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박쥐

편견의 어둠을 걷어내고 마주한 나의 오랜 동경

by Eco archivist

박쥐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서늘한 동굴의 한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 어둠 속에 도사린 기괴한 날개, 혹은 관박쥐처럼 복잡하고 기괴한 비엽(nose leaf)을 떠올리며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게대가 메르스나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의 매개생물이라는 의심까지 더해지며, 박쥐는 우리 곁에서 사라져야 할 불길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박쥐의 실제 모습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들을 혐오의 동굴 속에 가두었다.

관박쥐


내게 있어서 박쥐는 겨울에도 온기가 느껴지는 존재, 홀로 남겨진 어둠 속에서 위로를 주는 친구로 여겨진다. 가끔씩 동굴을 다닐 기회가 주어지는데 나에게 가슴 한구석에 늘 품고 사는 '동경의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토끼박쥐다.

2019년 7월, 정선의 산자락을 오를 때만 해도 그저 운이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평소 배설물이나 족적 같은 흔적으로 겨우 찾을 수 있었던 멧토끼를, 그것도 대낮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직접 마주쳤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길목에서 조우한 멧토끼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구나'라며 가볍게 들떴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건 동굴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더 큰 행운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이라는 차가운 행정적 분류 명칭 뒤에 숨어 있던 은둔의 존재와 마주했다.

보자마자 국명을 바로 불러줄 수 있는 독보적 외모, 사진으로만 수백 번 보았던 그 커다란 귀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조금 전 밖에서 보았던 멧토끼의 귀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으로 쫑긋한 귀. 어쩌면 자연은 이토록 작고 연약한 생명에게 이토록 다정한 귀를 선물했을까?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 귀를 보고 있으면, 박쥐에 대한 세상의 모든 오해와 날 선 시선은 눈 녹듯 사라지고 오직 '사랑스럽다'는 감정만이 동굴 안을 채웠다.

토끼박쥐


그해 겨울, 충북 영동군에서 토끼박쥐를 만났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여름날 그토록 멋지게 빛나던 귀는 간데없고, 날개 아래로 귀를 접어 넣은 채 깊은 잠이 든 박쥐를 만났고, 어떤 종인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겨울을 견디기 위한 방편으로 큰 귀는 접고 길쭉한 '이주'만이 겨우 드러나 있었다.

겨울에 만난 토끼박쥐


조사자로서 마주하는 이 멋진 멸종위기종의 모습은 경탄을 자아내다가도, 이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이토록 아름다운 생명이 오해와 개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카메라 셔터 소리조차 미안해질 만큼 조심스러운 이 만남이 부디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슬픈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