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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Feb 08. 2023

어쩐지, 그렇게 가기가 싫더라니

D-50

2022.12.29


“또 생겼네요? 수술해야겠네.”

담당 교수가 내 복부 CT를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꺼낸 첫마디.

3년 전, 복부에 이상을 느껴 찾은 첫 번째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은 후 병원을 두 번 옮기고 조직검사를 한 끝에 다행히(!) 경계성 종양 판정을 받았다.

(브런치에서 첫 번째로 발행했던 매거진 <해프닝이라기엔>이 이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1년 전, 정기 검진에서 담당 교수는 괜찮은 것 같다며 1년 후에 보자고 했다. 그리고  1년 후에도 괜찮으면 살던 대로 살라고 했다. 이날, 내 복부 CT가 깨끗했다면 이제 완치라는 이름이 붙여질 수 있었던 지병이었다. 그런데 1년의 시간 동안 내 몸에선 또다시 차곡차곡 근종 덩어리들을 쌓아두었나 보다.

재발했다. 그것도 수술한 곳  + 다른 곳에 하나 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개복해야 한단다. 복강경 안된단다.

그 아픈 경험을 또다시 해야 한다니 아는 고통과 과정이기에 더 짜증이 났다. 3년 전엔 암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는데,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구나.

살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두려움이 밀려왔다. 담당 교수는 나에게 선택지를 주었다. 2월 20일과 3월 13일. 그나마 아이들이 방학 중인 2월을 선택하고 진료실을 나선다. 산정 특례가 적용되어 진료비와 검사비가 할인된 영수증을 받아 든다.

사실 외래 당일 담당 교수가 코로나로 인해 격리되었다고,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이때다 싶어 격리 해제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검진을 보러 간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을 번 후(자발적으로 미룬 후)에 찾은 병원이었다. 이젠 뭐가 되었든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재수술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1년간 운동을 게을리하고 신나게 술을 마셔댔지만)이건 예상 밖이었다.

3년 전 수술했던 부위에 뭔가 다시 만져지는 것은 수술 흉터가 조금씩 커진 것일 거라 애써 생각하려 했다. 그 모든 것이 두려웠다. 미뤄왔던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될까 봐.


어쩐지, 그렇게 검사 결과 들으러 가기가 싫더라니.





3년 전 수술 이후로 한 번 사는 인생 꼭꼭 숨어있지 말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행동하며 살았다. 그 결과 (여전히 나는 무명이지만) 어쨌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전시도 가끔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것이 첫 번째 수술이 나에게 준 보상 혹은 선물이라 생각했다.

이번 수술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수술 후의 인생도 여전할 거고 나는 쭉 건강하게 살겠지만, 또다시 수술과 마주한 시간들이 전보다 더 간절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답잖은 의미 부여일 수는 있겠으나 그간 앞만 보고 사느라 놓치고 살았던 무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아닐는지.

집, 그리고 가족. 그리고 당연하게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그 50일간의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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