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떨림, 갈고리재주나방의 처절한 생존 연기
숲을 다니다 보면 가끔 지구 생명체가 아닌 듯한 녀석들을 마주한다. 이번 만남이 딱 그랬다. 처음 눈에 들어온 순간, 나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삼켰으니까.
보통은 칡이나 싸리나무 잎을 먹는다고 알려진 갈고리재주나방 애벌레. 특이하게도 녀석은 예덕나무 잎자루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인가 싶었다.
하지만 뷰파인더로 들여다본 비주얼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울퉁불퉁한 거친 피부 그리고 온몸을 뒤덮은 붉고 검은 기괴한 돌기들... 곤충이라기보다 정교하게 빚어낸 괴수 피규어 같았다.
녀석을 제대로 담아보려 한 발짝 다가선 순간, 녀석이 반응했다.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머리와 꼬리를 등 쪽으로 홱 젖히며 'U자' 모양을 만들었다. 재주나방과 애벌레들의 전형적인 방어 자세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녀석이 숨겨둔 '히든카드'에 있었다.
녀석이 고개를 아래로 젖히자 흉부 주름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 병기가 드러났다. 진짜 머리는 아래로 푹 숙여 숨기고, 등 뒤의 무늬를 내 쪽으로 들이밀었는데...
그 모습이 소름 돋을 정도로 하늘소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양옆의 시커먼 무늬는 하늘소의 거대한 겹눈을, 노란 무늬로 둘러진 검은 무늬는 하늘소의 강력한 턱(Mandibles)을 완벽히 흉내 내고 있었다.
실제 하늘소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정교한 의태(Mimicry)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연약한 애벌레가 아니라, "나 건드리면 물어버린다!"라고 시위하는 강력한 갑충의 가면을 쓴 셈이다.
하지만 전율이 일었던 건 단순한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앵글을 바꾸려 내가 움직이자, 녀석도 나를 따라 방향을 틀어가며 그 '가짜 얼굴'을 끝까지 들이밀었다. 자신의 뒷목 무늬가 상대에게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나를 압도한 건 녀석의 '떨림'이었다.
자신보다 수천 배는 거대한 포식자 앞에서 그 자세를 유지하느라, 녀석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서 허세를 부리는,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미동도 없이 버티는 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격렬하게 떨며 가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노려보는 척하는) 그 기세.
작은 미물에게서 느껴지는 비장미에 셔터를 누르다 말고 잠시 멍하니 녀석을 바라봤다.
예덕나무 잎 위의 작은 승부사. 녀석의 완벽한 가면과, 그 뒤에 숨겨진 치열한 생존 본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