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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윤 Apr 03. 2020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 로고송

흥 넘치는 홍보를 위해 쓰인 노래들

2017년 4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스피커 볼륨을 잔뜩 키운 유세차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덕분에 거리 곳곳은 음악으로 넘실거린다.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출연자들이 조를 나눠서 동네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정차한 유세차 주변에서 후보를 알리기 위해 신나게 춤을 추는 선거운동원들의 모습은 게릴라 콘서트를 방불케 한다. 도로에서 연일 생기가 시끌벅적하게 피어오른다.


이달 17일 19대 대통령선거의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로고송(campaign song) 격돌도 함께 개시됐다. 항간에서는 "잘 만든 로고송, 열 정책 안 부럽다."는 말도 나올 만큼 선거에서 로고송의 중요도는 무척 크다. 잘 뽑은 로고송은 후보를 사람들에게 빠르게 각인되도록 하고, 유권자에게 편하고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한다. 유세차가 볼륨을 높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로고송이 있어서 선거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선거운동의 흥을 돋우며, 선거를 국민이 동참하는 잔치로 만드는 데에 한몫 단단히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로고송은 선거의 꽃이라 할 만하다. 이번 '다중음격'은 대선을 맞아 선거에 쓰였던 로고송들을 살펴본다. 혹여나 특정 후보나 정당에 편파적인 글로 비칠까 봐, 선거법에 위반되는 행위가 될까 봐 이번 대선 후보들의 로고송 원곡은 리스트로만 공개한다.


DJ DOC 'DOC와 춤을'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실시된 15대 대선에서 DJ DOC(디제이 디오씨)의 4집 타이틀곡 'DOC와 춤을'을 로고송으로 선택했다. (이것이 선거운동에 로고송을 들인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DJ DOC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댄스 그룹이었지만 'DOC와 춤을'은 어르신들의 춤사위를 흉내 낸 일명 '관광버스 춤'을 통해 장년층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노래에 자리한 랩은 빠르거나 현란하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고, 곡 구성도 아기자기해서 모든 연령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로고송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타이밍과 부대조건까지 딱 맞는 탁월한 선택이기도 했다. 노래는 1997년 여름에 출시된 이후 선거가 치러진 연말까지 인기를 지속해 선거운동에 큰 보탬이 됐다. 게다가 그룹 이름에 들어간 DJ와 후보의 이니셜이 같아서 후보를 연상시키는 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신의 한 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퍼주니어 T '로꾸거!!!'

로고송의 중심 임무는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후보의 공약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짧은 노래에 골고루 담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로고송을 전파하는 차량은 이동이 잦아서 한 유권자가 로고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경우는 희소하다. 때문에 로고송은 후보의 성품과 후보의 공약을 선전하는 것보다는 후보의 이름을 알리는 일이 으뜸 임무가 된다.


무언가를 머릿속에 깊게 들여놓는 방법으로 반복만큼 좋은 것이 없다. 따라서 로고송도 중독성이 강한 노래일수록 환영받는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 캠프는 2007년 17대 대선에서 슈퍼주니어 T의 '로꾸거!!!'를 로고송으로 밀었다. 노래는 트로트풍의 멜로디를 지녀서 장년층에게도 까다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었던 데다가 후크송 구조 덕에 중독성까지 강했다. 가사의 대부분은 "이명박"과 "한나라"다. 이명박이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도 이 노래에 얼마 동안 노출되면 이명박의 이름을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박정희 '새마을노래'

대한민국 대선 역사상 가장 특이한 후보로 기억될 허경영은 로고송으로도 범상치 않음을 드러냈다. 대부분 후보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가요를 고른 반면, 17대 대선에 출마한 허경영은 '새마을노래'를 로고송으로 앞세웠다. 이 노래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곡해 그가 재임하던 시절에 많이 불릴 수밖에 없었다. 허경영의 선곡은 노년층의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보수파에 어필하기 위함이었던 것.


