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당연한 '복권'

‘괜찮아’라는 위안이 필요할 때

by 박세미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 앞에는 제법 큰 마트가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집에서 가까워서 쓰레기봉투나 과자를 사러 자주 갔었다. 내가 그 마트에 발길을 끊은 것은 채소를 사러 갔는데 감자에 싹이 나 있고, 잎이 누렇게 뜬 시금치가 늘어져 있는 것을 본 이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마트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마트도 새 단장을 했다. 마트 간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문구는 ○○마트가 아니라, ‘복권 판매점’이었다. 그리고 가게 앞 현수막은 ‘로또 1등 15억 7천’이었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가 로또 1등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저녁에 남편이 신이 나서 들어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했더니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낸다. 기대에 차서 내 시선은 그의 손짓 하나하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가방에서 나온 것은 복권 3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남편은 그 복권 한 장이 몇 억이라도 들어 있는 돈 봉투라도 되는 것 마냥 소중하게 꺼냈다. 나와 아이에게 한 장씩 선택하라고 했다. ‘이것이 ‘선택’이라는 말을 쓸 만큼 의미가 있는 일인가?’ 싶었다. 나는 복권이 나에게 일확천금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람이다. 한 번도 내 손으로 내 돈을 들여서 복권을 사 본 적이 없다. 그 돈이면 차라리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선택’하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에서 ‘혹시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툭 내민다. 그러면서 좀 전까지 천 원짜리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나를 편안한 생활로 인도해줄 수도 있는 황금 티켓이 될 수가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랑 아이는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을 하고 서로 바꿔가기를 몇 번이나 하고 난 뒤 각자 자기 것을 챙겨서 흩어져 뒤돌아 앉았다. 우리는 정성껏 조심스럽게 복권을 긁었고, 우리 집에는 정적이 돌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던 집안 공기를 뒤흔든 건 ‘에잇!’이라는 남편의 비명 같은 한탄이었다. 뒤이어 아이가 소리쳤다. “앗싸!” 순간 나는 내가 그렇게 날쌘 줄 몰랐다. 나는 아이의 복권을 낚아챘다. “얼마가 된 거야?” 순간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된 것이 당첨인 줄도 몰랐다. “이게 얼마가 된 거야?” “천 원!” 순간 웃음이 터졌다. 나는 내 복권을 마저 긁고는 남편에게 주었다. “내 건 얼마가 된 거야?” 남편의 눈이 커졌다. 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 뭐가 되긴 된 거야? 이거 내 거다!” 남편이 내게 복권을 주면서 말했다. “응, 너 가져. 오천 원.” 오천 원이라도 된 것이 감지덕지였다. 나는 남편에게 내일 퇴근길에 그것을 돈으로 바꿔다 달라고 했다.

다음날 저녁, 남편은 6장의 복권을 가지고 들어왔다. 우리 가족들은 또 서로 등지고 돌아앉아 ‘사각사각’ 복권을 긁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안다. 어떻게 해야 당첨이 되는 것인지 말이다. 아무리 맞춰 봐도 이번에 2장은 모두 꽝이다. “아니, 돈으로 가지고 오라니까, 왜 복권으로 가지고 와?”라고 톡 쏘아붙였다. 그러면 3천 원이라도 벌었을 텐데 말이다. 남편이 말했다. “6천 원을 누가 돈으로 가지고 오냐, 그 정도는 다시 복권으로 받아와!”


친구 중에 고등학교 3학년을 복권으로 버틴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매주 복권을 사는 것으로 일주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한 장의 복권으로 고3의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냈다고 한다. 이 복권만 당첨이 되면 자신이 대학을 가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고 말이다. 나는 당첨이 되지 않을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 복권이 고3 생활에 위안이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친구는 아쉽게도 한 번도 당첨이 되지 못했지만, 원하는 학교에 가서 지금은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힘든 고3 수험생들에게 자신의 ‘복권법’을 알려주는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토론토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근무하던 편의점에 매주 비슷한 시간에 와서 복권을 열댓 장씩 사는 백인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복권 한 뭉텅이를 가지고 가게 구석에 앉아서 고심하며 숫자를 하나씩 하나씩 체크해 나갔다. 나도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키가 크고 곱슬머리에 선한 얼굴을 한 젊은 남자로 얼굴에 웃음이 없었다. 그 사람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져서 그 앞을 지나가기도 조심스러웠다. 내 친구는 그 사람을 ‘로또 고시생’이라고 불렀고, 우리는 그 사람이 오면 한국말로 ‘고시생 또 왔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 사람이 체크한 숫자가 로또 번호인지를 아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친구가 기계에 넣고 뭘 눌러대면 기계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고 결과를 알려준다. 친구가 2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그 사람은 한 주도 거르지 않았지만, 당첨이 된 적은 없었다.


지난해 6월에 추첨했던 로또복권 당첨금 48억의 주인이 결국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 당첨금이 모두 국고로 들어갔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복권은 작년에 청주시의 한 로또 판매점에서 판매되었다고 한다. 나는 ‘로또 1등 당첨된 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서야지’ 하기보다는 그 사람들 때문에 지나가기가 불편한 것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기사는 나를 너무 안타깝게 만들었다. 나는 그 당첨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 당첨금이 내 돈인 것 마냥 속이 쓰렸다. 동시에 당첨자가 평생 자신이 당첨자였다는 사실을 모르기를 바랐다.


복권은 실패가 없다. 왜냐하면 복권을 사는 마음의 시작은 당첨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권은 돈 천 원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 수가 있다. 그 천 원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내가 부자가 되지 못해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복권은 누구나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첨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상처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당첨이 되면 그때부터는 실패를 두려워할 수도 있다. 한꺼번에 생긴 돈으로 인해 사람 관계에서 실패할 수도 있고, 돈 관리를 잘못해서 실패할 수도 있다. 복권 1등 당첨자가 결국 불행해졌다는 떠도는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듣는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매주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하는 복권은 ‘실패’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의 이면을 보게 하는 것 같다. 실패를 하면, 그 실패를 통해 반성하고 보완하고 수정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 옳을 것 같은데, 복권을 통해서 바라본 실패는 금세 자기 위안이나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것 같다. 내 능력의 한계치를 가늠 필요가 없고,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내려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COVID19)에 압도된 생활에 지쳐가는 지금, 하늘에서 치료제와 백신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아무런 힘이 없는 내가 오늘 하루도 복권을 긁는 마음으로 ‘괜찮아’라고 나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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