 확 퍼지는 향이 대단하다. 양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맛있다. (나중에 일반 버전도 먹어봤는데 프리미엄이 훨.씬. 맛있습니다 ㅎㅎ)


편안하게 쉴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다시 공항 상업지구로 나가본다. 까막눈이지만 서점 구경도 하고, 이제 문을 연 건담 스토어도 구경한다. (도난 방지 차원인지,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에 얼굴을 보인 후 입장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튀겨 판다는 공항 가루비 플러스 매장의 감자스틱을 꼭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포테리코와 맥주 세트 메뉴 (860엔) 두 개를 주문했다. 줄이 있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맛있는 식재료로 유명한 홋카이도의 감자를 즉석에서 튀겨준다 - 뭐 말만 들어도 맛있을 것 같지. 일본의 마케팅 방식에 감탄할 때가 많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소문대로 맛있는 감자튀김이었다. 거기에 비록 플라스틱 컵에 담겨있지만 갓 뽑아낸 차가운 생맥주를 곁들이니 이 아니 좋을 수가.

다음으로는 남편이 찬양해 마지않았던 어묵. 먹거리에 대한 얘기는 남편이 이미 많이 했으니 이쯤으로 마무리하자.




새로운 것들을 구경하고 맛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뭐 예상했던 맛이네" 하면서 감동 표현을 검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감동에 인색해지는 것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질 거라고 미리 기대치를 낮추어두는 거겠지. 또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의 호들갑에 (조금은) 지쳐서 일 수도 있겠다.


암튼.. 그래도 맛있는 맥주는 늘 감동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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