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수성이 말라 간다는 것 (2025년 9월 29일)
이민 초기에 어느 선배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향후 5년간 공부할 계획을 세우는 걸 듣고 그렇게 오랜 시간 공부를 해도 되는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대답은, 내 나이 때엔 5년이 무척 긴 시간이겠지만 그의 나이에서 5년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했었다. 그땐 마냥 웃긴 농담이었는데 이제는 5년이 짧은 시간이라는 걸 잘 안다. 나이와 시간에 대한 흔한 농담 - 20대에는 시간이 시속 20킬로로 흐르고, 40대에는 시속 40킬로, 60대에는 시속 60킬로로 흐른다 - 역시 마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물론 시간이 흐르는 속도에 대한 느낌은 개개인에 따라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는 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테고, 이는 새로운 경험과 그에 대한 진한 감동의 여운이 아무래도 점점 적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20대엔, 매시간 매분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에 놀라고 감격해서 모든 것이 마음의 저장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겠지만, 나이 들어 (감정도 메말라가고) 똑같은 걸 여러 번 경험했을 때 그걸 어디 기억이나 하겠는가? 그러니 10대 20대와 50대 60대에 저장된 기억의 두께가 다를 수밖에. 50대엔 시간이 시속 50킬로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더 이상 주변에 감동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무슨 진귀한 구경을 해도 다리 허리만 아프고 진수성찬을 먹고나도 아이고 물이 제일 맛있다, 라고 하는 일이 생기는 거겠지. 혹은 새로운 경험이 오히려 귀찮기만하고 본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부터 해버린다거나. 어쩌면 여행과 노인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익숙한 경험 속에서도 새로운 걸 찾아내는 습관은 필요하다.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단정 짓기보다는 먼저 더 궁금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게 없다면 계속 계속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노년의 삶일 것이다. 이젠 100살을 살게 된다는데. 완전히 새로운 영화로 한 시대를 흔들였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조차 안락사를 선택하면서 했던 말은 '이제 사는 것에 지친다'는 거였다.
지난밤, 비행기의 연착으로 환승장에서 완전군장 전력질주를 하고 밤늦게 들어와 1시 넘게까지 맥주를 마셨으니 좀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5시가 되어 눈이 떠졌다. 항상 이런 식이다. 한국에 갈 때도 그렇고 일본에도 도착했을 때에는 시차적응 시간이 따로 필요 없다. 밴쿠버 기상시간에 맞춰 깰 수 있다. 하지만 밴쿠버로 돌아오고 나면 시차적응에 애를 먹는다. 한국 시간도 아니고 밴쿠버 시간도 아닌 애매하게 런던 시간에 신체 사이클이 맞춰져서 낮 12시부터 졸립고, 일찍 잠자리에 들더라도 밤 12시에 깨서 그다음엔 말똥말똥 상태가 된다. 아무래도 30년 동안 쌓여왔던 신체 사이클이 깨어나는 것은 좀 더 쉬운 것일까? 아니면 아무래도 여행지이기 때문에 몸이 더 긴장을 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겸사겸사 일찍 일어나서 TV를 좀 보다가 조식뷔페로 향한다. 일본 호텔의 조식뷔페에 대해선 기대를 조금 했었는데, 역시나 물이 제일 맛있는 형국이었다. 모두가 칭송하던 홋카이도의 아이스크림은 Sapputo의 우유를 사용하는 밴쿠버 맥도널드의 아이스크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서주 아이스주 정도 되지 않는 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란 대개 바닐라 향이 우유 향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홋카이도 우유의 특징을 찾기는 어렵겠지 (아니면 캐나다 아이스크림이 워낙에 맛이 있는 편이거나). 그렇더라도 커다란 밥솥에서 밥을 푸고 나면 반드시 뚜껑을 덮어놓는 습관은 일본인들이 쌀밥에 대해 가지는 존중을 엿볼 수 있었다.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위치한 공항 터미널 호텔에서는 숙박객들에게 공항 4층에 있는 온천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쿠폰을 주는데, 아침 7시 반에 입장 마감을 하고 8시부터 10시까지 휴장을 한다고 한다. 원래 목욕탕에 안 가는 성격이고 일정상 귀국 전에 또 한 번 이용할 호텔이지만, 그래도 어제 너무 고강도 운동을 했던지라 온천물에 몸을 좀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서둘러 짐을 챙겨 온천으로 향했다.
