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하던 날 책을 받았다. <직장인을 위한 실무엑셀> 파란책 표지에 하얀 셔츠와 넥타이를 맨 사람이 웃고 있는 실용서였다. 인생에서 엑셀은 중학교 때 수행평가로 경험한 게 전부였다. 1년 동안 매일 엑셀을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한 채 첫 출근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직장인을 위한 실무 엑셀> 책과 태블릿PC.
SUMIF 모르는 회계 담당자
책을 열었을 때 그나마 낯이 익은 함수는 SUM으로 시작하는 함수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SUMIF* 함수가 가장 반가웠다. SUMIF는 원하는 시트의 합을 알고 싶을 때 쓰는 함수인데 쉽고 편리해서 자주 쓰이는 기능이었다. 하지만 엑셀과 마주한 지 며칠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엑셀을 쓸 때는 항상 검색창을 띄워 놓고 작업을 했다.
*SUMIF : SUM과 IF가 합쳐진 형태로, “만약(IF)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SUM하라”는 의미이다. 이 함수는 자료에서 특정조건을 만족하는 범위의 숫자합계를 구해야 할 때 주로 사용된다.
자주 쓰는 함수들에 적응하게 된 건 한 달이 지나서였다. 나름 재미도 생겼다. 예컨대 마지막에 1의 자리까지 숫자가 딱 맞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리 없는 박수를 치게 된다. 그리고 SUMIF가 익숙해질 때쯤 손목 관절을 잃었다. 손끝의 짜릿함과 숫자가 딱 맞았을 때 짜릿함은 오묘하게 공존했다.
자주 쓰는 엑셀 단축키
(=VLOOKUP) : 특정 데이터의 정보만 추출하는 함수 (=SUM) : 데이터값의 합산을 위한 함수
험난한 정당 회계
은행 업무나 회계에 관해서도 나의 조그마한 월급을 관리해온 것 말고는 경험이 없었다. 일반적인 회계 업무가 아닌 ‘정당 회계’는 더 낯설게 느껴졌다. 정당은 사업자번호가 아닌 고유번호가 나온다는 것과 법인 인감증명서가 따로 없고 *인영확인서가 존재한다는 것도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알았다. 하지만 나만 모르던 것은 아니어서, 은행이나 우체국 등에 가서 업무를 볼 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은행 업무를 하나 보려면 반나절은 걸리기 때문에,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은행이나 관공서를 갈 때 최소 두 장의 고유번호증을 챙기는 것이 좋다!
*인영확인서 : 법인의 인감증명서처럼, 선거관리위원회가 「정상사무관리규칙」에 의거해 정당의 당인과 대표자 직인 등을 확인하는 문서
우리 당의 사업이 활발할수록 통장입출금내역과 내 마음은 혼란해진다. 정당의 사업은 아주 빠르게 변한다. 며칠 동안 회의해서 세운 계획들이 하루만에 없어지기도 하고,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거나 입장문을 내야하는 상황이 많다. 기자회견을 많이 했던 달은 현수막 결제를 얼마나 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 이후에는 기자회견도 연달아 하고 연석회의 등 이런저런 행사가 많았는데, 현수막 업체 사장님이 이미 발급한 영수증 금액을 헷갈리실 정도였다.
뉴스에서 정치인들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자격이 박탈되거나 벌금을 내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올해 처음 회계 보고를 했을 때, ‘실수하면 어떡하지? 퇴사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었다.
애매한 정치자금법 사이에서
앞서 얘기한 엑셀이나 기본 서류 작업들은 인터넷에 검색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는 일들에 속한다. 반면 지출을 할 때 가능한 지출인지와 회계 처리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치자금법」이나 「정치관계법」,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법」 등을 찾아봐야 한다. 그 애매모호한 법들을 해독하는 것은 밤 10시에 라면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두 번 세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 연락하면 답변을 받을 수 있지만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구 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이 달라 어느 것을 따라야 옳은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정당에서 어떤 지출과 수입이 가능한지는 어떤 활동을 정치적 활동으로 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정당의 수입은 주로 국고보조금과 당원들이 납부하는 당비로 이루어진다. 보조금은 의석 수에 비례해 그 금액 차이가 엄청나고, 20대가 85%인 우리 당은 당비가 충분히 모이기 어려운 만큼 고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큰 정당은 지원금과 지원사업들이 많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에 반해 작은 정당들은 운영하는 것조차 어려운 셈이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온 2021년 4·7 서울특별시장보궐선거 관련 자료집 모음.
선거가 끝나고 난 뒤
선거가 끝나면 젊은 정치인들은 꽤 많은 빚을 떠안게 된다. 지난 4월, 정당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선거를 치뤘다. 막상 직접 겪어보니 남일이 아니었다. 양당제가 자리잡은 지 오래된 한국 정치는 돈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없게 짜여 있었다. 지지율이 높은 정당들은 선거에 필요한 방송차량, 현수막 등등의 제작비나 운영비를 보전받을 수 있다. 그 외 다른 정당들은 함부로 돈이나 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지출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증빙 서류들을 만들어야 했다.
예비후보 등록부터 회계 보고 마지막까지 몇 백 장이 넘는, 어쩌면 몇 천 장일 수도 있는 종이 서류들을 작성해 제출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4월에 끝났지만 회계보고는 6월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나는 그 숫자들 속에서, 자신이 가진 돈으로만 선거를 치뤄야 하는 선거와 권력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애매한 법 조항의 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에서 밀려나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치 거대한 바다에서 큰 유람선 사이에 작은 보트를 타고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정당 회계는 어렵지만, 앞으로도 이 작은 보트에 구멍이 나지 않게 잘 정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손목이 잘 쉬고 잘 버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