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너티브 R&B 개척자의 과감한 변신

The Weeknd [Starboy]

by 한동윤

냉기를 머금은 노래들은 이내 팝 음악계에 열기를 지폈다. 실로 희한한 일이었다.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위켄드(The Weeknd)가 2011년에 낸 첫 믹스테이프 [House of Balloons]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갑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수록곡들의 기운과 외형은 하나같이 무기력함과 우중충함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 우울한 노래들에 매체와 음악팬들의 찬양이 쏟아졌다. 기존 장르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색다른 퓨전 스타일, 사랑에 대한 처절한 갈구, 날카롭고도 유려한 보컬에 많은 이가 흠뻑 취했다. 얼마 후에는 위켄드의 독특한 문법을 수렴, 발산하는 뮤지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명의 가수는 순식간에 돌풍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정식으로 음반을 발표하기 전 위켄드는 인터넷에서 예열 작업을 거쳤다. 유년 시절부터 소울, 힙합, 인디 록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그는 2010년 어두운 톤의 R&B를 계획하던 프로듀서 제레미 로즈(Jeremy Rose)를 만나 음악을 만들게 된다. 제레미 로즈의 도움을 받으며 'What You Need', 'Loft Music', 'The Morning' 등 세 곡을 녹음했고 이를 본명 아벨 테스페이(Abel Tesfaye) 대신 위켄드라는 예명으로 유튜브에 게재했다. 노래들이 네티즌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위켄드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후 그는 독 매키니(Doc McKinney), 일앤젤로(Illangelo) 등의 캐나다 프로듀서들과 협업해 2011년 세 편의 믹스테이프 [House of Balloons], [Thursday], [Echoes of Silence]를 선보인다. 이 비정규 음반들이 매번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음으로써 그는 빠르게 존재를 알리게 됐다.

위켄드는 2013년 첫 번째 정규 앨범 [Kiss Land]를 발표한다. 서로 다른 두 노래를 연결한 듯한 변주가 긴장감을 키우는 'Kiss Land', 싸늘한 기운을 내내 내보이는 중에 힙합풍의 후렴이 강도를 보충하는 'Live For', 육중하고 매섭게 내리찍는 드럼 프로그래밍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상반되는 매력을 담당한 'Belong to the World' 등 어둡고 습기 가득한 특유의 기조가 변함없이 나타났다. [Kiss Land]는 빌보드 앨범 차트와 영국 앨범 차트에서 각각 2위, 12위를 기록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히트 가수로 한 단계 위치가 상승한 위켄드는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카빈스키(Kavinsky), 위즈 칼리파(Wiz Khalifa), 시아(Sia)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특히 아리아나 그란데와 듀엣으로 부른 'Love Me Harder'는 빌보드 싱글 차트 7위를 기록해 그의 첫 히트 연혁을 작성하게 됐다.

데뷔 때부터 상승 곡선을 그린 위켄드는 2015년 2집 [Beauty Behind the Madness]로 더 큰 도약을 일군다. 믹스테이프와 1집에 호평이 계속 따랐음에도 솔로 아티스트로서 히트곡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사운드트랙으로 출시한 'Earned It'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하며 개인 히트의 물꼬를 틀었다. 2015년 5월에 낸 'The Hills'는 같은 차트 5위에 올랐고, 6월에 공개한 'Can't Feel My Face'는 빌보드 차트 정상 등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유튜브에서 이용자들의 환호에 힘을 얻던 변방의 신출내기가 완연한 팝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오로지 음악으로 어필한 결과이기에 더욱 놀랍다.


