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는 곰곰 씨

: 45세의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나

by 박세미

햇살 좋은 가을 아침, 곰곰 씨는 집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드는 거실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책을 폈다. 글자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곰곰 씨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곰곰 씨를 찾는 곰곰 씨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곰곰 씨는 책을 덮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세상이 어둠에 잠길 때, 곰곰 씨는 다짐했다. 내일은 반드시 나만의 공간을 찾아 떠날 것이라고 말이다.


곰곰 씨는 숙제를 끝내듯이 서둘러 집안일을 마치고, 안락한 쿠션만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곰곰 씨는 집 근처의 공원으로 갔다. 공원은 집 근처에서 자연을 느끼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공원에 놓인 나무와 잔디와 하늘은 곰곰 씨를 품어주었다. 나무를 기둥 삼아 차갑게 느껴지는 흙바닥 위에 따뜻하고 푹신한 쿠션을 던지듯이 놓았다. 곰곰 씨는 그 안에 자신의 몸을 구겨 넣었다. 구겨진 몸을 서서히 펴자 주변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단풍과 힘없이 떨어진 아직 시들지 않은 낙엽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쳤다. 그리고 그 기운이 곰곰 씨의 몸에 파고들었다. 자연이 말해주는 가을이라는 시간의 시점이 곰곰 씨의 현재 삶의 위치인 것 같았다. 곰곰 씨는 말없이 앉아 빨간 단풍잎 하나를 책 사이에 끼워 넣고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핸드폰 안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공원에는 낯선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곰곰 씨의 눈에 그들은 나무나 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만약, 공원에서 곰곰 씨가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고 해도 곰곰 씨는 그들이 바람처럼 스쳐 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지금 곰곰 씨는 자신이 원하는 세상 속에만 있고 싶다. 핸드폰 속의 다양한 색깔의 공기가 곰곰 씨를 감싸주었다. 곰곰 씨의 과거와 현재가 그 안에 그대로 살아 있다. 핸드폰 안의 사진들을 보면서 곰곰 씨는 복잡한 감정들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담아두기도 하면서 흐뭇한 웃음을 보였다. 또, 핸드폰 안에서 곰곰 씨가 언제든 무슨 이야기든지 관계없이 쏟아낼 수 있는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를 떨면서 곰곰 씨는 소리 내어 웃었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을 해도 그 이야기는 항상 슬프고, 항상 재미있다. 곰곰 씨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도 창피하지 않고, 평가받지 않는다. 가끔은 ‘현실에는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들은 곰곰 씨의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 준다. 그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곰곰 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핸드폰은 그 대화조차도 곰곰 씨가 원할 때에 선택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곰곰 씨의 머리 위에 곤충의 더듬이 마냥 나와 있던 레이더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제 곰곰 씨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곰곰 씨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막을 거두어 내고 쿠션에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경쾌하게 낙엽 밟는 소리를 음악 삼아 곰곰 씨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곰곰 씨는 다시 공원의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공기와 핸드폰의 다양한 색깔의 공기를 자유롭게 느낄 시간이 조만간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며 또 다른 일상이 기다리는 현실로 돌아갔다.




나는 40대가 되면서 그동안 살아온 내가 낯설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내 방향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내 부모님의 모습에 머물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대답으로 편안함을 찾고 싶기도 했다. 지금 나는 45세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이 겨울이 지나가면 ‘내 인생의 절반이 지난 것이 좀 실감 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분이 밀려온다.


지금까지 여러 개의 갈림길들을 지나오면서 하나의 길을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하나의 길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모양으로 변하면서 하나의 길로 모여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이것은 단지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갈림길이 내 앞에 나타나고, 그 길은 오히려 예전보다 좁아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이 나만의 길이 아닌 가족의 길까지 얹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길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책임을 지려고 바둥거리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나 혼자만의 길로 들어설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나만의 길로 다시 들어서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머릿속에 하얘졌다. 새로운 꿈을 찾아간다는 것도 자신이 없었고, 연애를 한다는 것도 하면 안 될 것 같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본다는 것은 짐스럽게 느껴졌다. 많은 단어들이 내 머리 위를 떠돌다가 툭 떠 오른 말이 있다. ‘괜찮은 죽음.’ 순간 좀 당황스럽고 놀랐지만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정확히 어느 지점에 지금 서 있는 것일까. 90세까지 이 세상에 산다면 나는 지금 막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것이고, 그 보다 덜 산다면 나는 벌써 반환점을 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산다면 지금쯤이면 인생의 반환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나는 내가 지금 서 있는 내 인생의 위치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내가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강했으면 좋겠고, 돈도 많았으면 좋겠고, 아이도 똑똑해서 자신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고,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삶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리 많은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교양 있고,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마구 적어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이런 내 바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놓으니 숨은 찼지만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 바람들을 다 이루고 산다면 내가 행복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가 두려워졌다. 단순히 노력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그 노력이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허무함이 전해져 왔다. 그것들은 욕심의 탈을 쓴 바람일 뿐이다. 그저 그것들이 하늘에서 뚝 내게 떨어져서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말만 뱉어내면 그만인 욕심들이다.


그 욕심들 안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봤다. 그리고 의심해 보고 또 의심해 봤다. ‘내가 정말 행복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순간들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날까?’ 등등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 답을 찾아 또 질문을 던지자 그 안에 있던 나의 진짜 바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단풍나무 가득한 공원 한가운데 여유롭게 앉아서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면서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는 것이었다. 이것이면 나는 지금 충분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지금 힘을 낼 수 있는 순간,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순간, 그러면서도 어설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미루고 미루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다.


노인경 작가의 <곰씨의 의자>가 떠올랐다. 곰씨는 공원에 나가서 혼자 자신의 시간을 즐기려다가 토끼들과의 관계를 맺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곰씨는 공원에 놓인 기다린 의자 한편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그 곰씨였다면 나는 그 공원의 의자를 내 공간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상황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공간은 개방적이지 않다. 또한 나는 지금 새로운 관계는 피하려고 하고, 과거의 관계에서 현재의 힘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굳이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 가야 하는 관계는 두렵고, 귀찮다. 그저 이미 나에게 맞춰진 친구라는 이름의 관계가 소중하고 고맙다.


이러한 마음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45세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선 솔직한 나를 내가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노인경의 ‘곰씨의 의자’에서 출발하여 ‘곰곰 씨의 자신만을 위한 잠깐의 공간’에 대해 써 보았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곰곰 씨의 모습으로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 더 애쓰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싶다. “지금까지로도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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