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인정하자!

: 나이에 맞는 좋은 습관 만들기

by 박세미

2023년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었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런데 ‘2023’년이라는 숫자가 들려주는 새로움은 특별한 아침을 선사해 주었다. 평상시에는 토스트, 과일, 커피, 우유 정도의 일요일 식단이 떡국으로 바뀌었고, 가족끼리 서로 짧은 새해의 다짐과 덕담을 나누었다. 나와 남편은 새해에는 건강하자고 했고, 아이는 즐겁자고 했다.



시댁과 친정에도 전화를 드렸다. 친정부모님은 모두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오후쯤 되니 친정부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느라 전화를 받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때 알았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2022년이 가고 2023년이 온 것이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았고, 나는 2023년을 기다린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보다 새해 아침이라는 설렘이 나에게 더 크게 있었던 것 같다.



친정아버지는 손주의 두 달이나 되는 긴 겨울 방학 동안 단둘이서 부산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아이가 부산을 가 본 적이 없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셨다.



친정아버지의 말끝에 잊고 지냈던 나의 추억이 하나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외할머니를 따라 외할머니 동생이 사시는 장항에 기차를 타고 1박 2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와 나는 서로 많은 말을 나누지도 않았고, 특별히 한 것도 없었는데, 지금도 그때 기억이 몽실몽실 떠올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친정아버지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이와 아버지만 여행을 보내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아이가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로 시작해서 친정아버지의 체력까지 걱정이 되었다. 일단 여름 방학쯤에 가족이 모두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면서도 나는 친정아버지와 아이에게 부산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할아버지와 손주의 추억을 내가 없애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여든을 앞두고 있는 친정아버지가 손주를 책임지고 여행을 가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에서 열정이 느껴져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또, 나는 아버지가 아버지의 나이를 잊고 산다기보다는 자신의 나이에 맞추어 할 수 있는 것을 아쉬움 없이 하려고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정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의 기력 없는 모습이 비치면서 내가 바보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40대 후반으로 달리고 내가 여전히 30대 후반의 나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몸도 정신도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에 있는 내 모습과 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달랐다. 그래서 내 몸이 보내주는 40대 후반이라는 신호들이 서운하기만 했다. 100세 시대에 살면서 나도 장수할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아이의 성장이나 진로 문제와 우리 가정 경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획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다.



2023년 6월 28일, ‘만(滿) 나이 통일법’이 오는 시행된다고 한다. 나에게 한 번 더 47세로 살 기회가 주어진다. 2022년을 한 번 더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의 나의 상태를 잘 이해한 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내 나이를 인정하고 나의 몸과 정신에 알맞은 생활로 좋은 습관을 하나라도 만들어 보고 싶다. 뻔하지만 중요한 꾸준한 운동을 시작으로 하나씩 하나씩 내게 맞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고 싶다.



2022년의 47세 나는 고장 난 내 몸을 잘 고치면, 다시 30대의 내가 된다고 착각했다. 나의 30대는 지나갔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제 2023년의 47세 나는 고장 난 내 몸을 잘 고치면 좀 더 건강한 50대의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까지 젊음으로 샀던 당연한 일상을 노력으로 메꿔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 세상 밖으로 나와 세월이라는 터널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