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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Nov 08. 2021

21세기 조선의 음악 새 판을 짜다

국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것도 아주 크고 시원하게. 8월부터 방영된 MBN <조선판스타>에 이어 9월 전파를 타기 시작한 JTBC <풍류대장 - 힙한 소리꾼들의 전쟁> 등 국악을 소재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속속 생겨나는 중이다. 이로써 많은 국악인이 브라운관에 들어서게 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통음악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KBS1 <국악한마당>이 유일했다. 이 사실을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이자 색다른 광경으로 느껴진다.


근래 방송국들이 전통 예술인들을 대동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된 씽씽, 이날치 같은 뮤지션들 덕분에 젊은 세대가 전통음악을 까다롭지 않게 여기는 계기가 마련됐다. 몇 년 사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면서 트로트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부쩍 증가한 탓에 방송국들은 새로운 재료를 찾아야 했다. 국악이 대중에게 어느 정도 친근해지는 국면이 열린 데에다가, 경연 형식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는 으뜸 아이템이기에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악의 저변 확장을 기대해 볼 만하다.


대중매체를 통해 얼굴을 드러낸 신스틸러들

국악인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천금 같은 기회일 수밖에 없다. 전통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변방의 장르다. 대중음악과의 퓨전 작업으로 감상하기에 무난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애초에 청취 인구가 적어서 존재를 알리기가 녹록지 않다.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수많은 시청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선보일 무대가 생겼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이 주목적이지만 아티스트들한테는 본인을 단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강단이 되기도 한다.


참가자 50팀을 추린 <조선판스타>의 예선은 리메이크 위주로 진행됐다. 대부분이 널리 알려진 가요를 국악풍으로 재해석해 불렀다. 혹은 가요에 민요나 판소리를 섞은 공연을 펼쳤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친숙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참가자들에게 리메이크를 레퍼토리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을 테다. 한편 시청자들은 국악의 옷을 입은 노래들을 접하면서 신선함과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국악의 매력을 느꼈을 듯하다. 또한 <조선판스타>는 심사위원들이나 참가자들이 국악 용어를 언급할 때면 자막으로 설명을 달아서 보는 데 어려움이 들지 않도록 했다. 이렇듯 교양적인 면도 충족해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국악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 데뷔 앨범 [remember 신민요]를 낸 퓨전국악 퀸은 (여자)아이들의 '화(火花)'를 선택해 노래에 깃든 고전미를 슬기롭게 적용했으며, 부드러움과 역동성을 겸비한 연주로 근사한 무대를 선보였다. 현실에서 다수가 경험할 법한 일들을 익살스럽게 묘사해 온 경로이탈은 한영애의 '조율'과 고사를 지낼 때 부르는 '비나리'를 합쳐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제향 노래를 들려줬다. 2017년 데뷔해 매달 신곡을 발표하며 근면함을 유지하는 뮤르는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재즈로 표현하는 가운데 피리, 태평소를 활용해 우리 전통악기가 재즈와 어색함 없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연출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NTsnY_V1g

올해 <조선판스타> 이전에 국악인들이 돋보였던 적이 또 있었다. JTBC <슈퍼밴드> 두 번째 시즌에 출전한 박다울, 유병욱, 이한서, 첼로가야금 등이 이채로운 공연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조선판스타>에 출연한 국악인들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대중성을 어느 정도 신경 썼다면 <슈퍼밴드>에 참가한 국악인들은 독창성과 예술성에 방점을 찍었다.


