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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Jan 28. 2020

패션을 선도한 힙합 뮤지션들

음악계를 넘어 의류 업계를 지배하다!

오는 6월 26일 다큐멘터리 영화 <프레쉬 드레스드>(Fresh Dressed)가 개봉한다. 뮤지션, 텔레비전 제작자, 큐레이터 등 여러 직함을 달며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저널리스트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을 맡은 <프레쉬 드레스드>는 힙합 패션의 역사를 훑는다.


어번 패션(urban fashion)으로 불리기도 하는 힙합 패션은 1970년대 중반 힙합 문화의 한 축인 브레이크댄스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광범위한 트렌드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특정 브랜드로 자신만의 특징을 창출한 래퍼들이 출현하고 90년대 들어 힙합 음악이 주류의 핵심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개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의복 양식이 됐다. 오늘날에는 스트리트 패션과 거의 동일시되면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청년 문화, 힙합 패션에 관심이 있는 이가 보면 좋을 영화다.


영화는 퍼프 대디(Puff Daddy, Diddy), 카녜이 웨스트(Kanye West),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같이 패션과 깊은 연관을 맺는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담아 흥미로움을 더한다. 영화에 출연한 이들 외에도 런 디엠시(Run DMC), 엘엘 쿨 제이(LL Cool J), 엠시 해머(MC Hammer), 티엘시(TLC) 등 개성 강한 패션이 바로 떠올려지는 힙합 뮤지션이 많다. <프레쉬 드레스드>는 세련된, 혹은 파격적인 센스를 내보인 가수들을 헤아려 보게 만든다.


Run-D.M.C. | 슈퍼스타는 옛날부터 유행이었어

랩과 록의 퓨전을 모색한 초기 힙합 아티스트 가운데 하나인 런 디엠시의 업적은 음악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 트리오는 청바지, 가죽점퍼, 검은 중절모로 독보적인 멋을 뽐냈고 흑인 사회에 대유행을 일으켰다. 여기에 화룡점정이 된 것이 하얀색 '아디다스'(Adidas) 슈퍼스타 신발, 이것을 끈을 끼우지 않은 채로 착용해 색다름을 내보였다.


이들은 아디다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1986년 헌정곡 'My Adidas'를 발표했다. 노래가 큰 사랑을 받음에 따라 런 디엠시는 아디다스와 후원 계약을 맺는 겹경사를 만끽했다. 이후 아디다스는 런 디엠시의 로고가 새겨진 슈퍼스타 특별판을 출시하기도 했다.


요즘 거리에 나가면 슈퍼스타를 신을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 아이템이 됐지만 사실은 아주 옛날부터 인기였다.


Kanye West | 힙합에 슈트를 입힌 사나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래퍼들의 패션은 빅사이즈 일색이었다. 하지만 카녜이 웨스트는 면바지에 셔츠, 또는 정장을 입고 나타남으로써 패션의 격식 파괴를 선언했다. 거리의 부랑아와 일치되던 힙합의 이미지는 카녜이 웨스트 덕분에 고급스럽게 변했다. 또한 그가 설정한 곰돌이 캐릭터는 귀여움을 어필해 힙합이 보편적으로 비친 드센 느낌을 줄이는 역할도 했다.


Nicki Minaj | 좀 부담되는 바비 인형 코스프레

특정 브랜드의 옷이나 특징적인 소품을 착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션을 얘기할 때 니키 미나즈(Nicki Minaj)를 빼는 것은 예의가 아닐 듯하다. 그녀는 총천연색의 의상, 원색의 가발 등 일상적이지 않은 외양으로 '흑인 레이디 가가(Lady Gaga)'라는 별칭을 얻었다. 다만, 바비 인형처럼 보이고 싶다는 의지는 심히 글래머러스한 몸매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작년에 낸 세 번째 앨범 [The Pinkprint]에서는 그동안 들려준 스타일과는 다른 어두운 분위기의 힙합을 시도했으니 이제는 의상에도 변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Marky Mark | 팬티의 왕

이제는 온전히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마크 월버그는 1990년대 초반 래퍼 마키 마크(Marky Mark)로서 인기 깨나 누렸던 인물이다. 당시 백인 래퍼는 흔치 않아서 더 주목받기도 했지만 준수한 외모와 탄탄한 근육질의 몸으로도 많은 여성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데뷔곡 'Good Vibrations'의 뮤직비디오에서 육체미를 한껏 뽐냈다. 여기에서 마키 마크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로고가 보이게끔 바지를 내려 입었는데, 이를 계기로 캘빈 클라인의 모델로 발탁됐다. 마키 마크 때문에 이후 남성들 사이에서 팬티 라인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 됐다.


최근 팬티를 다 드러낼 만큼 바지를 내려 입는 새기 팬츠(saggy pants) 스타일이 화제가 됐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이렇게 옷을 입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금지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새기 팬츠의 시초가 마키 마크는 아니지만 팬티를 드러냈음에도 혐오감 대신 근사하다는 인상을 심은 그를 떠올리면 역시 결론은 하나,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며 몸이다.


