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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Oct 29. 2019

가을에 나온 여성 포크 가수들의 음반

부흥은 어렵겠지만 반가운 

한때 포크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양식이었다. 낭만적인 노랫말로, 혹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사회를 조소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1970,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수많은 젊은이가 통기타를 연주해 포크 음악은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소리는 잔잔했지만 물결의 높이는 엄청났다.


활황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종료됐다. 댄스음악, 록 음악, 힙합 등 강하고 템포가 빠른 장르가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자리매김하면서 포크는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포크를 주력 장르로 하는 음악인들은 늘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힙합과 아이돌 음악에 치여 기를 못 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여성 포크 가수들이 연달아 정규 음반을 선보여 눈길이 간다.

강원도 삼척의 한 대안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강민정의 첫 앨범 <바람의 선물>을 들으면 1970년대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요즘 포크에서는 읊조리는 보컬이 잘 나타나는 편이다. 반면에 강민정의 가창은 맑고 바르다. 가성도 종종 쓴다. 일련의 모습이 쌍투스 코러스 같은 그 시절 아마추어 합창단을 생각나게 한다.


예쁘장한 가사는 노래들을 한층 청아하게 만든다. 사계절 저마다 다른 정경에 감사함을 표하는 '선물', 사람들이 각자의 삶과 얘기를 자유롭게 펼치길 바라는 '불어라 바람아',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 모두는 늘 누군가와, 또는 무언가와 함께하고 있다고 말하는 '혼자가 아니더라' 등 모든 노래가 한 편의 시다. 깔끔한 글귀 사이사이로 인간미가 피어오른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 정식으로 데뷔한 이송미의 두 번째 정규 음반 <일상을 보다>는 높은 채도를 내보인다.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에 서는 가운데 현악기, 플루트, 클라리넷, 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가 덧입혀져 화사한 톤을 연출한다. 악기들이 빚는 소리가 나긋나긋하고, 곡들의 구조도 단순해서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만하다.


앨범 제목이 귀띔하듯 이송미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소재로 취했다. '자양동 네거리'는 어느 겨울 서울 자양동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느낀 감동을, '졸업'은 고등학교를 떠나 더 큰 세계로 나갈 때 들었던 설렘과 두려움에 대해 얘기한다. '도시가 숨을 쉰다'는 미관을 목적으로 여기저기서 재개발이 이뤄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오래된 풍경도 남아 있기를 바란다. 소소한 내용은 알고 지내던 사람과 담소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2002년 데뷔한 이래 부지런히 작품 활동과 공연을 이어 오며 지지 세력을 확보한 박강수의 새 앨범 <독백>은 매우 정적이다. 첼로와 건반악기를 곁들이긴 하지만 빈도가 낮으며, 도드라지지도 않아서 통기타가 거의 홀로 나서는 모양새다. 왈츠 형식의 '너의 노래는'과 멜로디언으로 아기자기함을 도모한 '이별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노래들은 다 잠잠하다.


이 고요함이 오히려 흡인력으로 작용한다. '독백', '당연한 슬픔', '난 항상 여기 있어요' 등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화자의 상태가 더욱 처연하게 전달된다. 보컬이 선명하게 나오니 노랫말에 빠르게 집중할 수 있다. 앨범을 관통하는 주재료 이별, 그리움이 지금 같은 가을 날씨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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