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던 회사를 떠나던 날 도시가 말한다.

너 따위 기다려줄 시간 없어! 비켜!

by 신재현


도시는 빽빽하다. 한 치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아파트 숲이 하늘을 가린다. 내가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엔 이 콘크리트 더미가 일조한 면도 있을 거야. 나는 속으로 투덜댄다.


나는 서울 어느 곳에서라도 지도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평생 이 곳에 살았기 때문에, 도시의 문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법을 안다는 것이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사는 강북에는 인도가 없는 길이 많다. 그래서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뒤에 오는 차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차가 말한다. 빨리 비켜. 너 따위가 걸어가는 걸 기다려줄 시간은 없다고.


경적에 놀라 벽에 붙고 차 뒤꽁무니를 보며 생각한다. 쫓기는 그들과 그들을 쫓고 있는 시간을.


학교에서 배우기를 이 도시엔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 고도성장을 이뤘다고. 그 역사가 그들을 쫓고 있나. 내가 그 성장과 역사에 기여한 바는 없지만, 발 디딘 땅은 자신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배웠으나 알지 못한다. 그것이 내가 도시를 헤매는 이유인가. 속할 곳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인가.


나는 빌딩 숲을 떠나 경기도에 있는 직장에 출근한다. 실내등 아래 온종일 앉아 있었을 파트장의 얼굴이 거무튀튀하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곳곳이 패인 얼굴이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이 입을 열어 소리를 내지만 나의 언어와 다른듯하여 허공에 흩어진다. 결국 그 소리들은 내게 닿기 전 바닥에 추락한다. 나는 그걸 가만히 보다 내 자리로 와 짐을 챙긴다. 주변에 동료들이 보인다.


동료들은 각자의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모니터를 바라본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듯, 종이컵과 달력과 양치컵이 그들의 작은 영토를 설명한다. 그들은 이 도시의 원주민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 사회의.


이 원주민들은 단단한 자기 확신과 알 수 없는 무언가 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이 도시에 속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도망치고 싶다. 빽빽한 높은 건물, 소란한 공사 현장, 긴 줄을 보면 숨이 막힌다. 건물들이 와르르 쏟아질까 봐 두렵다.


그럼에도 내가 떠나지 못하는 것은 평생 나의 본적이 이 곳에 있었기 때문일까, 떠난다는 것이 굳은 결심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 것인가.


나는 하늘을 볼 수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 뒤에 오는 자동차가 앞서가는 사람을 기다려주는 도시.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성장해 온 도시에 살고 싶다. 그런 도시가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 곳을 그리며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죄일까. 아집일까. 세상에 대한 몰이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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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나는 어느 곳에 속하지 못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그건 나의 신념과 가슴의 두근거림보다 나의 말과 행동에 본적을 둔다.


나는 여전히 네이버 뉴스를 읽는다.

무언가 살 때는 리뷰 순과 구매 횟수 순으로 정렬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의 정치 철학을 가늠한다.

비 오는 날 물웅덩이 옆을 지나갈 때, 마주 오는 승용차가 힘찬 악의를 가지고 웅덩이를 세게 밟고 지나갈 것이라 예상한다.

이주자들의 말씨를 예민하게 잡아낸다.


아직은 이 도시를 떠날 수도, 나 자신을 바꿀 수도 없는 것이다.


아직은, 아마도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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