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힙합의 중핵이 된 래퍼 스쿨보이 큐

웨스트코스트 부흥의 한 축이기도 하다.

by 한동윤

갱스터 랩이 서구 대중음악의 부정할 수 없는 주연이었을 때가 있었다. 여러 나라의 음악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고 많은 젊은이가 갱스터 랩 가수들의 행동과 패션을 따라 하는 등 상업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갱스터 래퍼들이 미국 서부에 집중돼 있던 탓에 어느 순간 서부 힙합과 동의어처럼 적용되곤 했으며 힙합의 발원지인 동부 지역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동부 하드코어 힙합의 부흥과 함께 아웃캐스트(OutKast), 본 석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 등 그동안 힙합 신에서 변방으로 간주된 남부, 중부 출신 뮤지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갱스터 랩은 급속히 쇠퇴해 갔다. 그렇게 대단한 힘을 과시하던 갱스터 랩이 저물자 서부 또한 무기력해지는 상태를 보였다. 1990년대 초, 중반의 모습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갱스터 랩, 서부 힙합은 최근 몇 년 전부터 다시금 힙합 마니아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 르네상스의 기운을 북돋는 유력한 뮤지션으로 스쿨보이 큐(Schoolboy Q)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한 지 몇 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갱단에 몸담았던 이력, 거친 생활을 토대로 한 과감한 표현, 곡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래핑 톤, 여느 래퍼들과 차별화되는 벙거지 패션 등으로 그는 나날이 존재감을 드높이는 중이다. 또한 앱소울(Ab-Soul), 제이 록(Jay Rock),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등 음악계가 주목하는 서부 출신 신예들과 힙합 그룹 블랙 히피(Black Hippy)를 조직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스쿨보이 큐는 한동안 부득이하게 힙합 명소로서의 타이틀을 내줬던 서부에 소생의 숨을 불어넣는 특별한 인물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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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보이 큐는 출생과 유년 시절부터 남달랐다. 1986년 군인이었던 부모님은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그를 낳았지만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군에 남기를 원했다. 이로 인해 둘은 결별했고 어머니만 그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때 어머니는 아들과 같은 성을 사용하는 가족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무작위로 성을 정해 스쿨보이 큐에게 퀸시 매튜 핸리(Quincy Matthew Hanley)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도미 후 첫 3년 동안 텍사스에서 지낸 다음 로스앤젤레스의 피게로아가(街) 근방으로 이주한 그는 여섯 살 때부터 미식축구를 시작해 대학에 진학해서도 선수로 활동했지만 학업에는 애초에 취미가 없었고 프로 선수에 야망을 품지도 않았다. 고작 열두 살에 갱단에 들어가 거리를 누비며 마약상 생활을 시작했고 스물한 살 때에는 6개월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 '스쿨보이'라는 평범한 학생 이미지의 별명과 다르게 그의 삶은 험한 게토에 가까웠다.


다행히도 불량배 외길 인생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가사를 적기 시작하면서 위안을 찾았다. 랩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민이나 이런저런 문제로 억눌러 왔던 것들을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움,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교도소에 다녀온 뒤인 2007년부터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음악이라 생각했고 부스 안에 들어가 그동안 글로만 담아 온 이야기를 음성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2008년 첫 믹스테이프 [Schoolboy Turned Hustla]를 발표한 뒤 운 좋게도 이듬해에 인디 레이블 톱 도그 엔터테인먼트(Top Dawg Entertainment)와 계약하게 됐다. 이곳에서 현재 서부 힙합의 신성들 켄드릭 라마, 제이 록, 앱 소울과 인연을 맺었으니 정식으로 데뷔하기도 전에 좋은 환경을 구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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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두 번째 믹스테이프 [Gangsta & Soul]로 한 번 더 마니아들의 시선을 끈 그는 2011년 데뷔 앨범 [Setbacks]를 발표하며 주류 시장에 진입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00위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지만 첫걸음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더불어 매체들이 다양한 소재를 취합한 가사와 잘 다듬어진 음악에 대해 호평함으로써 기대되는 루키로 지위를 더 높이게 됐다. 다음 해에 출시한 2집 [Habits & Contradictions]도 연달아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비트는 그러한 정서를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탄력을 잃지 않았고 미니멀한 리듬 사이에서 스쿨보이 큐의 래핑은 더욱 활력 있게 들렸다. 콤플렉스(Complex), 피치포크 미디어(Pitchfork Media) 등이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 이 음반을 빼놓지 않았을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스쿨보이 큐는 2012년 메이저 레이블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와 계약하며 힙합 신을 넘어 음악계 전체가 눈여겨보는 아티스트로 장성했음을 천명했다. 새 앨범 [Oxymoron]의 리드 싱글 'Yay Yay'는 2013년 빌보드 R&B/힙합 싱글 차트 49위에 올라 그동안 없던 싱글 차트 기록을 새롭게 작성했다. 같은 해 발표한 'Collard Greens'는 처음으로 빌보드 핫 싱글 차트 100위 안에 진입했다. 일련의 성과는 그가 드디어 유명 뮤지션 반열에 들었고 대중의 지지 또한 비례해 증가했음을 일러 주는 것이었다. 스쿨보이 큐도 팬들의 응원에 부응하고자 앨범 출시를 거듭 미루며 내실에 만전을 기했다. 이 때문에 세 번째 스튜디오 음반이자 첫 메이저 데뷔 앨범 [Oxymoron]에 대한 팬들과 평단의 기대는 곱절 이상으로 증대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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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서도 스쿨보이 큐는 디지 포닉스(Digi+Phonics), 네즈 앤 리오(Nez & Rio), 디제이 다히(DJ Dahi) 등 데뷔 때부터 함께한 프로듀서들과 짝을 이뤘다. 이 덕분에 전작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럼에도 성향이 다른 프로듀서들의 곡은 독자적 성질을 나타내 다채로움을 조성한다. 'Collard Greens'와 'What They Want'는 미니멀한 비트가 흡인력을 발휘하며 'Prescription/Oxymoron'은 장엄하게 나가다가 늘어지는 스냅 뮤직으로 반전의 재미를 주고 'Hell of a Night'는 하우스 느낌을 밴 비트와 트랩이 혼합해 이채로움을 안긴다. 둔탁한 드럼 루프와 보컬에 가한 울림 효과가 인상적인 'Hoover Street'와 1990년대 초반 동부 힙합을 연상시키는 'Break the Bank'는 예스러운 흥취를 전한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클럽 튠 'Los Awesome'이 가장 이질적이지만 대부분 수록곡들은 전부 탁함과 어두움으로 모인다. 이로 말미암아 1집부터 이어져 오는 흑백 앨범 커버가 한층 강렬하게 느껴진다.


