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잃어버린 시간

: 삐걱거리기 시작한 몸과 마음에 당황한 2021년 BYE~!

by 박세미

2021년도.


2020년 도라는 숫자에서는 규칙적이고 정리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2021년도에서는 이제까지 풀리지 않았던 복잡한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도 저절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시작점에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코로나(COVID-19)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도 올해 두 차례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였다. 백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백신의 부작용률이라는 것이 나에게 나타나면 100%, 나타나지 않으면 0%로 도 아니면 모인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예측도 기대도 하기가 어려웠다. 백신을 맞기 위해 나의 왼팔을 내놓는 순간에도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근육통과 생리불순 정도를 겪고 지나가는 것을 다행스럽다고 여겼다. 그렇게 2차 접종을 마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다.



풀리지 않던 문제도 풀릴 것 같은 2021년도는 오히려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문제들을 쏟아냈다. 가장 큰 사건은 SNS 개인 정보가 털린 것이다.



10월의 날씨 좋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보세요’라는 말 다음에 아주 잠깐의 침묵이 있었지만 나는 낯선 남자의 그 단 한마디로 이 전화가 일반적인 전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차례 ‘여보세요?’라는 말을 던지자 상대 남자는 어렵게 입을 떼는 듯했다.


‘혹시 페이스북‥….’


순간 일주일 전 낯선 여자의 벌거벗은 듯한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던 내 SNS가 떠올랐다. 나는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았다. 보통은 2주에 한 번 정도 들어가는데, 내 사진은 프로필 사진만 있고, 전부 내가 쓴 글만 올려놓았다. 그런데 나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고, 그 사진 아래 내가 적은 적 없는 소개글이 적혀 있어서 오히려 처음에는 내가 다른 사람의 SNS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내 SNS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불쾌한 기분이 들고 화도 났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모두 삭제하고 ‘해킹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이 전화 한 통으로 나의 그 대응은 너무 안일했고, 순진했고, 무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낯선 남자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과 내 SNS가 해킹을 당해서 이상한 메시지가 당신에게 간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남자의 미안하다는 어색한 사과를 미처 다 듣지 않고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담담한 척했지만, 내 심장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내 전화번호가 낯선 사람들에게 유출되었을 것에 대한 걱정과 사과까지 하면서도 나에게 몇 차례 전화하는 그 낯선 남자의 전화벨 소리가 전해주는 전화 공포가 생겼다. 그 낯선 남자는 분명히 미안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도 불구하고 서너 차례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 남자의 전화번호가 뜨면 그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고 있는 기분이 느껴졌고, 내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만 떠도 낯선 사람의 음탕한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 뒤로 꼬박 열흘 동안 나는 통신사와 구글에 연락을 취했고, 페이스북 계정에 탈퇴 신청을 했고, 경찰서에 가서 이와 관련된 사건으로 해킹 신고를 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나는 피해 사실을 여러 차례 설명해야 했고, 접속 IP주소를 알려달라고 직접 구글에 메일을 보내야 했고, 또 다른 낯선 사람이 나에게 또 전화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스팸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앱에 의지하면서 떨쳐내야 했다. 어디에서도 나는 내 피해 사실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고, 그저 내 SNS 계정이 사라질 날을 기다리며 하루빨리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나는 나를 스스로 다독여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몸에서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석증, 식도염, 족저근막염, 허리 디스크, 무릎 염증의 병이 나를 찾아와서 6개월 이상 다양한 약을 먹고 병원을 네 군데나 찾아다녔다. 몸이 아파서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서 우울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걷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일상적이지 않았다. 내 몸인데 내가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겪는 일들이 의사들에게는 ‘노화’라는 현상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마치 내 몸은 달린 지 10여 년이 넘어가는 자동차처럼 느끼게 했다. 폐차를 결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잔고장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중고차 말이다.



몸이 아플 때마다 힘들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이석증이었다. 이석증이라는 병을 올해 처음으로 알았는데, 올해만 총 세 번이나 겪었다. SNS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로 두 번이나 찾아왔다. 특히, 세 번째는 이석증이 나의 마음에 찾아왔다. 누워 있으면 진짜로 천장이 빙빙 돌았는데, 실제로 내 귀는 멀쩡했다. 의사는 보통 이석증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귀에는 이상이 없는데 환자는 실제로 어지러움을 느낀다고 말이다. 의사는 현관문도 닫혔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지 않느냐면서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심하면 이석증 공포로 인해 고개조차 제대로 돌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의사 말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을 찾기 전까지 나는 고개를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고개가 흔들리는 것도 무서워했다. 뿐만 아니라, 누웠을 때마다 천장이 빙빙 도는 것을 몇 번 경험해서인지 나는 눕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서 잠이 들었었다. 가끔 누울 때마다 어지러움을 느낄 것을 걱정하며 오른쪽과 왼쪽으로 번갈아 가면서 이상이 없는 것을 매번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의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것처럼 말하며 나를 위로했다. 이석증은 나이가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 중에 나타나는 것이고, 다시 어지러우면 병원에 찾아오면 된다는 것이다. 생활을 잘못하거나 유전적인 질병이 아니고,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질병 중에 어떻게 보면 가장 간단한 것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그 이야기를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들으면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마치 올 한 해 내가 전전긍긍하면서 내 삶의 과제를 풀 듯이 살아온 것에 대한 자책을 감싸주는 것 같았다.