하지만 황당하게 느껴질 공약을 남발하고 홍보 영상도 지나치게 코믹함으로 일관해 로고송은 이렇다 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Call Me'가 조금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차라리 그 노래가 더 나았을 텐데.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않지만 어쨌든 이렇게 공약까지 들어가 있는 것을.


Fleetwood Mac 'Don't Stop'

로고송의 또 다른 덕목은 긍정성이다. 이는 어느 나라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희망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후보를 믿음직스럽게 여기게 된다.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1992년 42대 대선에 출마할 때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Don't Stop'을 캠페인송으로 채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노래는 지난날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내일을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멈추지 말고 전진할 것을 당부한다.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의 에너지를 쏟아 낸다. 빌 클린턴에게 기대감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양희은 '상록수'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때가 무척 잘 맞았다. 16대 대선이 있던 해에 월드컵이 개최됐고 우리나라는 4위라는 엄청난 성적을 달성했다. 우리나라 경기가 치러질 때마다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오 필승 코리아'를 목청껏 불렀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애국가나 다름없었다. 노무현 캠프는 '오 필승 코리아'를 로고송으로 선택해 월드컵의 열기를 선거로 연결했다. 월드컵은 특히 젊은이들의 참여가 활발했기에 '오 필승 코리아'를 개사한 로고송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인상 깊게 만들어 준 노래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양희은의 '상록수'다. 노무현은 홍보 영상에서 직접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른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이 모습이 오히려 소탈함을 부각했다. 곡의 분위기는 잔잔하지만 노래에 결연한 의지가 내포된 덕에 노무현의 강직한 성품도 함께 표현할 수 있었다. 로고송보다 강렬한 한 방이었다.


박현빈 '샤방샤방'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식적으로 열세 편의 로고송을 사용한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가장 많다. 하지만 이것도 그녀 앞에서는 약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무려 열여덟 편의 로고송을 썼다. 18대라서 의도해서 숫자를 맞춘 걸까? 그런데 그녀의 집권 결과도 그 숫자와 발음이 같으니 계획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이!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는 로고송 중 하나인 박현빈의 '샤방샤방'으로 질타를 받았다. "아름다운 근혜 모습 너무나 섹시해. 얼굴은 브이라인, 공약은 에스라인.", "박근혜가 죽여줘요." 등의 가사가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운동을 개시하기 전에 로고송으로 쓰는 노래들에 대한 저작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처리하지 않은 채 선거운동을 시작해 저작권법 위반으로도 오점을 남겼다. 이런 잡음을 만들면서도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실로 경이롭다.


신해철 '그대에게'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탄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운동경기에서 단골 응원가로 쓰이고 있다. 박력 넘치는 사운드와 경쾌한 멜로디 덕분이다. 많은 사람이 애창하는 곡인 데다가 곡이 지닌 에너지도 커서 선거철만 되면 노래를 로고송으로 쓰게 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됐다. 하지만 신해철은 후보들의 요청을 사양해 왔다. 그러던 중 18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에게 처음으로 노래 사용을 허락했다. 노래가 나온 지 24년 만에 이뤄진 자체 해금이었기에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Jessy Matador 'Bomba (Klass Club Mix)'

선거운동 분위기를 내려면 Jessy Matador의 'Bomba'가 흘러야 할 것 같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검사외전> 중 구의원 후보에 출마한 전 검사 우종길(이성민 분)이 유세를 펼치는 장면에서 운동원으로 잠입한 사기꾼 한치원(강동원 분)이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래의 가사 "붐바스틱"(Bombastick)은 영화에 연관검색어로 따라다닌다.


영화에서의 선곡은 이 가수의 이름 때문에 더욱 절묘하게 느껴진다. 선거 때만 되면 상대 후보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해 흑색선전이 판을 친다. 경쟁자의 명예를 손상시킬 목적에서 사실을 날조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를 소를 유인해 칼로 찌르는 투우사에 빗대 '매터도어'(matador)라고 한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흑색선전이 심해질 수 있을 텐데, 유권자 분들은 아무쪼록 이에 휩쓸리지 말고 소신 있게 표를 던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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