가사 역시 무거운 이미지, 갱스터의 삶으로 일관한다. 'Gangsta'는 도입부에 어린아이의 귀여운 목소리와는 딴판으로 내내 과격한 으름장을 놓고 'What They Want'는 사회 규범과 도덕에 아랑곳하지 않는 불량배의 삶을 얘기하며 사람들은 사실 이런 걸 원할 거라고 단언한다. 'Studio'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노골적이면서도 달콤하게 그리며, 'Man of the Year'로는 여자들이 자신에게 환장한다면서 스스로를 최고의 갱스터라고 추대한다. 앨범 여기저기에서 약물과 알코올로 가득한 파티가 열리며 여성을 쓰다듬고 라이벌 폭력단을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뒷골목 악당의 체험담과 허세로 충만한 노랫말은 갱스터 라이프의 전시회나 다름없다.


디럭스 버전에 담긴 노래들은 모두 흐리터분해 앨범 전반에 미친 침잠된 분위기를 일층 짙게 한다. 반복되는 가사가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을 떠올리게 하는 'His & Her Fiend'는 이중으로 덧입힌 보컬과 레이블 동료인 R&B 가수 시자(SZA)의 코러스 때문에 묵직함이 크게 드러난다. 남녀가 환각 상태에 빠진 채 세상을 유람하는 기분을 내는 가사도 흐릿함에 한몫한다. 'Grooveline Pt. 2'도 시자의 은은하면서도 관능적으로 들리는 스캣, 느긋하게 여성을 탐닉하는 가사, 부드러운 기타 샘플로 차분함을 띤다. 이 와중에 서부 힙합의 대선배 슈거 프리(Suga Free) 특유의 빠르게 내레이션을 하는 듯한 래핑은 마니아들에게 반가움으로 다가올 듯하다. 자기가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래퍼라고 자부하는 'Fuck LA'는 단조로운 비트와 낮게 깔리는 신시사이저로 강건한 냉기를 표현한다. 추가된 노래들에서도 계속해서 어두운 이미지를 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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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두 앨범은 디지털 다운로드로만 공개했으나 [Oxymoron]은 스쿨보이 큐의 디스코그래피 중 최초의 피지컬 음반이라는 점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스쿨보이 큐가 본격적인 프로페셔널로,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넘어온 기록적인 궤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앨범을 둘러싼 유의미한 사항들 외에 소소한 재미를 제공하는 부분도 있다. 얼굴을 다 내놓은 스탠더드판과 달리 디럭스 버전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진으로 차별화를 기한다는 점, 커버로 사용한 사진의 찢어진 면이 스탠더드와 디럭스가 다르다는 점이 그렇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집이 1집의 앞선 이야기를 보여 주는 속편으로 계획했던 것처럼 [Oxymoron]이 [Habits & Contradictions]의 프리퀄 역할을 할 거라는 주장도 청취자들에게는 작은 즐길 거리가 되는 이슈일 것이다.


앨범은 발매 첫 주에 1만 4천 장 가까이 팔리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이전의 두 정규 음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약적인 성적이다. 대형 레이블 인터스코프의 후원을 입었다는 요인도 존재하겠으나 스쿨보이 큐의 실생활에서 도래한 직설적인 가사, 기억에 빠르게 들어서는 개성 강한 래핑이 제대로 마력을 떨쳤다고 볼 수 있다. 트렌드와 고풍스러움, 전통적인 스타일을 망라한 강고한 트랙들도 통일성을 띠며 앨범의 격을 한 단계 높인다. 매체들 또한 스쿨보이 큐의 번듯한 기량과 흥미를 자극하는 텍스트, 객원 뮤지션들과의 고른 화합을 언급하며 찬탄을 보냈다. 그간 평단과 음악팬들의 관심이 결코 과하지 않았음을 [Oxymoron]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했다. 스쿨보이 큐에게서 서부 힙합 부흥의 동력이 느껴진다.


2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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