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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Apr 02. 2021

30주년을 맞은 왕년의 인기 장르 트립 합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그룹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 1991년 4월 발표한 데뷔 앨범 [블루 라인스](Blue Lines)는 무척 특이했다. 전반적으로 힙합의 성격을 보이는 가운데 전자음악의 요소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때로는 에코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장르인 덥의 어법도 나타났다. 보컬은 래핑과 솔뮤직풍의 싱잉이 공존했다. 앨범의 대기는 내내 축축하고 그늘진 상태였다. 전에 없던 독특한 음악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매시브 어택 같은 음악을 '트립 합'(trip hop)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명칭이 처음 적용된 뮤지션은 매시브 어택이 아니었다. 1994년 영국의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잡지 <믹스맥>(Mixmag)이 미국 프로듀서 디제이 섀도(DJ Shadow)의 싱글 '인/플럭스'(In/Flux)를 소개하면서 최초로 트립 합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플럭스'는 묵직한 드럼 비트를 바탕에 두면서 이런저런 음원을 엮어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내보였다. 이따금 레게 스타일의 보컬도 나왔다. 매시브 어택의 데뷔 앨범과 정서가 비슷했다.

매시브 어택과 [블루 라인스] 앨범

매시브 어택과 디제이 섀도가 들려준 야릇한 힙합은 복합적인 구성 외에 또 다른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은 축 가라앉은 연출로 몽환적인 느낌을 전달했다. 이 때문에 약물에 취한 상태를 뜻하는 영어 속어 '트립'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이후 포티스헤드(Portishead), 트리키(Tricky), 어스링(Earthling) 등 트립 합을 하는 브리스톨 뮤지션이 속속 생겨나면서 트립 합은 브리스톨의 특산품처럼 여겨지게 됐다. 한편 영국의 디제이 제임스 라벨(James Lavelle)이 설립한 음반 회사 모왁스(Mo' Wax)도 1990년대 초반부터 디제이 섀도를 비롯해 디제이 크러시(DJ Krush), 엉클(UNKLE), 호위 비(Howie B) 등 트립 합을 하는 음악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면서 트립 합의 번성을 도왔다.


90년대 중반 들어 모치바(Morcheeba), 디제이 푸드(DJ Food), 시버리 코퍼레이션(Thievery Corporation), 펑키 포시니(Funki Porcini) 같은 아티스트들이 가세함에 따라 트립 합은 단숨에 90년대 영국 대중음악의 인기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이로써 전 세계 음악 팬들은 스네어 드럼, 또는 킥 드럼만으로 구성한 둔중하면서도 성긴 비트, 간혹 울리는 쓸쓸한 관악기 연주, 리듬앤드블루스와 솔뮤직에 영향을 받은 끈끈하고 거친 가창, 실패한 인간관계에 기반을 둔 우울한 노랫말을 장착한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왼쪽부터 포티스헤드, 디제이 크러시, 모치바

트립 합은 영국 특유의 기운을 잉태한 음악이라 할 만하다. 트립 합이 보유한 성질은 5월에서 8월 중순 정도를 제외하고는 쌀쌀한 날이 이어지는 환경, 비가 많이 오는 영국의 기후적 특성이 음악에 고스란히 전이된 경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천년 이후에 나온 트립 합은 초창기의 침울한 느낌을 배제하고 색다른 사운드로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매시브 어택의 역사적인 데뷔 앨범이 출시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 트립 합의 존재는 많이 희미해졌다. 트립 합을 전문으로 하는 뮤지션은 사실상 전무하다. 매시브 어택마저도 트립 합 외에 다른 장르를 시도하곤 했다. 얼터너티브 록, 드럼 앤드 베이스 같은 장르와 마찬가지로 한때 폭발적으로 융성했던 트립 합의 열기도 어느 순간 빠르게 식었다. 그럼에도 최근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세브달리자(Sevdaliza) 등 우울함을 기조로 하는 몇몇 가수가 트립 합을 소화하는 중이다. 언젠가 트립 합도 다시 주류로 복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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