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나라에 온 배장이

: '개미와 베짱이' 비틀어 보기

by 박세미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우울할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 주식이라는 시장에 막 눈을 떠서 돈을 번 사람들이 있었다. 주변에서 얼마 벌었다는 소리에 나도 주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으로 주식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는 주식 시장의 소액 주주 소위 말하는 ‘개미’가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몇 백 원 오른 것에 즐거워하고, 몇 백 원 떨어진 것에 슬퍼했다.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개미가 되었지만, 나는 ‘개미’라고 불리는 게 싫었다. 겨울을 위해 여름 내내 그 무더위를 참아내며 일하는 것이 불쌍하기만 했다. 모든 개미가 겨울을 지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개미는 부지런하고, 미래를 준비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모든 개미가 그렇지는 않다. 개미는 각자 정해진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개미는 ‘개미’라는 집단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개미와 베짱이’ 속의 한여름 뙤약볕 아래 일하는 개미는 많은 개미들 중에 일개미다. 나는 그 일개미로 불리기가 싫었다. 왜냐면, 진짜 내가 개미라면 일개미 역할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바보에게 바보라고 하면 화가 나는 원리라고나 할까.



개미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만 하면 칭찬을 받는데, 나는 엄마, 딸, 며느리 등 많은 역할을 해도 끊임없이 많은 요구가 쏟아지는 것이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일개미에 지나지 않을 내가 적은 돈을 투자한 ‘개미’라는 말에 삐딱하게 굴고 싶어졌다. 적은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개미처럼 그 안에서도 무언가 동동거려야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개미’라는 단어에서 시작된 나의 삐딱한 시선이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에 꽂혔다. 베짱이는 생태적으로 육식이고, 겨울을 지낼 수 없다. 그래서 베짱이가 여름 내내 놀다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개미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이 베짱이는 겨울에 살아남아 있는 이 지구상의 유일한 베짱이로 아마도 개미를 잡아먹으러 갔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새로운 이야기로 점점 구체화되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글을 써 보았다.



<줄거리>


개미 나라에 베짱이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린다. 베짱이는 그곳이 개미 나라인 줄은 몰랐다. 그저 추위를 피해 정신없이 희미한 불빛만 따라왔다. 베짱이는 친구가 권한 마법의 술을 마시고 겨울을 지내게 되었다. 개미들은 자신들을 먹이로 생각하는 베짱이를 믿지는 않았지만, 베짱이 등에 있는 기타를 보고 문을 열어 주었다.



개미 나라의 새로운 여왕개미는 알을 많이 낳지 못했는데, 일개미가 여름에 밖에서 일하면서 음악이 산란에 도움을 준다는 말을 듣고 개미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개미 나라에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외의 새로운 역할, 즉 음악을 할 수 있는 개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그들을 찾아온 기타를 맨 베짱이는 개미들의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었다.



베짱이는 위아래는 흙으로, 사방은 희미하게 투명한 비닐로 돌돌 말려 있는 방에 갇혔다. 베짱이는 자기 앞에 검은 무리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적은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비틀기>


개미 나라에 온 배장이



“띵똥! 띵똥!”


“누구세요?”



병정겜이가 현관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니,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베짱이가 보였다. 초록색 연미복을 입은 듯한 베짱이는 등에 기타를 메고, 마술사 모자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겨울 눈보라 속에는 멋지기보다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베짱이의 초록색 몸은 하얀 세상 위에 더 푸르게 느껴졌고, 그 푸르름이 베짱이를 더 춥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배장이는 병정겜이의 물음에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기억도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 걸었다. 지난여름에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때의 따뜻한 햇살과 친구들의 환호 소리를 추억하면서 그 힘으로 버티며 걸어온 것은 분명했다. 너무 추워서 기타를 칠 수도 없었지만, 등에 얹어진 기타의 온기가 배장이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함께 노래 부르던 배장이의 친구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죽었다. 그것은 베짱이들의 운명과 같은 것이다. 추운 겨울을 보내는 베짱이는 없다. 친구가 건네준 마법의 술 한잔이 지금 이 베짱이에게 한겨울을 선물해 준 것이다.



‘그것이 진짜 마법의 술일 줄이야…….’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뚫는 듯이 지나가고, 눈보라가 눈앞에 팝콘처럼 터져 날리는 모습이 배장이는 신기했다. 하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이 더 부풀어 올랐다. 겨울은 베짱이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배장이는 왜 베짱이들이 겨울이 오기 전에 죽는지 알 것 같았다.



배장이는 죽을힘을 다해 희미한 불빛에 홀려 걸어왔다. 그 불빛은 무조건 자신을 따뜻하게 반겨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누구세요?’라는 질문에 배장이는 자기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누구시냐고요?”



