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 나이트오프(Night Off) ♪
결국 다 사라져 버릴 뿐이지만
끝내 난 울어버리고 말겠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무엇도 끝이 없는 건 없겠지만
끝내 익숙해지진 않겠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어쩌면 다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다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친구가 듣다가 울었다면서 들려주었다.
짧은 간주 뒤에 바로 나오는 목소리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슬픔이 묻어 있었다. 몽환적이기도 한 멜로디를 비집고 현실적인 가사가 마음에 와 꽂혔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들려오는 ‘결국 다 사라져 버릴 뿐이지만,’ ‘끝내 난 울어버리고 말겠지만’이라는 가사가 내 마음속에 훅 들어오면서 물음표로 자리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 때문에 울어버리는 것일까?
나의 물음표가 그다음 가사로 느낌표로 바뀌었다.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반짝이는 순간들이 너무 예쁘지만, 그것은 결국 다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를 울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다음 가사들처럼 이 세상 무엇도 끝이 없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이 노래는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라는 말을 주술처럼 읊어대며 이러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그 순간들은 모두 예쁘지만, 인생은 그 순간들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들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 순간이 더 빛이 나는 아름다운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야 그 찬란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어리석고 안타깝다.
그런데 나는 친구처럼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이 노래 중간중간에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들리는듯한 노래 가사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순간이 너무 예쁨에도 불구하고 부질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두 부질없음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그 순간은 너무 예쁘다는 말로 다가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던 시절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발버둥 쳐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라는 주술 같이 반복되는 가사가 내 몸에 침투되어 한 번 더 힘을 내보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나는 반짝이는 순간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고, 예쁘게 반짝이고 난 다음 상황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두려움 없이 도전해 보고, 그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에도 웃을 수 있고, 세상의 밝은 면이 많이 보이던 그 시절에 내가 가장 반짝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빛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내 안의 어둠을 끌어내어 오히려 나를 반짝이게 하는 것 같았다. 인생의 한 토막을 잘라 빛이 나는 순간이라고 하기보다는 내 인생 어느 순간에도 나는 크고 작은 빛을 내고 있다는 말을 해 주는 것 같다. 그러니 함부로 내 빛을 스스로 끄지 말라고, 스스로 감추지도 말라고, 스스로 외면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신비로운 기운 같은 것에 이끌리듯이 뮤직비디오를 열었다. 지하철 밖으로 나와 본 도시의 담담한 모습과 늘어지는 듯한 가수의 목소리가 서울의 일상을 한 폭 잘라내어 놓은 것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라, 삭막한 듯한 도시 속에 순간순간 반짝이는 것들에서 보이는 예쁜 순간들이 내 마음에도 들어왔다. 점점 나의 맘이 부풀어졌다.
쏟아진 물, 노을 진 햇살에 반사된 한강의 잔잔한 물결, 도로 간판조차 햇살을 받으면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햇살은 무엇이든 반짝이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준다. 높이 뜬 대낮의 태양만이 빛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노을빛 하늘의 태양도 무언가를 빛나게 만들어 준다. 마치 세상 속에서 반짝이는 것은 나 스스로 빛을 내기보다는 상황 속에서 내가 빛이 나게 된다는 것을 햇살에 비친 눈부심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십이라는 고개 앞에 서 있는 나는 여전히 20-30대 청춘의 빛남을 갈구하고 있었다. 내가 경험한 빛나는 순간은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슷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면, 칠십의 길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찬란함을 존경한다.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간 우리 엄마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잊고 사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예쁘니까’
인생의 길에서 매 순간 반짝이고 나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내가 나를 응원하면서 다독여주고 싶다.
잘 살고 있다고.
충분히 여전히 빛이 나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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