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작은 습관이 생겼다. 순간순간 생각나는 것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놓는 것이다. 깜깜한 창고에 마구 던져 놓인 짐들처럼 나의 생각들이 그곳에 두서없이 얽히고설켜 있다.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날이 되어서야 나는 그 던져놓은 짐짝들을 하나씩 들춘다. 이미 쓴 생각들은 지우고,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은 앞으로 빼놓는다. 많은 생각들이 지워졌고, 앞으로 빼놓는 짐들이 적어지고 있다. 나의 일상은 매일이 별다를 것이 없고, 그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조차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것을 제외하고, 나의 50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 보면, 그것에 대해 특별한 해답이 없다. 나는 남편의 퇴직으로 인해 닭을 튀기거나 커피를 내리는 일을 할 자신도 능력도 없다. 처음에 나는 글을 쓰는 것이 그나마 내가 세상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다니면서 받았던 몇 장의 글짓기 상장과 보고서 썼던 경력이 내가 글을 써도 된다는 명분 아닌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믿어주는 몇몇의 사람들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이것이 나에게 안정장치가 되어줄 것이라는 나의 기대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글은 명분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다른 일을 해도 믿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그래서, 무슨 책을 쓴 거야? 책은 언제 나온다는 거야?”
70세가 넘으신 아버지에게 작가는 자기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글을 쓴다는 것으로만 작가가 되었다고 할 수가 없다. 나는 안다. 아버지에게 내가 브런치 작가라고 말했을 때, 아버지의 방점은 ‘브런치’가 아니라 ‘작가’에 찍혔으므로, 나는 아버지에게 작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 심사를 통과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작품들을 올리고 읽어내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틈이 없었다. 따라서 아버지 질문에 대해서 나는 ‘책이 나온 건 아니고. 요즘 컴퓨터로 글을 써서 올리는 거 뭐 그런 게 있어.’라고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 후, 나는 우리 아버지 핸드폰 화면에 브런치 앱이 깔려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내 글을 읽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기대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내 글을 아버지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하루하루 글을 써도 되는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가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도 100여 일이 지났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지인 아닌 구독자들도 생겼다. 나는 그동안 30편의 글을 써냈고, 하루하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점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목적은 50세에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내가 이것을 꾸준히 이끌고 가는 것에 대한 노력에 집중하려고 하게 되었다. 목표가 책에서 글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편의 글에 대해 하루 독자수가 몇 백 명이 되었다. 나는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내 글을 누군가가 함부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글이 나쁜 의도로 쓰일 것은 별다르게 없을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곳에 내 글이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하루하루 독자수가 늘면서 천여 명이 그 글을 읽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내 글이 나는 모르지만 브런치 시스템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읽은 그 글에 상대적으로 라이킷의 숫자는 보잘것없어서 속상했다. 천여 명이 읽어도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부족한 면을 채워나가면서 내 글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졌다. 재능이 없는 것을 인정하고, 이제 그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그 고민 사이를 비집고 나온 나의 작은 미련으로 며칠 동안 ‘브런치 글쓰기 이상 조회수 혹은 독자수’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소개해 준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브런치 밖에서 내 글을 읽고 나서 라이킷을 누를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작 내 글에 대해 라이킷을 누를 마음이 없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라이킷을 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안정되니 나는 정작 내 글이 사람들에게 드러나 있던 것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에게 약이 되기도 했고, 독이 되기도 했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독자수가 주는 희열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내 글을 쓰는 목적처럼 되었다. 반면, 그 덕분에 좀 더 많은 글을 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내 욕심은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점점 사그라들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글을 쓰기도 바빠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내 글을 채워나가기 급급했다. 옆을 보고 함께 걸어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고, 전문적인 지식들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된 서점 구석에 자리 잡은 누런 책 속에나 있을 법한 자료들을 보기도 했다. 투박한 글 속에 따뜻함이 느껴지고, 전문적인 지식에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이 채워지는 것을 느끼고, 데이터베이스로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은 자료들을 만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들의 글을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지만 그 사람들의 노력이 나에게 전해졌다. 나는 한 호흡 쉬면서 좀 더 진진하게 내 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상 속에 스치는 생각들을 운이 좋게 잘 엮어서 어쩌다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전문성 있고, 진정성 있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영향이다.
그 생각은 일단 나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시간에 어디서든 쓸 수 없었다. 아이가 노트북을 다 이용하고 난 시간에만 글을 썼다. 그것은 주로 한밤중이었다. 심신이 다 지친 상태에서 오기로 열었던 노트북은 거의 금세 닫혔다. 아침에 나를 찾을 일 없는 주말 새벽에 나는 주로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시간에 쓰려면 나만의 노트북이 필요했다. 남편에게 글을 쓰기 위한 노트북을 하나 사야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새로운 노트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남편이 노트북에 대해서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는데, 그 말들이 나에게 와 닿지가 않았다.
“다 필요 없고, 인터넷 되고, 한글만 되면 돼.”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것저것 설명하는 남편의 말 한 복판에 내가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았다. 그 폭탄에 나만 죽은 기분이었다. 나는 잠깐 생각을 멈췄다. 남편이 말을 이어 그렇다면 새것을 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전의 노트북이 아이가 온라인 수업 들을 때 인터넷의 속도가 느린 것이 문제가 돼서 새로운 노트북을 교육용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이 느려도 글을 쓰는 것이 괜찮은지에 대해 남편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그때서야 다시 내 글쓰기와 노트북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인터넷이 느리면 안 될 이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결국 나는 오래된 노트북을 창고에서 다시 꺼냈다. 지금 사용하는 노트북보다 두껍고 무거운 시커먼 탱크 같은 노트북을 책상 위에 놓았다. 오래된 노트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투박하게 놓여있는 것이 꼭 나 같았다. 일상은 살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는 못 맞추는 나 같았다. 뭐든 해 보려고 끄적이면서 발버둥 치지만, 세상의 이목을 끌만한 것을 내놓지 못하는 나 같았다.
동네 문구점에 가서 마우스를 사 왔다. 시커먼 노트북을 밝게 해 줄 만한 핑크빛이 도는 무선 마우스다. 새로운 마우스와 오래된 노트북을 이어 주기 위해 처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오래된 노트북의 바탕 화면에는 몇 개의 아이콘이 없었다. 쓸쓸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을 클릭했는데, 창 하나가 뜨는 속도가 정말 느렸다. 하나의 화면이 바뀔 때마다 나는 속이 터졌다. 무엇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하필 한글 작업은 잘 되었다. 야속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내가 글을 써내려 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내 노트북에서 한글로 다 써 놓으면 일단 그것을 이메일로 나에게 보낸다. 그리고 아이의 노트북이 놀고 있을 때, 그곳에서 나의 한글 파일을 다시 열어서 브런치에 올린다. 앞으로 느린 나의 노트북과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얼마나 거쳐야 나에게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저 브런치 작가, 그리고 작가라는 타이틀이 창피하지 않을 날을 기대하면서 느린 노트북과 하루하루 잘 버텨보기를 응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