문 안에서 한 번 더 묻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배장이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배장이 입니다.”


“네?”


“배장이라고요.”



병정겜이가 문을 살짝 열었다. 그 문틈 사이로 사나운 바람이 눈을 몰고 휘몰아쳐 들어왔다.



“누구야! 누가 문 열었어? 지금 여기 일하는 거 안 보여?”



식량창고에 음식을 나르던 일겜이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병정겜이가 서둘러 문을 닫고 다시 현관문구멍으로 내다보았다.



“배장이 씨? 맞나요? 배장이 씨?”


“네…….”


“배장이 씨! 무슨 일이시지요?”


“저, 저 좀 살려주세요.”



배장이는 살려달라고 말한 자신이 놀라웠다. 부모, 형제, 친구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는 자신이 무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난여름과 같은 시간이 다시 온다면 이 겨울 버티고 잘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여름은 배장이에게 축제였다. 매일매일이 파티였고,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기타도 그때 배웠고, 그 기타 솜씨로 아름다운 배정이도 만날 수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한 시간이었다.



문밖에서 살려달라는 말에 병정겜이는 놀라서 옆에 있는 병정게미를 쳐다보았다. 병정게미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 대장병정겜이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할 것 같았다. 병정겜이는 병정게미에게 문을 지켜달라고 한 뒤 대장병정겜이에게 갔다.



병정겜이의 보고를 들은 대장 병정겜이는 서둘러 현관으로 나왔다. 병정겜이의 말대로 문 밖에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베짱이 한 마리가 있었다. 대장 병정겜이는 배장이를 한참이나 노려보다 문을 열어주었다.



배장이가 눈을 뜨자 하늘이 아니라 천장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막힌 듯했다. 위와 아래는 모두 흙으로 되어 있었고, 사방 모두 투명한 막으로 돌돌 말려 있었다. 무섭기는 했지만, 추운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배장이는 굳이 그곳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로 했다. 누워서 기타를 튕기는데, 투명한 막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새까만 무리가 자기에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긴장한 배장이는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앉았다.



“배장이? 자네 이름이 배장이 맞나?”


“네, 맞습니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너 같은 베짱이는 겨울 전에 다 죽는데, 너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친구의 마법의 술 때문에……. 저도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너 혼자인 거야?”


“네. 제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네 말대로라면, 그 마법의 술을 마신 베짱이들은 다 살아 있을 거 아니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저 혼자입니다.”


“여긴 왜 왔어?”


“그냥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배장이! 너 육식이지?”


“.......”


“너, 먹을 것 찾아온 거지? 우리 사냥하려고?”


“그건, 정말 아닙니다!”


“우린, 네가 죽고 사는 건 관심 없어! 네 기타가 널 살린 줄이나 알아!”



배장이는 기타가 자신을 살렸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땅밑으로 들어오는 음식에 기타가 한없이 고마웠다. 음식은 전에 자신이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폭신한 식감에 달달한 맛이 났다. 양이 많지 않아서 한입에 털어 넣고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금방 사라졌다. 추위 때문에 잊고 있던 배고픔이 찾아왔다.



검은 무리는 배장이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배장이가 음식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염치없지만 음식 좀 더 주실 수 있으세요?”


“그것이 하루치야! 여기서는 공짜가 없어!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고,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 있어. 너라고 예외는 아니야!”


“그럼, 전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넌 여기서 하루 한 시간씩 두 시간 간격으로 기타 연주를 하도록! 우리 여왕님이 알을 잘 낳을 수 있는 곡으로 연주해!”


“네? 그런 곡이 어떤 건가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여왕이 새롭게 된 여왕겜이는 전의 여왕게미보다 알을 많이 낳지 못했다. 이것이 개미 나라의 큰 걱정이었다. 지난여름, 일겜이가 식량을 찾으러 나갔다가 다른 동네 개미들에게 음악이 여왕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면 알을 낳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전해 듣고 왔다. 그 개미들은 베짱이들이 사는 동네 근처에 살았는데, 처음엔 시끄러워서 불만이 많았지만, 여왕님이 그 음악 소리에 흥도 나고, 눈물도 나고, 마음도 평안해지기도 하면서 알의 양이 늘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이 개미 나라에서 악단을 꾸리려 했는데, 모두 이미 자기의 역할을 가지고 있어서 악단을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미들에게는 음악을 만들 재능도 없었다. 그러던 중 배장이가 찾아오자 대장 병정겜이는 한눈에 베짱이의 음악성을 알아본 것이다. 등에 기타까지 메고 있으니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것 같았다.



배장이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음식의 양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알고 있는 곡을 하나씩 연주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오면 꼭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검은 무리들은 배장이의 마음에 한 마디를 남기며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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