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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Apr 17. 2023

벚꽃이 만개했던 날, 일산 여행

나는 그 미묘한 다름을 좋아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어?”

“어…. 응.. 해, 해야지..”

신랑이 물었고 나는 얼버무렸다. 실은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니라 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때였다.

방학, 수술에 이어 주말마다 가족 행사나 모임이 계속 있어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부족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내편님이 아이들만 데리고 캠핑을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응?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혼자 두 시간을 운전해서 캠핑장에 도착해 피곤한 몸으로 텐트를 치고 아이들을 챙기는 일이?  나라면 절대 안.. 아니 못하는 일인데 흔쾌히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신랑을 보며 와 - 이 남자 멋진데? 3초간 생각했다.  아이들과 신랑은 토요일 아침 일찍 홍천의 한 캠핑장으로 떠났고, 집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일하라고 집을 비워줬지만 밀린 잠을 더 자고 싶었기에 해가 중천이 될 때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고, 충분히 자고 난 후엔 엉망인 집안 꼴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부지런히 청소했다. 이만하면 남자 셋이 돌아와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깨끗해졌어! 라고 생각될 때까지. 신랑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그다음엔 뭘 해야 할까 생각만 하다가 토요일 오후가 통째로 지나가 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영감을 얻겠다며 고심 끝에 선택한 영화는 재미도 감동도 없었고, 뒤늦게 뭐라도 해보려고 했으나 어딜 가기엔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넘치니 어쩔 줄을 모르는 꼴이었다.

오늘은 망했다. 내일은 꼭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눈뜨자마자 목욕재계하고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고 차에 올라 일산의 한 서점을 목적지로 찍었다. 강변 북로를 지나 자유로를 타는 험난한 여정이었고 때마침 벚꽃 인파와 맞물려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한 시간 반을 달린 끝에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과 마주했다.






위드위로
위드위로 - 2022. 10



마음이 힘들었던 어느 밤 사진 한 장으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서점 <위드위로>가 오늘이 첫 번째 목적지였다. 독립서점은 갈 때마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나에게 독립서점은 늘 그런 존재다.

이 공간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아주 커다랗고 중요한 공통점이 있긴 하나 서점 주인들의 살아온 환경, 취향, 생활 방식은 모두 다르기에 그 차이에서 오는 책방만의 분위기가 있다. 나는 그 미묘한 다름을 좋아한다.

일요일 정오에 오픈하는 독립서점의 오픈 시간에 맞춰간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가끔 공지된 시간과 달라 헛걸음할 때도 있지만 운이 좋으면 한가한 시간에 도착해서 서점 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미리 약속을 정하고 방문하는 것도 아닌데 운 좋게 손님이 몰릴 시간이나 북토크, 독서 모임 등을 하는 시간을 교묘하게 비껴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운을 아낌없이 써보기로 하고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프로궁금러의 질문들을 불편해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는 대표님의 말투에서 선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독립서점이 살아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만약 음료를 함께 판매한다면 그 맛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이곳 <위드위로>는 커피에도 진심, 베이킹에도 진심인 곳이다. 장소와 계절을 불문하고 99%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사람인데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바닐라빈라떼에 홀딱 반해버렸고,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인 각종 디저트류들이 직접 베이킹 한 것이라는 것에 한 번 더 반해버렸다. 좋은 원두와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위드위로>가 독립서점이라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는 상가 1층에 위치한 <위드위로>는 오다가다 커피 한 잔 주문해서 조용히 머무르다 가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대표님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대표님이 추천해 주신 안리타 작가님의 <리타의 정원>을 구입하고 경기도 서점에 무료 배포된 <책방지기? 자영업자입니다!> 한 권을 얻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너의 작업실
너의 작업실- 2023.2



일산 밤리단길에 위치한 <너의 작업실>에는 총 세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전시 설치 날, 두 번째는 전시 철수 날, 그리고 세 번째는 일산에 벚꽃이 만개한 오늘.

참.. 올때마다 밤리단길의 낭만과 아름다움, 그리고 주차난에 깜짝깜짝 놀란다.

와- 진짜 예뻐. 여기 살고 싶다 하면서 동네를 둘러보다 종국엔 여기 사는 주민들의 주차난 걱정을 하며 감상을 마무리하곤 한다. 벚꽃이 만개했던 그날은 게다가 주말이어서 그 걱정은 가중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연예인 걱정, 손흥민 골 결정력 걱정, 그리고 핫플레이스 걱정)

작년, 전시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을 땐 집에서 서점까지의 거리가 부담되어서 그림들을 택배로 보낼까도 생각했으나, 나에게 전시 공간을 내어준 서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하남에서 일산까지 그림을 싣고 달렸던 것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다. 일산에서 핫한 밤리단길에 위치한 너의 작업실은 과연 사진에서 보던 것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내 취향이었다. 노란빛 감도는 서가와 서점 중앙의 커다란 테이블들, 하얀 파라솔이 세워진 야외 테이블, 예쁜 냉장고와 스피커 어느 것 하나 내 취향 아닌 것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창밖을 향해 있는 밤리단길 뷰 1인 책상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정작 세 번의 방문 동안 한 번도 이곳에 앉아본 적은 없었다) 이곳에서 작가 혹은 예비 작가님들이 쓴 글들이 산문집이 되고 소설이 되고, 일기의 한 페이지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갑자기 고백하자면 몇 번의 전시를 하며 현타가 왔었다. 전시를 하며 행복한 점, 좋은 점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내가 좀 더 유명했더라면, 내 굿즈가 더 많이 팔리고 내 그림이 많이 판매되어 서점 살림에 보탬이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나는 여전히 무명이고 나의 전시는 영향력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작업실 대표님은 내 그림들을 기꺼이 걸어주었고, 그 전시가 끝난 후 일산 풍동도서관으로 그림들을 옮겨 또 다른 전시를 진행해주었고,  전시로 인한 수익을 소소하게 전달해 주었으며, 따뜻한 언어로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너의 작업실 대표님과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며 친구를 맺었다. 서점 대표님들을 만나고 오면 늘 뭔가를 채우고 오는 느낌이다. 따뜻함이든 삶의 지혜이든 간에.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바라보았던 밤리단길의 벚꽃들과 자유로에 만개한 벚꽃길을 뒤로하고 다시 나는 현실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오니 캠핑 갔던 삼부자가 나보다 먼저 돌아와 있다.

<위드위로>에서 얻어온 <책방지기? 자영업자입니다!> 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전시를 진행했던 <너의 작업실>이 실려 있어 1차 반가움, 전시되었던 내 그림도 같이 실려 있어 2차 반가움을 느낀다. 심지어 방금 다녀온 곳인데도 까맣게 모르고 책이 나온 지 반년만에 보게 되었다니!

책방지기는 자영업자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쫓는 사람이 아닐까?

독립서점을 여행하며 나는 그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또 길을 찾아가며 내가 나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삼부자가 또 캠핑 갈 그날을 기다리며.

4월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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