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을 지켜야 하는 이유

: 내가 본 우리동네 과일 노점상 아저씨의 기본

by 박세미

우리 동네 사거리에 과일을 파는 노점상 아저씨가 있다. 그 아저씨는 아침 9시쯤 좌판을 벌인다. 아저씨는 탁자도 없이 땅바닥에 제철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놓으신다. 비 오는 날이 아니면, 항상 약국 앞 쪽에 아저씨의 좌판이 펼쳐져 있다. 과일 한 두 종류가 바구니 10개 정도에 담겨 나란히 3줄 정도로 놓여 있다. 그 뒤로 과일 박스가 10개 정도 쌓여 있다. 손님들이 있으면 아저씨는 좌판에 나와 있고, 손님이 없으면 아저씨는 그늘을 찾아 서 계신다. 아저씨는 햇빛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항상 여유 있게 웃으신다. 보통 오후 2-3시까지는 가야 아저씨의 과일을 살 수 있다. 그 아저씨의 좌판은 항상 ‘완판’이다. 아저씨는 과일이 다 팔릴 때까지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노점상 아저씨의 좌판에는 구매시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배달이 안 되고, 카드로 계산을 할 수 없다는 문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물건은 질이 좋고, 가격도 마트보다 조금씩 싸다. 뿐만 아니라, 아저씨에게는 ‘덤’이라는 것도 있다. 아저씨는 가끔 슬쩍 무심하게 과일 하나를 더 넣어주신다.




2-3년 전에 아저씨 좌판 가까운 곳에 과일과 채소를 싸게 파는 가게가 크게 생겼다. 세련된 가게는 아니었다. 가게의 인테리어가 과일과 채소를 박스로 쌓아 놓은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가게는 과일과 채소가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그 가게의 이미지는 싸고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사람 좋은 주인이 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노점상 아저씨를 지나서 그 가게에 가서 장을 보았다.


내가 새로운 가게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게 주인은 밝은 미소를 띠며, 시끄러운 많은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궁금하지도 않은 말을 내가 가게를 나올 때까지 했다. 그 가게 주인이 했던 그 많은 말 중에 이 말만 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장사가 잘 됐는데, 왜 이사를 왔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 우리가 이전에 ◯◯동에서 장사를 했어요. 장사가 얼마나 잘 됐는지 그때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다니까요. 사람들이 막 줄을 서서 사가고 했어요. … ”


그리고 그 가게 주인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 나는 그 시끄러운 말을 비집고 그 주인에게 물었다.


“배달은 돼요?”

“배달이 되지, 당연히. 그런데 지금 배달할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구해지는 데로 될 거예요.”

“그럼, 언제 돼요?”

“금방 되지. 이 동네 살지요?”

“네.”


“카드로 계산되지요?”

“그럼, 그런데 10000원 이상 사야 카드가 돼.”


가게 주인은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가면서 내가 묻는 질문마다 조건이 붙여진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언제 구해질지 모르는 배달하는 사람을 언급하면서 지금이라도 배달이 될 것처럼 대답하는 태도는 이 가게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한 바구니에 1000원, 2000원 하는 채소를 사면서 10000원 이상 사야 카드로 결제가 된다는 것은 구매를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 가게를 몇 차례 갔을 때마다 그 가게 주인은 손님이 없으면 나를 따라다니면서 다른 상품도 추천했고, 손님이 많을 때면 많이 산 손님에게 신경 쓰느라 내 것의 계산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그 가게가 문을 열고 한 달 정도 지나서 배달이 가능해졌지만, 배달도 얼마 이상을 사야 가능했다. 그 가게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사는 나 같은 소비자가 간신히 배달 가능한 금액을 넘겨서 배달 주문을 하는 것은 눈치 보이는 일 같았다. 물론, 그 가게 주인은 항상 나를 미소로 대했고, 내가 느낀 이러한 것들을 나에게 대 놓고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가게에 안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인의 태도보다 더 문제는 과일과 채소의 상태였다. 그 가게의 과일과 채소는 작은 바구니에 적은 양으로 담겨 있는 물건들의 상태는 그다가 좋지 않았다. 싱싱한 것들과 시들어 있는 것들이 섞여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식구가 적어서 적은 양을 사고 싶은 나에게는 그 가게에 채소들이 적은 양이 담겨 있는 것이 편리하기는 했지만, 그 값은 결코 싼 것도 아니었다. 워낙 적은 양을 사니까, 1000원, 2000원이 싸게 느껴졌을 뿐이다.



나는 그 가게가 생겼을 때, 노점상 아저씨를 걱정했다. 노점상 아저씨가 새로운 가게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겠구나 싶었다. 나도 그 가게를 갈 때면 괜스레 노점상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 마음은 괜한 걱정이었다. 나는 그 새로운 가게를 몇 번 가다가 다시 노점상 아저씨에게 과일을 샀다. 노점상 아저씨에게 물건을 살 때는 눈치를 보지 않았다. 시끄러운 의미 없는 말들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비록 배달 서비스는 받지 못해도 노점상 아저씨는 최대한 안전하게 구매한 물건을 들고 갈 수 있게 포장을 해 주신다. 손님들이 다른 일이 있어서 구매한 물건을 바로 가지고 갈 수 없을 때는 그 물건을 따로 보관해 두셨다가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찾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노점상 아저씨의 과일은 항상 신선했고, 단단했고, 맛이 있었다. 이러한 아저씨의 기본은 아저씨의 장사 시간 안에 맞추어 가야 한다는 불편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그 새로운 가게는 1년 정도를 버티다가 문을 닫았다. 그 가게가 문을 닫은 이유를 나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 가게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온 것을 보면서 나는 놀라지는 않았다. 소비자인 내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받으면서 좋지 않은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점상으로 장사를 해도 괜찮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다. 내가 그 아저씨에게 보는 것은 그 아저씨가 하는 손님에 대한 기본이다. 그 아저씨는 질이 좋은 물건을 알맞은 가격에 팔았다. 그 기본이 그 노점상 아저씨의 불법적인 장사 행태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그 노점상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노점상 아저씨가 바라는 성공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단지, 소비자 입장에서 내가 바라본 노점상 아저씨의 성공은 바로 소비자가 아저씨의 물건을 믿고 꾸준히 찾는다는 것이다.


기본이 무시되는 상황은 다음 단계를 보장할 수가 없다. 어디에서나 기본은 간단하다. 그런데 눈앞의 편안함이나 이익을 두고, 기본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그 기본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쯤은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서서히 힘들게 세운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기본만 지키는 것으로 커다란 성과를 이루기도 쉽지 않다. 그 기본 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이상의 노력과 자기만의 무기가 있어야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본은 기본이다. 따라서 이 기본이 지켜지지 못하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것은 마이너스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기본은 현재를 유지하는 힘이다. 기본만이라도 잘 해낸다면, 그 기본이 쌓여서 결국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상황을 이끌어갈 것이다. 기본은 ‘현재’를 유지하고 ‘다음’을 보장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을 무시해서는 아무것도 해 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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