새 앨범을 통해서는 변화에 무게를 둔다. 위켄드는 얼터너티브 R&B, 혹은 PBR&B(주류 문화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기호를 중시하는 미국의 힙스터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 브랜드 '팹스트 블루 리본'(Pabst Blue Ribbon)에 착안해 생겨난 명칭)를 개척한 인물이다. 얼터너티브 R&B는 일렉트로니카, 록, 힙합 등을 접목한 퓨전 양식이지만 이름이 명시하듯 R&B 성향을 기본으로 갖는다. 그런 그가 세 번째 앨범 [Starboy]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적극적으로 소화한다. 물론 [Kiss Land]의 'Wanderlust', [Beauty Behind the Madness]의 'Can't Feel My Face' 등으로 댄스음악을 선보이긴 했어도 전보다 이번 앨범에서 표현 범위가 확실히 넓다. 과거와 달라진 노선이 듣는 재미를 곱절로 만든다.

지난 9월 말에 출시돼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한 리드 싱글 'Starboy'는 변화에 대한 언질이었다. 위켄드는 어두침침한 대기를 전달하면서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와의 작업으로 신시사이저가 앞에 나서는 형태를 완성했다. 과하지 않은 은근한 부각이지만 한편으로는 또렷함도 동반하는 편곡이었다. 'Starboy'에 이어 홍보 싱글로 공개한 'False Alarm'은 변신을 더 분명하게 나타낸다. 전자음과 함께 BPM(1분당 비트 수) 170이 훌쩍 넘는 빠른 템포로 내달리는 반주는 위켄드가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미다스의 손 맥스 마틴(Max Martin)이 장중하고도 다이내믹한 루프를 제공한 'Rockin'', 1980년대 신스팝의 고풍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Secrets', 보코더로 윤색한 코러스가 아련함을 자아내는 'I Feel It Coming'은 일렉트로니카로의 노선 변경을 거듭해 주장한다. 포스트 디스코와 일렉트로팝을 버무린 'A Lonely Night' 역시 스타일 변동의 지분을 차지하는 노래다.


하지만 완전히 과거와 단절을 선언한 것은 아니다. 기존에 해 온 복합 형식의 어두운 톤의 R&B를 유지하는 노래도 많다. 트랩풍의 냉랭한 베이스라인과 노이즈를 가한 보컬이 자신의 사랑을 이해해 줄 여인을 찾아 헤매는 화자의 광기를 서술하는 'Party Monster', 초라했던 시작부터 지금의 성공에 대한 소회를 둔탁한 비트와 낡은 기타 리프로 부연한 'Sidewalks',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를 힙합 스타일의 훅으로 거칠게 묘사하는 'Six Feet Under'는 위켄드 고유의 음악 방향에 맞닿는다. 인디 록과 신스팝을 결합해 경쾌함을 선사하는 'Love to Lay', 드림 팝의 성분을 주입해 몽롱한 분위기를 이어 가는 'All I Know', 얼마 전 헤어진 패션모델 여자 친구 벨라 하디드(Bella Hadid)를 생각하며 쓴 슬로 잼 'Die for You'도 타 장르와 교류하면서 남다른 외형을 갖추는 위켄드 표 R&B의 예다.

the-weeknd-terrible-lyricjpg.jpg

과감한 변화와 위켄드를 돋보이게 한 그만의 표현이 고르게 분포돼 있어 흥미롭다. 위켄드는 일렉트로니카를 더욱 진취적으로 받아들이며 주류 대중음악의 굵직한 트렌드에 합류한다. 동시에 전과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하고 때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특유의 얼터너티브 R&B를 고수한다. 이 태도가 앨범 커버로 나타나는 듯하다. 위켄드의 앨범 표지는 어두운 색채를 띠는 것이 다수였다. [Starboy] 또한 본인의 모습을 검푸른 빛깔로 치장해 침침함을 낸다. 하지만 배경을 차지하는 빨간색, 앨범 타이틀을 채색한 노란색으로 화려함도 표출한다. 이것이 마치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대한 암시 같다. 흑인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했으며 상업적인 성공까지 누리고 있는 위켄드이기에 앨범에서 보여 주는 음악적 일탈과 존속에 업계의 이목이 쏠릴 만하다. [Starboy]는 위켄드의 디스코그래피에, 나아가 팝 음악계에 또 하나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지 모른다.


2016/1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부 힙합의 중핵이 된 래퍼 스쿨보이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