35년 만에 하는 대중탕 목욕. 군생활 할 때의 목욕탕 사용은 제외한다면, 아마도 대학 1학년 어느 날부터 대중탕은 이제 그만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전에는 목욕탕에서 처음 본 사람과 서로 등도 밀어주고, 목욕을 마치고 나면 바나나 우유도 꼬박꼬박 사 먹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대중탕에 가지 않게 되었고, 한번 안 가니까 또 계속 안 가게 되었다. 딱히 아쉽거나 그리운 것이 없었다. 이민 와서는 더더욱 대중탕에 갈 기회가 없기도 했고 언젠가 밴쿠버에도 찜질방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어서 어디에 있는지 지금도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아아아아아
무척 낯설었지만, 무척 좋았다. 활주로가 보이는 노천탕도 좋았지만, 굳이 찬 바람에 머리를 식힐 필요도 없이 몸이 흐물흐물거릴 때까지 물에 잠겨 있는 게 좋았다. 뜨거운 물이 이렇게까지 피곤을 풀어주다니. 처음에는 남들 앞에서 탈의를 하는 내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다리 가랑이 사이를 수건으로 털고 있는 대한남아가 된 자신을 발견했다.
신치토세 공항 국내선 2층과 3층은 각종 식당들과 키오스크, 그리고 홋카이도 특산품 매장 (물론 유니클로와 무인양품도 있다)들로 가득했는데, 그보다.. 아.. 이곳이 일본이구나 싶었던 건 목욕탕 앞에 크게 전시되어 있던 붉은 자쿠 II (사야 전용기 A12)였다. 그리고 디즈니 특별전을 하던 3층에는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건담 RX-78-2 역시 늠름하게 서있었고, 4층에는 건담 프라모델 및 장비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판매하는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본 여행 내내,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버블 이후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더라도 7~80년대 황금기 때 만들어놓고 투자해 둔 인프라로 아직 잘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블시대 자산의 최고봉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도 그렇다.
'성덕'이라는 말이 있다. 성공한 덕후.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해서 성공한 사람들. '성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재정적인 안정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 역시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버블시대는 그게 가능했을 거다. 솔직히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본 사람 입장에서, 그 제작비가 환수될 수 있는 방법은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방송용 애니메이션은 더욱 그렇다. 캐릭터 산업이나 다른 머천다이징의 길이 열려있지만, 솔직히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얘기고, 같은 돈을 은행에 묻어뒀을 때 얻는 이자 소득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용 애니메이션이 끝없이 만들어지면서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들을 기획이 현실화되었고, 동시에 극장용 고급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틀이 된 것은 역시 버블시대의 자본력 덕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국가의 자본력.
'성덕'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사용되는 말은 '열정페이'가 되겠다. 예전에 한국에서 영화를 할 때는 연봉이 2천 불이었어..라는 얘기를 밴쿠버에서 할 때마다 이곳 사람들을 빵빵 터뜨리곤 했다. 북미에서도 영화판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예 기술이 뛰어나서 작품계약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라든지, 아니면 스스로 흥행 가능성이 있는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 영화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단순 계약직이다. 미국 방송물 하청에 목매어있는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6개월 일하고 6개월 논다고 들었다. 하지만, 짧은 계약기간 동안 일하면서 납입한 실업보험을 놀면서 받는다. 영화 한다고 집안살림을 거덜내거나 굶어 죽는 일은 없다. 해마다 새로운 아이폰기종으로 바꾸진 못 하겠지만, 그럭저럭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다. 그 역시 국가의 재정적 안정이 주는 혜택이 되겠다. 단지 캐나다는 일본만큼 상업 애니메이션 전통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문화산업을 만들지 못했기에 상업적으로 걸출한 작품들이 나오지 못했을 뿐이다. 참고로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감독 드니 빌뇌브 (시카리오, 듄 시리즈) 역시 캐나다 출생이고 캐나다에서 데뷔작을 찍었다.