다수의 콩쿠르를 석권한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은 악기 연주나 각종 소리를 입력해 실시간으로 루프를 만드는 '루프 스테이션'을 이용해 무척 참신한 음악을 완성했다. 현을 뜯어 루프를 구성하고, 술대와 손으로 거문고 이곳저곳을 치며 리듬을 만들었다. 그가 쌓아 올린 거문고 연주는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거기에 경쾌하기까지 한, 멋진 실험 음악으로 나타났다. 첼리스트 김솔다니엘과 가야금 연주자 윤다영이 결성한 첼로가야금은 블루스 형태의 창작곡으로 첼로와 가야금이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게 하모니를 이루는 자리를 선사했다. 국악을 바탕으로 팝, 재즈, 애시드 재즈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는 밴드 한다두는 <심청가>의 한 부분을 가져온 노랫말과 소리꾼 이한서의 힘 있는 탁성을 앞세워 전통의 색이 짙은 록을 들려줬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muCxggTFc


국악 신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라이징스타들

거대 미디어만 국악인을 조명하는 것은 아니다.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ARKO한국창작음악제>(국악 부문), <젊은국악 단장>, <해금 앙상블 오디션 - 프로젝트FUN> 등 전통음악계도 실력 있는 유망주를 찾는 사업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다. 이런 활동의 축적과 확장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빛깔을 지니고 다방면으로 시도하는 아티스트가 계속해서 발굴된다. 더불어 국악계도 쇠함 없이 한껏 생기를 분출할 수 있다.


8월 열린 제15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는 여성 4인조 오늘이 대상에 호명됐다. 이들의 창작곡 '자유'는 도입부에 새소리가 나는 피리 연주를 넣어 자연 친화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보인다. 초반에는 잔잔하게 시작하지만 차츰 고조되는 진행으로 에너지를 발산한다. 또한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의 스캣 후렴과 간단한 동작의 율동으로 대중성도 갖췄다. 금상에 오른 오뉴월의 'Pit-a-Pat'은 가야금과 해금의 음색을 부각한 구성, 부드러운 흐름을 통해 듣는 이에게 안락함을 제공한다. 공동 은상인 시도의 '아리아리'는 동서양의 관악기와 타악기가 옹골지고 활기차게 화합하는 장면을 보여 줬다. 또한 긴장과 이완이 확실한 구조로 듣는 재미를 생성했다. 본선에 진출한 10팀의 무대는 새로움, 이채로움, 화려함, 견고함 등 여러 매력을 아울렀다.

https://www.youtube.com/watch?v=nyIk2HS63sw


이처럼 많은 국악인이 방송을 통해, 전문 경연을 통해 기량을 뽐내고 있다. 누구는 전에 쉽게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연출로 놀라움을 안기고, 어떤 이는 세련미와 감각적인 멋을 겸비한 음악으로 국악은 따분할 것이라는 편견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재능과 개성을 보유한 인물이 많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중이다. 뛰어난 국악인들과 그들의 음악 세계를 널리 알리고 주목받게 하기 위해서는 국악인이 주인공이 되는 판이 많이 조성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는 현실이 반갑다.


한편, 지난 7월 31일부터 10월 29일까지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주최하는 ❬2021 신진국악실험무대❭가 열렸다. ❬신진국악실험무대❭는 전통예술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신진 예술가를 발굴해 멘토링 및 레퍼토리 개발, 단독 공연을 지원한다. 올해는 한국무용(6팀), 기악(5팀), 성악(5팀) 부문으로 나눠 진행했고, 총 16팀이 공연을 펼쳤다. 오는 11월에는 장르별로 선발된 우수 단체들이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합동 공연을 연다. 이들의 실황 음원이나 영상도 제작될 예정이며, 향후 재단의 타 사업과 연계해 재공연 기회도 제공해 우수한 역량을 가진 신진 예술가들의 다양한 콘텐츠와 무대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


사실 <조선판스타>, <풍류대장> 이전에도 국악 오디션, 경합 프로그램이 존재했다. 2016년 Mnet은 국악인들이 대중음악 뮤지션들과 대결을 벌이는 <판스틸러 – 국악의 역습>을 편성한 바 있고, 2013년에는 JTBC가 젊은 소리꾼을 뽑는 <소리의 신>을 내보냈다. 안타깝게도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다음 시즌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다. 방송국으로서는 시청률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송국은 다양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악이 대중과 부쩍 가까워진 이때, 국악인이 돋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면 무척 기쁠 듯하다.


https://webzine.kotpa.org/vol39?uid=3016&mod=document&page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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