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 꾸준히 하기

: 2021년의 나의 과제

by 박세미

영하 10도의 차가운 공기로 아침을 맞이했다.


특별한 일 없는 휴일의 아침은 여유롭다. 이불속에서 미적대다가 6시 반의 알람이 무색하게 8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우습게도 나에게는 벌떡 일어나는 것도 독립운동을 할 정도의 결단이 필요했다. 어젯밤 ‘10, 9, 8, 7 …… 3, 2, 1! Happy New Year!’을 외치고 나서 맞이한 새해 아침은 놀라울 정도로 어제의 아침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2021년이라는 이 시간이 나에게 주는 기대감이 벌써 사라진 것 같았다.


오늘 아침도 나는 따뜻한 보리차 한잔과 뉴스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무조건 믹스커피 두 봉지를 타서 마셨는데, 이제는 한 여름에도 전자레인지에 보리차를 따뜻하게 데워서 마신다. 40세 넘은 나이가 주는 건강에 대한 나의 배려이다. 가끔 아침 방송에서 알려주는 5분 체조를 슬그머니 따라 해 보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면역 5분 체조를 혼자서 따라 해 보았다.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식하게 된다. 요가 스튜디오에서는 민망한 복장으로 땀을 흘리면서 2시간 정도 어떤 동작도 따라 하는 것은 창피하지 않은데, 집에서 혼자 아침방송을 보면서 5분여 동안 체조를 하는 것은 왜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잔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를 보았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나는 보통 오전 내내 뉴스를 틀어놓는다. 때때로 미국과 일본의 뉴스까지 찾아서 본다. 뉴스를 통해 매일 코로나 소식 특히, 확진자 수와 백신 소식을 확인한다. 오늘은 1029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WHO가 화이자 백신을 승인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매일 뉴스를 열심히 보면서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는 잘 모른다. 나는 오늘이 토요일인 줄 알았다. 날씨는 매일 확인하면서 요일은 관심이 없다. 사실 나에게 요일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남편도 아이도 일주일 내내 집에 함께 있다.


오늘은 1월 1일이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휴일이다. 이 휴일에 어울리는 의식이 나에게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의식을 치렀다. 시댁과 친정 어른들께 문안인사로 덕담을 나누었고, 가족들과 아침식사로 떡만둣국을 먹었다. 아침부터 소고기와 황태를 넣은 육수를 만들어 거기에 떡과 만두를 넣었다. 이 의식을 치르고 나니 공식적으로 나의 새해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생각보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고, 며칠 만에 새소리를 들었다. 그 새소리가 나에게 경쾌하게 들렸다. 영화 속에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때의 그런 장면처럼 말이다. 아마도 저 새는 매일 울었거나 노래했겠지만, 나는 오늘에서야 그 새의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누군가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는 특별한 순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분 좋게 돌아서는데 방정맞게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구급차일 것이다. 그 앵앵거림이 잠깐 느꼈던 포근한 기분을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바꾸어놓았다. 이 동네 어디선가 확진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나는 ‘오늘도 나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빗장을 조였다. 나는 오늘도 집안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에 나를 가두고, 핸드폰과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보냈다.


가족들과 새해 소망을 나누었다. 가족들과 진지하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나와 아이는 자신들이 바라는 2021년의 모습을 가볍게 이야기했다. 아이는 자신이 하는 게임의 레벨을 올리는 것부터 중학교 수학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학업적인 이야기까지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나는 글쓰기에 몰입해서 브런치 북을 한 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것을 꺼내 놓지 않았다. 나도 굳이 다시 묻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는 알 것 같았다. 남편은 2021년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고, 자신도 지금처럼 열심히 직장 생활하기를 바랄 것이다. 40대 중반의 가장이 갖는 개인의 소망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보다 앞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세끼를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별다른 일 없이 새해 첫 하루가 지나갔다.


하루를 마치면서 나에게 남는 말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돈에 대한 생각을 묻는 인터뷰를 보았다. 어느 작가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로 돈을 벌지 못해도 자신의 일이 가치 없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삶의 무게와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나에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이 단호한 말이 내 머리에 들어와 앉았다. 내가 글을 쓰고 사람들과 만나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남들에게 소개해야 할 때, 나는 ‘돈도 안 되는데, 스트레스까지 받으면서 할 것 없잖아’라든가, ‘하다 보면 뭐 돈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야’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이런 말들은 내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내가 최선을 다 해서 하고 있는 일들이 남들 눈에 그저 취미로 비치는 것과 그것에 대해 평가를 받는 것을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들이 결국에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부정하고, 나 스스로가 아마추어인 것을 인정하면서 상대가 나의 초라함을 평가하지 못하도록 미리 선수 치는 변명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는 내가 하는 일들이 경제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금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하찮은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 일들이 돈이라는 숫자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돈을 못 벌어도 이 일이 좋아서 한다는 말은 하기는 싫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어도 힘든 것은 반드시 있다. 그 일에 대한 보상이 경제적인 혜택으로 돌아온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작가의 말을 통해 나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2021년 1월 1일, 평범하게 보낸 나의 평범하지 않은 휴일에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작가의 말 한마디로, 나는「‘하찮은 일’ 꾸준히 하기」라는 나에게 쉽지 않은 과제 하나를 던졌다. 올 한 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묵묵히 하겠다는 다짐보다는 내 안에 ‘하찮은 일’로 포장된 것들에 대해 꾸준함으로 그 가치가 나타나게 노력해 보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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