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누구나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한 때 인터넷상에서 '조별과제 무임승차'시리즈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어도 우리는 작게는 가정 안에서 나아가서는 학교, 모임,
사회생활 등 전반적인 연결된 사회에서 사는 이상 이러한 묘한 감정 혹은 불만스러움에 대해
혹자는 불공정이나 억울함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이 있다.
각자만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 365일 밤새 이야기해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어떤 일에 대한 성과에 대해서 평가를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당연히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건국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논공행상(論功行賞)
공정하고 공평해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사회에서부터 이것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그나마 대부분이 수긍이 가는 칭찬과 지적이 있다면 다행이나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이의제기를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건국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나라 제도를 받아들이고 개혁하는 시기일 수도 있지만
반발하는 세력과 기존 세력의 반발도 당연히 있는 것이다.
그것이 큰 권력의 영향력이든 미미한 나와 같은 잔바람 같은 영향력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변화라는 것은 예측이 되거나 예측이 안되면 모두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바꾸는 것이 어렵고 아무리 나쁜 것이라고 해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이렇게 길게 누구나 아는 것을 늘어놓고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이나 쉽지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앞에서 언급한 [공정과 공평]이라는 것도 주체 혹은 주관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100% 만족할 결과는 없다.
그게 아니어도 우리 모든 선택은 그러한 고민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감안하고 생각하고 결정하지만 결국 상대의 모든 반응을 수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결정하는 자, 결정권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렵다
때로는 고독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정을 해야 한다
혼자 일을 할 때는 좀처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종종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대평가이든 상대평가이든 결국 성과에 따르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특히 그 평가과정에서 공정과 공평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 사이에 팽팽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한번에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고 계속해서 다양한 평가에서 존재하게 될 것인데
결국 그것이 새로운 세상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나 상벌이 정확하게 구분이 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도 제아무리 현명한 왕들조차 계속되는 비판보다는 칭찬의 가면을 쓴 아부에 빠져드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러한 위험요소가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판이 사라져야 하는가?
칭찬이 제아무리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더라도 비판을 수용해야 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수많은 평가와 그에 따르는 칭찬과 비판이 존재하면서 그 사이에서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고대사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논쟁은 없이 없었고 그에 따르는 불만도 분명 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다듬어가는 여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개국 초기에 말단으로 결정권자들의 대열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켜보며 배우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 된다.
언제나 공정과 공평에 대한 논쟁을 내 안에서도 치열하게 토론배틀을 하고 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