LL Cool J | 캥거루를 사랑한 쿨 제이

힙합 명가 데프 잼(Def Jam) 레이블의 도약을 이끈 엘엘 쿨 제이는 트레이닝복과 커다란 금목걸이, 붐박스(커다란 휴대용 카세트덱)로 외적 특징을 설정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옷이 바뀌고 아이템들이 사라졌지만 '캥골'(Kangol) 모자만큼은 그대로 착용했다. 버킷햇이든 헌팅캡이든 모자 브랜드는 항시 캥골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변동이 생겼는데, 야구모자나 비니는 대체로 다른 브랜드를 썼다. (솔직히 캥골은 헌팅캡과 버킷햇만 예쁘긴 하다.)


엘엘 쿨 제이에게는 모자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건이 있다. 래퍼 쿨 모 디(Kool Moe Dee)는 엘엘 쿨 제이가 본인의 래핑 스타일을 따라 했다며 1987년에 발표한 앨범 [How Ya Like Me Now]의 몇몇 수록곡을 통해 엘엘 쿨 제이를 공격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노래뿐만 아니라 앨범 커버에서도 분노를 표출했다. 엘엘 쿨 제이의 트레이드마크인 캥골 모자를 지프가 밟은 사진을 커버로 사용한 것이다. 대중에게는 재미였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지긋지긋한 디스전(戰)의 시작이었다.


1990년대 중반 무렵 엘엘 쿨 제이는 힙합 의류 브랜드 '푸부'(FUBU) 모델로 활약했다. 아, 추억의 'For Us By Us'여. 푸부는 삼성, 정확히는 제일모직의 투자를 받아 국내에서도 널리 선전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졌다.


Kris Kross | 이러고 밤에 돌아다니지 마라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이 랩을 한다는 것도 새로웠지만 패션은 더 특별했다. 1992년 'Jump'를 외치며 지구촌을 들썩거리게 만든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는 옷의 앞뒤를 바꿔 입는 피격적인 센스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용변을 볼 때의 불편함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힙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패션을 쉽게 따라 하지 못했다. 더불어 그렇게 입었을 때 뒤를 보면 목이 돌아간 것처럼 보여 한편으로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는. 그들 역시 이 콘셉트는 한시적이라고 생각했는지 2집부터는 옷을 바로 입었다.


Diddy | 나름대로 인기 브랜드의 창시자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어린 시절 겪은 일화들을 담아낸 시트콤 <크리스는 괴로워>(Everybody Hates Chris) 중 한 에피소드에서 이런 내레이션이 흐른다. "퍼프 대디가 의류 사업에 뛰어들기 전 흑인들은 싼값에 옷을 살 수 있었다"는.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퍼프 대디로 익숙한 디디가 1990년대 말 자신의 의류 브랜드 '숀 존'(Sean John)을 론칭하기 전부터 '패트 팜'(Phat Farm), '에코 언리미티드'(Ecko Unltd.), '러그즈'(Lugz) 같은 어번 패션 브랜드들이 꾸준히 등장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나 '토미 힐피거'(Tommy Hilfiger), '랄프 로렌'(Ralph Lauren) 같은 브랜드의 스포츠, 데님 라인 옷을 크게 입던 시대가 가고 힙합에 특화된 옷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전문 디자이너가 제작하고 기업이 주도한 탓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숀 존 또한 유명 뮤지션인 디디의 위치, 고급스러운 느낌 등을 고려해 비교적 높은 가격을 매겼다.


숀 존은 강북은 이대, 강남은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힙합 옷을 파는 멀티숍 블록이 형성돼 있었을 때 잘나가던 브랜드 중 하나였다. 아직도 옷장에 두고 있는 힙합 마니아들이 있을 듯.


MC Hammer | 돌고 도는 유행의 시초

최근 국내에서 다시 유행하는 배기팬츠, 사루엘팬츠의 폭발적 인기의 시초는 엠시 해머였다. 그가 1990년에 발표한 'U Can't Touch This'가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뮤직비디오에서 보여 준 러닝 맨(The Running Man) 춤과 배기팬츠는 대대적으로 보급됐다. 또한 화려한 색감, 반짝이 장식이 많이 달린 오버사이즈 피트의 양복도 그의 공식 의상이었다.


TLC |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워너비

R&B, 힙합 트리오 티엘시는 노래와 퍼포먼스로 자유분방하고 동적인 이미지를 표했다. 더불어 패션 브랜드 '크로스 컬러스'(Cross Colours)의 원색 의상을 주로 착용해 그 느낌을 극대화했다.


멤버들 모두 화려하게 옷을 입었지만 그중 래퍼 레프트 아이(Left Eye)가 가장 튀었다. 그녀는 큼지막한 애플햇을 써서 더 두드러졌다. 게다가 안전한 성관계를 홍보할 목적으로 오른쪽 렌즈에 콘돔을 낀 안경을 써서 언제나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199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CrazySexyCool]의 'Creep' 뮤직비디오에서는 기존 스타일 대신 실크 소재의 파자마와 브라톱으로 섹시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때의 패션은 영국 R&B 걸 그룹 엠오(M.O), 우리나라 여성 힙합 트리오 러버소울 등에게 영향을 줬다. 2002년 레프트 아이가 자동차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이 멋진 말괄량이들을 온전한 3인조로 다시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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