의사는 부작용을 최소화한 정신공황 약을 처방해 주고, 비타민 D를 챙겨 먹을 것을 권했다. 그래서 나는 약사 추천으로 제일 좋은 비타민 D를 샀다. 신체의 병이 아니라 정신적인 병이라고 하자 이제까지 버티기만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서 내가 안쓰러웠다. 나는 내 속에 무엇을 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이 세상의 자극에 무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꾸역꾸역 ‘나’라는 사람 안에 이것저것 쑤셔 넣고 괜찮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저절로 내 안에 담아놨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하면서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서서히 괜찮아지는 방향으로 모든 것들이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날 밤에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 온 약을 한 번 먹었다. 정신적인 문제를 약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생각이 어지러움보다 더 큰 두려움으로 나를 덮쳤다. 그래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내 마음을 비워 내는 것과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먼저 내 마음을 비워 내려고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이 치유법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특별한 말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저 막연했지만,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아무 생각 없이,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써 내려갔다. 전혀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두려워하는 나를 쏟아내고 있었다. 열정 가득했던 젊은 시절에도 미처 이루지 못했던 것들이 많은데, 이제는 늙어질 일밖에 없을 내가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현재 초라한 모습만 남아 있는 것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또 내가 나이가 들면서 치루어야 할 부모와의 이별에 대해서도 미리 겁을 내고 있었다. 나에게 열매를 따주고, 그늘을 만들어주던 산과 같았던 부모에게 이제 내가 산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내 마음속의 부모님은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내 글을 다시 곱씹어 읽으면서 나는 실컷 울었다. 눈물이 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 눈물에 내 설움이 다 씻겨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나는 며칠 동안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내 기분은 흙탕물 같았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데로 흘리면 흐린 데로 어떤 이유로든 갑자기 물과 흙이 뒤섞일지 모르는 긴장감이 나를 뒤덮으면서 나는 나와 힘겹게 싸웠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DIY 유화 그리기’ 도구를 샀다. 그림을 못 그리는 내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미 그려 놓은 스케치 위에 정해진 번호에 맞는 색깔로 그림을 채워나가면 된다. 3일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대여섯 시간을 색칠만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머리는 점점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서서히 나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 힘이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나와 처절하게 내가 싸웠다는 것이다.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 없는 싸움이었지만,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걸어 나온 듯한 기분이다. 성인이 되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지만 ‘어른’의 무게를 견디는 것에는 늘 서투른 것 같다.



이번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내가 오롯이 앞으로 그 무게를 견디는 일들에 어느 정도는 의연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그 자신감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나잇값이라는 말의 무게를 비로소 현실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모님과 머지않은 시간에 이별을 할 것이고, 자식도 내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어 있는 것뿐 아니라, 없어지면서 내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가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의미 등이 뒤엉켜져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어 나를 짓누르기만 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미리 걱정했다.



그런데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처절하게 싸우면서 나는 오히려 더 밝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두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인데도 내 생활 속에 시기적절하게 대입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몇 개의 터널이 더 남아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나는 나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얻는 훈장이기도 하고 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든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니까 이것이 인생의 여정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그렇게 하나의 터널을 또 지나게 되면서 나는 신체적으로는 죽음의 문턱에 한 발씩 다가가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는 이별이나 실패에 대한 것에도 좀 의연해지는 내가 될 것 같다.



초라한 나를 발견하고,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초라한 것을 자연스러운 것을 이해하고, 조바심을 내려놓기를 바란다. ‘할 수 있다’, ‘늦지 않았다’는 말에 에너지를 받아 30대의 마음으로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나는 40대인데 30대인 줄 알고 살았던 것 같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현실에서 목표를 향해 뛰기보다 그 과정에 의미가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을 받아들이면 덜 힘들어질 것 같다. 정해지지 않은 길에 대해 보상을 받을 욕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느꼈던 한 해였다. 주변을 살펴볼 정신도 에너지도 없이 내 한 몸 스스로 챙기기도 바빴던 한 해였다.



“잘 가라!

징글징글했던 나의 2021년도!

뒤도 돌아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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