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 Happy New Year! 2022년!

by 박세미

2021년 12월 31일 23:59.

새해가 온다는 설렘보다는 2021년이 지나간다는 후련함이 앞섰다.



다른 해와는 다르게 2022년을 친정에서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동안 하시던 일을 정리하셨고, 어머니의 생신이 다음 주 금요일이라서 겸사겸사 친정에 갔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새해를 맞이한 것 같다.



우리 집은 기독교라 결혼 전에는 온 식구가 모여 송구영신 예배를 함께 드렸었다. 그래서 어제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잠자리에 드셨고, 남편과 아들도 방에 들어가 있었다. 나와 여동생만이 거실에 남아 의미 없이 채널을 돌려가며 수다를 떨었다. 12시가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시계를 보는 횟수는 늘어났다. 정각 12시가 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새해가 되는 그 선 위에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나와 여동생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12시 정각에 친구가 보내준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메시지가 그 순간을 잡아 놓아 주었다. 나의 새해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1월 1일 아침 식사를 떡만둣국으로 하고, 어제 파티의 흔적 앞에서 관광객들처럼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이 크리스마스에 풍선을 불어놓고 즐겁게 파티하던 모습이 생각이 나서 나도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파티를 했다. ‘HELLO 2022’라는 문구와 하트 모양의 풍선을 불어서 베란다 창문에 붙였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파티를 즐기기보다는 그 파티를 해치우는 분위기로 서로 풍선을 불고 글자를 맞추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어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었다.



길이 막힐까 봐 점심 무렵 친정을 나와서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에서 있던 하룻밤은 항상 방학 같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 개학 같다. 서둘러 짐 정리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었다. 점심 한 끼 차리는 게 귀찮아서 짜장면을 시켰다. 1월 1일이라 중국집이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문을 넣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꽤 되는 모양이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고 시계를 보니 4시가 되었다. 밀린 카톡을 읽고 카톡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친정에 가면 핸드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친정은 나의 현실과 떨어져서 거꾸로 시간이 돌아가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친정에 가면 내가 결혼하기 전에 자신만 알고 지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이 해 주는 것들을 받기만 하는 나로 변해 있다. 엄마나 아내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딸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현실 속의 나는 46세 아줌마인데, 친정에 가면 나는 언제나 결혼하기 직전인 30세 같다. 그리고 부모님 역시 모두 실제로는 70세가 훌쩍 넘었는데, 자꾸 60세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어제는 어머니가의 그림자에 아버지가 실려서 안방으로 들어가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새삼 이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등이 많이 굽어 있었고, 잰걸음으로 걷는 모습이 내가 수도 없이 보았던 다른 노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월을 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정신없이 하루가 갔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풍성한 것이 무엇인가 뿌듯하다. 하루 사이인데 연도가 바뀐 것도 있고,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더 마음이 알차게 무엇인가 가득 차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어제, 오늘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났지만 앞으로 2022년은 정신없이 내가 나를 정신없이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올 한 해는 꼭 무엇을 해서 보람이 있는 시간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나도 따라 흘러가는 2022년이 되었으면 한다. 주변보다 나에게 시선을 두고 다독이면서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기다.



2022년의 시간은 열정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성숙해지는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었으면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온 힘으로 악을 쓰고 버티는 나무가 아니라, 흔들리면 흔들리는 데로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굳이 무엇인가 이루려고 바둥대기보다는 가다 보면 볼 수 있는 경치들에 감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22년이 끝나는 그 마지막 날에 특별한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웠다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반갑다!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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