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의 소중함, '내 사람들'의 소중함
2020년은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역사에 남을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나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면서 뉴스를 통해 보는 세상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어느새 아무 일도 없었던 나조차 지친 것을 알았다.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힘들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한 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 이제는 재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코로나의 재앙이 끝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코로나 19(COVID-19)라는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활을 모두 바꾸어 놓았고, 아무런 예고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내가 생각한 ‘나의 사람’이라는 개념이 축소된 시간이기도 했다. 벼랑 끝에 서서 내가 챙기고 싶은 사람들만 내 곁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던 것 같다. 생활은 개인을 내세우며 최소한의 집단만을 허용하면서 의식은 공동체를 강요하는 사회가 된 것 같다.
코로나와의 전투에서 우리 모두 함께 ‘으샤! 으샤!’, ‘영치기영차!’ 외치면서 힘을 내기만 하면, 단시간에 코로나를 무찌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코로나는 보란 듯이 다른 모습으로 변신까지 하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 힘내어 보자고 우리끼리 끼고 있던 팔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고, 방어벽들이 한 줄씩 한 줄씩 줄지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점 ‘심리적 거리두기’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부터 해답이 있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정말 정답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올해 코로나, 태풍, 폭설, 미세먼지 등으로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분노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 같다. 다시는 만나고 싶은 않은 모습들이다.
나는 이런 자연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습관처럼 살았던 생활 속에서 영원한 것도 정해진 것들도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사회적인 규칙이 변화하였다. 아이의 개학이 미루어지다가 학교 수업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남편은 코로나가 발생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중국 출장을 다녀왔고, 이후 출근과 재택근무 병행했다. 어느 곳을 가던지 내가 다녀간 기록을 남겨야 했고, 체온을 재고 손소독제를 사용해야만 했다. 현관문을 나서려면 마스크를 쓰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아버지 생신에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도 친정 식구들이 모이지 못했다. 사람을 직접 만나서 마주하는 일이 나를 가장 긴장시키는 일이 되었다. 나는 하루 세 끼 가족들의 식사를 차려야 했고, 내가 했던 강의들도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바꾸었다. 건강한 내 동생이 아파서 큰 수술을 받는데 보호자가 지정된 1인만 가능하였다. 면회도 안 되었다. 친구들을 16인치 모니터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국내 여행을 갈 수 없었고, 해외여행은 추억이 되었다. 내가 집 밖을 나선 건 동네 뒷산과 도서관, 동네 마트, 우체국이 전부였다. 내일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기보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2020년 마지막 날도 여지없이 나는 아침 7시에 아이를 깨우고,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 그리고 아이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동안 점심 준비를 했다. 오늘도 우리 집에는 세 식구가 모두 함께 각자의 자리에 있었다.
나는 점심으로 김밥을 준비했다. 김밥은 올해 내가 가장 많이 한 음식이다. 준비 과정은 조금 번거롭지만, 일단 준비해 두면 두 세 끼 정도 10분 안에 한 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게다가 김밥은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등 영양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서 인스턴트나 부실한 식단을 차리는 것에 대한 나의 주부로서의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오늘도 두 끼를 김밥으로 해결하였다.
김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은 아쉬웠다. 나는 특별한 음식이 있었으면 해서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전에는 와인보다 맥주를 즐겨 마셨었다. 그런데 요즘 집에만 있다 보니 운동부족으로 몸도 불편하고, 살도 쪄서 맥주보다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 와인 한 잔이 맥주 한 캔보다 배부르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나만의 이유가 있다. 나는 와인을 사러 동네 마트에 가는 남편과 아이를 전쟁터에 내보내듯이 철저히 무장시켜 내보냈다. 남편과 아이가 현관문을 나서면서 건넨 ‘다녀올게’라는 말과 그들의 뒷모습은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영국에서 입국한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로 사망하였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갔던 마트나 미용실은 가지 않았지만, 우리 동네 누군가는 다녀왔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의 외출이 어느 때보다도 더 조심스러웠다. 코로나는 모두를 의심하게 만든다.
올해 나는 나를 위로하는 것으로 많은 와인을 마셨고, 많은 영화를 봤다. 와인을 자주 마시다 보니, 달지 않게 드라이하고, 묵직한 와인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영화를 많이 보면서 내가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유쾌한 로맨스 이야기, 담담하게 풀어내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나는 책 한 권 여유 있고 재미있게 읽지 못했지만, 세 식구 함께 식사를 하고, 화상수업을 했고, 집안일을 했다. 그리고 머릿속 가득히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나는 몇 시간 남지 않은 2020년 마지막 날을 가족들과 함께 새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와인 한잔에 2020년의 힘든 것을 조금 덜어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말이 묵직하게 나를 짓눌렀던 2020년이었다.
아듀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