나이 50이 넘어 이럴 줄은 몰랐지만, 건담을 보고 있자니 추억이 떠올라 셀카 남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객실로 돌아가 잠시 쉬다가 체크아웃 시간 11시에 맞춰 나와 프런트에 짐을 맡긴 채 공항 구경을 좀 더 하기로 했다. 다음 일정인 노보리베츠 온천까지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버스를 타고 가는 계획인데 그러기엔 시간이 좀 많이 남았다. 물론 일찍 출발해서 노보리베츠 마을의 관광시설 구경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워낙 교통비가 비싸기도 하거니와, 노보리베츠라는 동네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일본 민속촌이어서 그보다는 차라리 공항 2층 특산물 매장들을 구경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은 이유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감자칩이나 스낵으로 유명한 "가루비 Calbee"의 공항 키오스크에서는 감자를 그 자리에서 튀겨서 칩이나 스틱을 만들어 팔았는데, 먹기 전까지는... 에이 뭐... 그래봤자 감자칩이지.. 이런 심정이었으나, 막상 한 입 넣고 나니 빠삭빠삭한 표면 안으로 포실포실한 감자전분이 살아있어서 놀라웠다. 아이.. 무슨 감자칩 먹으려고 줄까지 서~하면 툴툴댔었는데, 홋카이도 한정 삿포로 클래식 맥주와 함께 어느새 한 봉지를 순식간에 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건 가마에이 가마보코 (かま栄の かまぼこ) 생선묵을 만난 일이다. 우리가 흔히 생선묵이라고 부르는 음식을 일본에서는 '가마보코'라고 부르는데 (오뎅은 꼬치를 끼워 국을 만들어 먹는 가마보코 요리의 종류), 내가 이제껏 먹었던 가마보코는 모두 찜기에 쪄서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한국에서 어묵을 부르는 다른 명칭인 '덴뿌라'는 한국식 생선묵 제조공정 - 튀기는 방식 - 에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근데... 가마에이 가마보코도 튀기는 거던데요? 100여 년 전통으로 오타루에서 가장 유명한 식품업체 중 하나인 가마에이 가마보코는 공항 내 키오스크에서도 마치 전통을 소중히 한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생선묵을 튀겨 팔고 있었다. 아... 갑자기 "원래 일본 어묵은 튀기는 게 아니라 찌는 거거덩" 하며 잘난 체를 했던 부끄러운 순간들 때문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뭐, 이마저도 가마에이 생선묵을 한 입 넣자마자 후딱 잊고 말았지만.
사실 생선묵이라는 요리가 일본에서만 먹었던 것도 아니고, 중국에도 심지어 한국도 신라시대 때부터 먹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먹어 온 음식이면 이웃나라들의 요리법이 전파되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요리에는 국경이 없고 레시피엔 저작권이 없다.
일본은 여행객의 의약품 반입에도 무척 엄격하다는 얘길 들어서 처방약을 제외한 아무런 약을 가지고 오질 않았다. 하지만 9월 초 캠핑 때 다친 손목이 전혀 낫질 않고 있었는데, 손목 때문에 일부러 캐리어가 아닌 백팩을 챙겨 왔으나, 여행에서 짐이란 끌어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일도 많았기에 칼로 찌르는 듯한 손목의 통증은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쩐 일인지 비행을 마치고 난 후부터 약간의 편두통이 지속되는 듯해서 소염진통제를 찾으러 공항 내 약국을 들러봤는데, 희한하게도 일본에는 이부프로펜 단일 성분의 진통제를 찾기 어렵다는 걸 발견했다. 말하자면, 이 성분 조금, 저 성분 조금씩 제약회사 자체적으로 조합해서 만드는 약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명확한 약 성분 표기가 포장에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거쳐 그나마 가장 인기 있는 약을 구매했는데, 속지를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복용 시 음주는 하지 말라고 경고문이 적혀있었다. 아니, 이 정도 경고문이면 포장지에 적혀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운전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쓰여있더니만... 아무튼, 이곳에서 산 진통제는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알도 복용할 수 없었다. 일본까지 와서 음주를 못 하다니..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대신, 북미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약도 많이 있는데, 이를 테면 정로환. 어릴 적부터 과민성 대장증상을 달고 살았던 나에게 조승상의 꾀주머니처럼 항상 갖고 다니면서 위급할 때마다 꺼내 먹던 바로 그 약. 한국에서는 동성제약에서 독점 제조했던 그 약이 일본에서는 제조사가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목초액의 신경독으로 대장의 과민반응을 억제하는 단순한 기작이기 때문에 제조사가 달라도 효능은 같았다. 덕분에 홋카이도의 무수한 유제품을 먹고도 크게 봉변당하는 일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