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세상 밖으로 나와 세월이라는 터널 속으로

: 여행과 병치레

by 박세미

2019년 12월에 등장한 코로나가 2022년에는 좀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난 이미 백신을 3차례나 맞았고, 코로나도 한 번 앓았다. 코로나는 나에게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소풍 가는 기분으로 코로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올 한 해 동안 여행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첫 번째는 아이와 남편과 함께 한 가족 여행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 여행으로 하와이를 다녀오면서 졸업할 때 다시 찾아오자고 약속했었다. 그때는 코로나 같은 질병이 온 지구를 마비시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다행히 지금은 하늘길이 좀 열렸지만 모든 물가가 예전보다 2배가량 뛰어올라 슬프게도 내 지갑의 장벽을 만들었다.



우리는 아이가 아기였을 때 자주 갔던 곳에 갔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가 6학년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내 키만큼 자라 있었다. 아이가 뛰어놀던 넓은 광장은 좁게 느껴졌고, 스키 슬로프는 루지 코스로 변해 있었다. 코로나가 세상을 모두 멈추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가족들과 누리는 푸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과 간간히 부는 바람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아직 마스크를 벗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만큼의 여유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1.jpg


나의 봄은 그렇게 여유롭고 따뜻하게 여름 속을 들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는 친구들과의 여행이었다. 우리 넷은 예쁜 상자에 담겨 있는 찹쌀떡 같다.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그 안에 품고 있는 것도 각자 다르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서로 상황에 맞춰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비켜주기도 하면서 같은 상자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서로 같아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으려고 서로에게 맞춘다.



내가 힘들 때, 즐거울 때, 슬플 때 모두 그들이 있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이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들어오면서 1박 2일의 여행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쓰면서 긴박하게 굴러갔다. 한순간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비싼 호텔의 스위트 룸을 잡아 놓고,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어느 학교 앞 떡볶이 집에 들어섰다. 우리보다 어릴 수 있는 떡볶이집 주인 아주머니를 예전 우리 학교 앞의 떡볶이집 아주머니를 대하듯이 대하는 우리를 발견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어느새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이 친구들과 함께 하면 나는 어느새 내 나이를 잊는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웃음이 난다.


2.jpg


나의 가을은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며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여행은 친정어머니 생신으로 떠난 친정 식구들과의 여행이었다. 올해는 음력이 여느 때보다 양력에 바짝 붙어 있었다. 친정어머니 생신이 성탄절 다음 주여서 성탄절 주에 모두 만나게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저녁에 ‘우리 식구’는 거실에서 모여서 자자고 하시는데, 그 말이 정겨우면서도 남편과 아이가 배제된 것이 낯설기도 했다. 친정 식구들과 만나니 ‘우리 식구’라는 표현이 굉장히 배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식구’ 다섯이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이렇게 누웠던 기억이 내 마음 한쪽에 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주 두꺼운 이불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삼 형제가 나란히 안쪽에 눕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문 쪽으로 누웠었다. 그 이후로는 이렇게 함께 누웠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함께 누워 잔다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했지만, ‘우리 식구’는 모두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코를 골고, 잠꼬대까지 하는 것이 같은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 마냥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3.jpg


나의 겨울은 그렇게 훈훈하게 한해를 마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건강이라는 터널 안으로 들여보냈다. 작년부터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면서 이제 내 몸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에 힘들어했었다. 그리고 하나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다음 터널이 있을 것 같아 몇 개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에 대해 두려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올 한 해 디스크라는 병이 찾아오면서 나는 하나의 터널을 나와 또 다른 터널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든다는 것은 터널 속을 걸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터널을 나가면 다른 터널이 나올 때까지는 환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대신에 터널 안에 가끔 들어오는 햇빛에 감사하며 어두우면 라이트를 켜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라는 내 세월에 순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터널을 나오겠다는 생각이 어리석은 것은 아닐까.



이 터널 속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다. 함께 가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걸어가 보는 것 같다.



세상도 변하고 있고, 나도 변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도 인정하고, 나의 변화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올 한 해 힘겹고 버거웠다. 40대의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



‘엄마’라는 위치에서 아이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만큼 버거웠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를 성장시키기도 한 것 같다. 가끔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의 청소년이 된 아이를 보면서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던 한 해였다. 이제 아이는 어린이가 아니다.



내가 나의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는 이제 아이 앞이 아니라, 확실히 뒤에 서게 되었다. 먼저 인생을 살아본 선배라는 이유로 온갖 아는 척을 하고, 엄마라는 변명으로 너를 위한다는 걱정이 아이의 미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그런 말이 아이에게 영양가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아이도 알게 된 것 같다. 이제 나는 아이의 뒤에서 격려하는 박수만 치면 된다는 것을 느꼈던 한 해였다.



2022년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아니라, 흔들리면 흔들리는 데로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었다. 굳이 무엇인가 이루려고 바둥대기보다는 가다 보면 볼 수 있는 경치들에 감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었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무엇인가 이루려고 바둥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뒤흔들어 놓는 것에는 의연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뒤흔들어 놓는 것들이 내가 예상할 수 없는 강도의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말로 할 수 있는 위로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세월 속에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눈덩이가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을 내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2022년이 끝나는 그 마지막 날에 특별한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웠다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던 그 말은 어느 정도 여행과 나의 오늘 하루의 일상으로 지켜진 것 같다.



하지만 2022년의 어려운 과제들이 2023년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은 후련하지 않은 마음이 참으로 아쉽다.



2022년.

아픔, 슬픔은 네가 다 가져갔으면 좋겠구나.



Adieu!



매거진의 이전글숨 고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