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런하는 뮤지션 윤건의 궤적

음악적 장점이 선명하게 새겨진 역사

by 한동윤

윤건은 부지런한 뮤지션이다. 올해로 데뷔 21년을 맞은 그는 이렇다 할 공백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여 왔다. 또한 윤건은 변화하는 음악인이다. 힙합으로 시작해 R&B를 지나 팝과 발라드를 탐험하고 있다. 이 사이 댄스음악도 록도 했다. 윤건은 뚜렷한 자기 색을 지닌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피아노 연주, 서정미, 도회적 기운을 항상 지녔다. 성실, 다채로움, 정체성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춰 음악가로서 그의 위상은 환하게 빛난다.


시작, 그보다 앞선 특별한 시작

다수의 음악팬이 윤건을 거론할 때면 브라운 아이즈를 떠올린다. 브라운 아이즈의 노래들이 많은 이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며,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라디오 전파를 타기 때문이다. 브라운 아이즈는 윤건과 평생 동행하는 간판이나 다름없다.


브라운 아이즈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윤건은 사실 이전부터 흑인음악, 댄스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여성 트리오 디바가 1997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중 타이틀곡 '그래'와 '비몽 (The Dreamer)', '원(怨) (One)' 등을 작곡했고, 이 인연으로 이듬해 나온 디바의 2집 프로듀스를 맡았다. 이어 1999년 발매된 힙합 컴필레이션 [1999 대한민국]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더욱 인지도를 높였다.


1999년 윤건은 남성 4인조 랩 댄스 그룹 팀(TEAM)을 결성해 가수로 데뷔한다. 안타깝게도 비교적 빠른 템포, 발랄한 훅으로 흥을 발산한 타이틀곡 '이것 봐'는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행히 후속으로 선보인 '별(別)'이 부드러운 선율, 서정적인 분위기로 인기를 얻었다. '별(別)'은 인터넷에서 소문을 타면서 그 시절 젊은 세대의 명곡으로 등극했다.


윤건은 1996년에 나온 정지우의 데뷔 앨범 [Turn On]에 수록된 '이(離)-연(緣) (이별의 인연)', '긴 이별이 지나고...' 등을 작곡하며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정지우의 음반이 상업적으로 실패함에 따라 윤건의 작품 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이때는 발라드를 지었으나 흑인음악으로 스타일을 바꾸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브라운 아이즈, 대중을 사로잡은 빅히트

2393.jpg

팀은 [2000 대한민국] 앨범 참여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집을 계획하던 중에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당시 새 멤버로 영입하려던 나얼만 남게 되면서 윤건은 나얼과 함께 새로운 그룹 브라운 아이즈를 결성한다. 이때부터 본명 양창익 대신 예명 윤건을 썼다.


브라운 아이즈는 '벌써 일 년'으로 2001년 데뷔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 유행하던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고, 나얼의 출중한 가창은 듣는 이가 귀를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윤건이 지은 멜로디의 흡인력이 컸기에 뜨거운 지지를 받는 일이 가능했다. '벌써 일 년'은 싸이월드 배경음악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다.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은 탓에 '얼굴 없는 가수'로 불렸으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집에서는 '벌써 일 년'에 이어 'With Coffee...', 공일오비의 원곡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재가공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두 번째 이야기' 등이 카페와 길거리에 꾸준히 울려 퍼졌다. 2002년 출시한 2집도 '점점', '비 오는 압구정', 'For You' 등이 사랑을 받아 60만 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른 방향성으로 2집 이후 떨어져 있었던 둘은 2008년 브라운 아이즈로 세 번째 앨범을 선보인다. 많은 음악팬이 6년 만에 이뤄진 재결합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3집 타이틀곡 '가지 마 가지 마'는 그해 대한민국 전역에 울린 히트곡 중 하나였다.


변화와 대중성을 완비한 솔로 활동

109504_1_f.jpg
149602_f_1.jpg

2003년 선보인 첫 솔로 앨범은 브라운 아이즈보다 조금 가벼웠다. 피아노를 비롯한 어쿠스틱 악기가 리드하는 맑은 팝이 많이 분포했다. 하지만 조금도 느슨하지 않았다. 보사노바 성격을 취한 '어쩌다'와 'Another Paradise', 라틴 재즈의 인자와 살랑거리는 선율이 어우러져 무척 예쁘장하게 들리는 '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 등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로 감상의 재미를 충족했다.


2004년에 낸 2집 중 'My Sun'도 변화의 목록에 자리한다. 노래는 미국 록 밴드 브루스 혼스비 앤드 더 레인지(Bruce Hornsby and the Range)의 1986년 싱글 'The Way It Is'가 연상되는 피아노 록 형태의 반주로 청량감을 안겼다. 더불어 베이스 연주를 부각해 탄력도 겸했다.


변신은 거듭됐다. 델리 스파이스의 대표곡 '챠우챠우'를 리메이크해 실은 2012년 앨범 [Far East 2 Bricklane], 북유럽의 백야에 영감을 얻어 만든 2013년 앨범 [Kobalt Sky 072511]에서는 완전히 브릿팝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장르는 확 달라졌지만 윤건 음악이 지닌 세련미와 나긋나긋한 멜로디는 그대로였다. 혁신과 친근함이 공존한 순간이라 할 만하다.


윤건은 단 한 순간도 정체하는 법이 없었다. 지속적으로 신작을 내놨고, 여러 드라마 OST를 소화하며 브라운관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였다. 이와 더불어 소녀시대 서현과 호흡을 맞춘 'Don’t Say No', 오렌지캬라멜의 리지, 래퍼 지조를 대동한 '케미', 비투비 임현식과 함께한 '비 오는 압구정' 등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도 여러 차례 벌여 젊은 감각을 나타냈다. 그의 행보에는 활기가 묻어난다.


탄탄한 짜임과 보편성이 어우러진 발라드 '하루에도 열두 번'

[MV] YOON GUN(윤건) _ 12 times a day(하루에도 열두 번).mp4_20200122_171508.271.jpg

무소식의 상태가 길었다. 윤건은 2018년에만 네 편의 싱글을 냈다. 하지만 작년에는 신곡을 공개하지 않았다. 팬들의 가슴속에는 '오매불망'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새겨졌을 테다. 1년을 기다린 끝에 선물 '하루에도 열두 번'이 도착했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가 밀착해 흐르는 전주는 짧지만 강렬하다. 노래의 애틋한 정서를 압축해서 전달해 준다. 담담함과 촉촉함이 섞인 윤건의 보컬은 이별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화자의 심리를 대변한다. 연출력과 표현력이 단시간에 느껴진다.


구성도 근사하다. 잠잠한 흐름 안에 뚜렷한 고저가 존재한다. 1절과 2절 사이 간주부터 옅게 울리던 현악기는 점점 소리를 키우기 시작해 브리지와 마지막 후렴에서 크게 터진다. 다시 피아노와 기타가 나서는 후주는 처연함을 증대해 여운을 남긴다.


다수가 공감할 가사도 매력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며 같은 감정을 나누던 일, 그 사람의 취향을 서서히 닮아 가는 화자에 대한 설명은 보편성으로 청취자들을 노래에 몰입하게 할 만하다. 전반에 서린 미련의 태도는 이별을 경험한 이들의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찬 공기가 퍼져 있는 요즘 같은 날에 어울리는 노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력자에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 가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