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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Oct 22. 2019

오디션 명가로 불리던 엠넷의 추락

추락하는 것에는 잘못된 날개가 있다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문제로 연예계가 시끄럽다. 논란의 불씨는 7월 19일 전파를 탄 <프로듀스 X 101> 마지막 회에서 타올랐다. 시청자들은 몇몇 최종 후보자들의 표차가 똑같이 나는 점을 들어 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2017년 <아이돌 학교>도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산 바 있어서 원성은 빠르게 확산됐다. 경찰은 엠넷의 모회사 CJ ENM과 <프로듀스 X 101>에 참가한 일부 연예기획사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사건은 국정감사에도 등장했다.


프로그램 애청자들의 분노는 이달 들어 더욱 커지게 됐다. MBC <PD수첩>이 15일 'CJ와 가짜 오디션'이라는 제목을 내건 방송에서 <프로듀스 X 101>과 <아이돌 학교>를 둘러싼 문제들을 파헤친 덕이다. 인터뷰에 응한 프로그램 참가자들에 의해 투표 조작 말고도 여러 구린 부분이 드러났다.

이날 방송 중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특정 참가자들의 본선 진출, 데뷔 팀 합류가 내정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한 참가자는 <프로듀스 X 101>에 출전한 같은 회사의 연습생들 중 한 명만 데뷔 팀에 뽑힌다는 것을 소속사 직원이 이미 알려 줬다고 폭로했다. <아이돌 학교>에 출연했던 이해인은 본선 진출자 40명 중 네 명만 초반 3천 명이 치른 오디션에 나갔고, 나머지 36명은 미리 섭외한 상태였음을 밝혔다.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과 특정 기획사 간의 짬짜미가 의심되는 정황이다.


그런가 하면 <프로듀스 X 101>에서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이 경연에 쓰이는 노래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편파성은 제작진과 기획사들이 야합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따라서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스타쉽 연습생들의 방송 노출 분량이 현저히 많았다는 한 연습생의 불만에 공감을 넘어 신뢰가 간다.

이러한 진술을 접한 탈락자들은 화가 치솟았을 듯하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자기들한테 도움이 되는, 혹은 구미에 맞는 기획사들과 결탁해 짜 놓은 판에 한낱 소품으로 활용된 셈이기 때문이다. 가수를 꿈꾸는 청춘들에게 성공을 미끼로 추악한 농간을 부린 것이나 다름없다.


선발될 인물이 정해져 있으니 투표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과감한 사기극을 한층 성대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부대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허무하게도 이를 모르는 열혈 시청자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참가자가 데뷔하기를 바라며 정성스럽게 문자 투표에 임했다. 어떤 시청자들은 어떻게든 힘을 더 보태고자 가족과 지인에게 문자 투표를 부탁하기도 한다. 수많은 이가 헛돈을 썼다.

문자 투표에는 건당 100원이 든다.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수백만 건의 투표가 이뤄지니 이를 통해 방송은 수억 원의 수익을 벌어들이게 된다.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지불한 돈을 공정하게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기만일 수밖에 없다.


분개해 마땅한 일이다. 엠넷은 이상 실현을 볼모로 어린아이들을 쇼의 인테리어로 부려 먹었다. 또한 좋아하는 참가자를 응원하는 순수한 열정을 악용해 시청자들을 우롱했다. 대한민국에 오디션 돌풍을 일으킨 엠넷은 이제 오디션을 빙자한 야바위꾼으로 보이게 됐다. 지금 엠넷에는 반성, 쇄신, 청렴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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