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No. 1
올 초 보아(BoA)가 걸 그룹으로 데뷔했다. 그가 속한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속 여성 아티스트들을 규합해 새로운 걸 그룹을 만드는 '걸스 온 탑'(Girls on Top) 프로젝트의 첫 주자로 선발된 것이다. 보아는 소녀시대의 태연과 효연, 레드벨벳의 슬기와 웬디, 에스파의 윈터와 카리나 등 여섯 명의 후배와 함께 갓 더 비트(GOT the Beat)로 1월 첫 싱글 'Step Back'을 냈다. 평소 외로움을 이유로 그룹을 선망해 왔던 보아는 갓 더 비트를 통해 잠깐이나마 숙원을 풀게 됐다.
보아는 팀에서 활동 연차가 가장 짧은 에스파보다 20년 먼저 데뷔했으며, 멤버들 중 막내인 윈터와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어색함 없이 멤버들과 조화를 이룬다. 막 데뷔한 실력 좋은 신인이라고 해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다. 춤과 노래가 조금도 녹슬지 않은 데에다가 외형적으로도 관리를 잘한 덕이다. 데뷔 21년 차에 접어든 보아의 음악 세월은 쇠퇴가 아닌 농익음으로 향한다. 대단하다는 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출중한 인물의 비상은 정확히 20년 전에 시작됐다. 2002년 3월 보아의 일본 첫 정규 음반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한국 가수로는 처음 성취한 기록이었다. 수록곡 'Listen to My Heart'와 'Every Heart -ミンナノキモチ-'는 각각 싱글 차트 5위, 10위에 오르며 보아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국내 활동을 병행하던 보아는 같은 해 5월 'No. 1'으로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정상을 석권했다. 연말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SBS <가요대전> 등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겨우 열일곱의 어린 소녀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단숨에 스타로 급부상했다.
2000년 'ID; Peace B'로 데뷔했을 때 보아는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능숙한 보컬과 격한 안무를 선보이며 세간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1집이 18만 장 넘게 팔리는 등 신인치고는 무척 괜찮은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데뷔를 위한 투자액이 무려 30억 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만족스러운 수치는 아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No. 1'에 부여되는 의미는 각별하다. 보아는 2001년 5월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한 뒤 약 10개월 만에 한국과 일본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활약이 미흡했던 그는 'No. 1'으로 비로소 모국에서도 으뜸가는 위치에 섰다. 빈틈없는 기획과 이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훈련이 맺은 결실이었다. 'No. 1'의 히트에 힘입어 보아는 한국과 일본에서 성공을 이어 가게 됐다.
아시아를 누비는 꿈을 이뤄 준 'No. 1'은 경쾌함과 서정미를 겸비해 큰 사랑을 받았다. 노래는 당시 서구 대중음악에서 유행하던 댄스 팝 형식을 채택해 세련된 흥겨움을 발산했다. 그와 함께 댄스곡임에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소녀의 애달픈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촉촉한 감수성을 한껏 드러냈다. 역동적인 리듬과 은은한 코러스는 서로 대비되는 매력으로 곡을 한층 멋지게 만들었다. 또한 보아는 시원스럽게 춤을 추는 중에도 조금의 흔들림 없이 깔끔하게 라이브로 무대를 소화했다. 사람들의 눈길은 보아에게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노래의 히트는 우리 음악 산업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이후 데뷔하는 가수들의 연령이 부쩍 어려진 것이 그중 하나다. 비슷한 또래로 동질감을 형성해 음반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10대를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의 연령대에는 귀여움과 풋풋함을 앞세워 두루 호감을 살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할수록 활동 기간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되니 가수와 제작자 모두에게 득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대한 변화는 '케이팝'(K-pop)이라고 명명된 우리 대중음악이 나라 바깥에서도 힘을 낸 것이다. 새천년을 전후로 여러 가수가 타이완, 중국에서 공연을 열며 외국 시장 진출을 확산해 갔다. 하지만 대부분 한시적인 활동에 그쳤다. 반면에 보아는 음반 출시와 공연을 지금까지도 이어 오고 있다. 현지의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해 언어의 벽을 허물었고,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토대로 그곳 대중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선보인 덕분이다. 이후 다수의 아이돌 가수가 이런 시스템으로 속속 외국에 진출했다.
한편 'No. 1'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일본에 독점 중계하는 TBS 방송국의 테마곡으로 사용돼 더 많은 이에게 보아를 알렸다. 'No. 1'은 이 같은 히트 외에 가수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폭제로서, 케이팝이 외국 시장 진출에 적극성을 띠는 분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아에게도 'No. 1'은 당연히 특별하다. 이 노래가 '아시아의 별'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는 데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법무사지> 2022년 3월호 '세대유전 2080 명곡'
https://www.youtube.com/watch?v=ceZc-5p3g1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