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그우먼이 자기 엄마를 위해서 직접 백설기를 만드는 것을 TV에서 보았다. 하트 모양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백설기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의 따뜻함이 전해졌다. 순간 나도 그런 백설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 졌다.
당장 다음날 쌀가루를 샀다. 쌀가루 봉지 뒤에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니 백설기 만드는 것에 더욱더 자신감이 붙었다. 어렸을 때 주말이면 우리 집은 카스텔라를 자주 구워 먹었다.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고, 흰자를 하얗게 부풀린 뒤, 설탕, 노른자, 밀가루를 넣어서 오븐에 구워 내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카스텔라가 만들어졌다. 그 맛도 좋았지만, 옹기종기 그 앞에 모여 앉아서 함께 만들던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추억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 빵 굽던 그 분위기는 항상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했지만 따뜻했다.
인터넷에서 ‘백설기 만드는 법’을 찾았다. 몇 개의 레시피를 찾아서 보니 그 과정이 생각보다 더 간단했다. 정리하면, 쌀가루에 적당량의 소금과 설탕을 넣고, 물을 넣어 반죽을 하고 틀에 부어 20-30분 정도 쪄 내면 됐다.
나는 창의적으로 나만의 백설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아침 식사대용이나 간식으로 간단하게 먹기 위해서 나는 컵케이크처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백설기 안에 달콤함을 더 가중시키기 위해 라즈베리를 듬뿍 넣기로 했다.
준비는 끝났다. 식탁 위에 큰 그릇을 준비하고 3킬로짜리 쌀가루의 절반 가량을 겁도 없이 부어댔다. 그리고 밥숟가락으로 소금 두 큰 술, 설탕 세 큰 술을 넣고 휘휘 저었다. 이 정도의 소금과 설탕의 양이 쌀가루 1.5킬로가량에 적당하다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이 계량법은 순전히 나만의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카스텔라를 만들 때도 우리 집에서는 별다른 계량법이 없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물을 조금 붓고는 아이에게 반죽을 하라고 했다. 아이는 신이 났는지 팔을 걷어 부치고 손을 씻고 와서는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의도했던 내 어린 시절 카스텔라 만들 때의 분위기다.
그때 마침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10분 정도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하면서 아이가 반죽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본 레시피와 뭔가가 다른 것 같았는데, 통화 때문에 아이에게 반죽을 그만 하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또 그 반죽 때문에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끊어 낼 수도 없었다. 애매한 분위기였다. 나의 결단력 없던 그 10분은 결국 내가 꿈꾸던 ‘나의 백설기’가 아니라 내가 예상하지도 못했던 ‘나만의 백설기’를 만들어 내게 했다.
인터넷에서 보던 반죽은 고운 모래가루에 가까웠다. 그리고 레시피에는 친절하게 ‘한 줌 쥐었을 때, 흐트러지지 않고 뭉쳐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나의 반죽은 자갈밭으로, 이미 진주알만 한 크기의 쌀가루가 군데군데 뭉쳐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 반죽이 백설기를 만드는데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내 반죽은 기존의 백설기를 만드는 반죽과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희망으로 나는 그 비싼 라즈베리도 내 마음껏 많이 넣었다. 불 위에 올려서 쪄 내면 쌀가루가 익어서 당연히 백설기가 되는 줄 알았다. 떡이 안 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모두 벗어났다. 분명 레시피에는 떡이 되는 시간이 20-30분 정도라고 했는데, 나의 백설기에게는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백설기의 윗부분은 촉촉하다 못해 축축 늘어져 있고 아래 반쯤은 하얀 쌀가루가 그대로 있었다. 게다가 쌀가루를 종이컵에 넣으니 찜기에 한꺼번에 넣을만한 공간이 되지 않았다. 결국 찜기에 두 번이나 떡을 쪄냈다. 2시간 반 정도를 나는 땀을 흘리며 불과의 전쟁을 치렀다.
축축 늘어진 종이컵을 간신히 세워 예쁜 접시에 내놓았다. 아이가 보자마자 “엄마, 이게 뭐야?”라고 화살을 쏘았다. 나는 그 화살을 맞고 쓰러질 힘도 없었다. 난 이미 쓰러져 있었다. “그러게, 이게 뭘까.” 그날 우리 가족은 그 누구도 백설기를 먹지 않았다. 나는 스무 개나 되는 백설기를 모두 차갑게 식혔다. 나조차도 먹고 싶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백설기를 다섯 개씩 묶어서 차곡차곡 냉동실에 쌓아 놨다. 몇 개월째 그 아이들은 냉동실에 조용히 앉아 있다. 냉동실을 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일을 내가 완전히 그르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차마 그것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외면하고만 있다. 나는 그 백설기들을 버릴 시점을 찾고 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시점을 잘 모르겠다.
그 냉동실 안에 있는 누구도 줄 수 없는 ‘나만의 백설기’를 볼 때마다 후회가 된다. 나는 왜 백설기가 저절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백설기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나는 음식 솜씨도 없다. 시댁과 친정에서 반찬을 얻어다 먹고, 가끔은 반찬가게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그런 내가 너무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자신감은 어린 시절 추억을 꺼내보고 싶었던 욕심으로 TV 속 요리 못하는 개그우먼과 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 지점에서 시작된 것 같다.
그 지점에 있었던 것이 ‘무시’다. ‘저 사람도 하는데 나는 못할까?’라는 단순한 생각과 단조로운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별 거 없는’ 음식이라는 무시하는 마음에서 ‘나만의 백설기’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마음대로 주물러 대고, 내가 수다를 떨면서 대충 해도 불 위에만 올라가면 저절로 되는 음식이라고 무시를 했다. 그리고 그 무시는 ‘무지’로 이어졌다. 내가 본 레시피에서는 쌀가루를 얇게 펴서 쪄냈기 때문에 익는 시간이 20-30분 정도 걸렸지만, 나는 종이컵에 쪄냈기 때문에 그 높이가 레시피에서 본 것보다 서 너 배가 높아져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쳤다.
이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이 있을까. 내가 얼마나 절박하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려서 감을 얻는 일조차 감이 떨어질 만한 자리에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또한 이 세상에 기본이 없는 응용이 있을까. 쉽고 간단하다는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야 말로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쉽고 간단하다는 것은 개인마다 자기 경험과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도 할 수 있다’라는 진리 같은 말을 믿기 전에 나는 그 ‘누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도 필요하다. ‘누구’에게는 기본인 것이 누구에게는 기본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누구’가 되지 못한다면 착실하게 배우는 자세를 갖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무시하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만 욕심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나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의미 없는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의미 없는 나’라는 것은 나를 인정하는 주변도 없고, 내가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여지도 없는 나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