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과학 박물관에서

사랑하는 일을 찾으려면 좀 더 살아봐야 해

by 신재현


암스테르담에서는 NEMO라는 과학 박물관에 갔다. 층마다 테마가 있는 박물관이었는데, 원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치들이 가득했다. 덕분에 나는 미취학 아동들과 함께 레버를 열심히 돌렸다.



그렇게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그곳은 조용했다. 어린이들과 가족들로 가득 찬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붐비지 않는 공간. 5층의 테마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WHAT YOU WANT

당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 아래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은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전통 같은 오래된 것들, 가장 친한 친구의 말, 별생각 없이 따라가는 습관들, 심지어 배고픔이나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감정이나 생리적인 상태까지.


‘오늘은 자전거 대신 버스를 탈까’ 같은 사소한 결정조차, 과연 정말 ‘나’의 선택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저 정해진 흐름 속을 흘러가는 걸까?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걸까?

그리고 ‘자유’란, 과연 행복에 필수적인 걸까? 아니면 때로는 무거운 짐일까?



아주 좋은 생각이다. 좋아. 나한테 필요한 질문이었다. 여행을 와서 뭔가 얻어가야 한다는 생각. 돈을 들인 만큼 뭔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 내 생각이긴 한데, 정말 그랬던 걸까?


설명 옆엔 엽서 네 장과 연필, 책상, 의자가 놓여 있었다. 선반에는 질문에 답한 사람들의 엽서가 가득했다. 그래서 나도 답해보기로 했다.


What do you regret?

당신은 무엇을 후회하나요?


쉽지 않은 질문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후회하고 있는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손으로 내용을 가린 채 적어내려 갔다.


1.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것.

2. 필요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3. 어릴 때 좀 더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4. 내 길이 아닌, 남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 허둥대며 살아온 것.


Why?

왜요?


1. 남의 생각대로 살다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게 됐고,

2. 불안해서 아무 말이나 늘어놓았고,

3.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른 채 살았으며,

4. 첫 번째 이유와 같다.


사실,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건 다들 그렇지 않나?

그게 사회라는 거니까.


What would you like to do differently in your life?

당신은 어떻게 다르게 살고 싶나요?


처음엔 ‘돈 많은 백수요’라고 쓰려다 멈췄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봤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꼭 대기업에 다니고 싶은 게 아니라고.

큰 집이나 차는 없어도 된다고.

작은 방 한 칸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내가 진짜 되고 싶었던 건 그저 어른이 되는 거라고.


Why don’t you do that?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살지 않나요?


그렇게 살면 ‘자랑스러운 자식’ 타이틀은 내려놓아야 하니까.

모두가 큰 집과 차가 필요하다고 말해서.

스스로 앞가림해야 하니까.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은 다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잘 살아가니까.

어른이 되는 법을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Who changed your life?

당신의 삶을 바꾼 사람은 누구인가요?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말렸던 선택을 했을 때였다.(퇴사라던지)


그래서 이렇게 써봤다.


당신의 삶을 바꾼 사람은 누구인가요?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나.


How?

어떻게 바꿨나요?


그건, 이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Which personality trait hinders you?

당신의 어떤 성격이 삶을 방해하나요?


충동적이고, 다혈질이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것.


How?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있었나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눈앞의 일만 보고 멀리 있는 걸 놓쳤으며, 결국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남겼다.


엽서를 다 썼다. 어디로 보낼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책상 위엔 수많은 엽서들이 남겨져 있었다. 그중 하나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는 일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


하지만… 사랑하는 것과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대부분 다르지 않은가?


내가 선택했던 삶이란 이런 거였다. 먹고살기 위해 인생 대부분을 소진하고, 휴일엔 지쳐 누워 있고, 그걸 반복하다 인생이 끝나는 거. 가끔, 정말 가끔 있는 즐거움과 휴가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다시 나를 덮쳤다.


아, 누워있는 일이라면 자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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