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게 된 그림 하나가 있다. 그림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유 없이 자꾸 시선이 갔다. 반쯤 고개를 내민 노란 보름달, 빨간 벽돌담, 슬레이트 지붕, 편안한 차림의 남자 모습에서 소탈하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가 몇 살 쯤인지 모르겠지만, 퇴직하고 여유롭게 자신의 노년을 준비하는 사람 같이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굳게 닫힌 대문과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등지고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여유롭게 느껴지는 분위기와 다른 폐쇄적인 설정이 묘하게 조화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만의 상상을 글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그림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나를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나를 전부 드러내는 것에는 겁을 내는 내 모습이 이 그림에 겹쳐 보이는 것 같다.
An Old Man in Hong Kong, Illustrated by Jojo, 2022
피곤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문밖에서는 엄마가 수 없이 부르는 내 이름이 떠다니고 있다. 중간고사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집에 있고, 부모님만 할아버지 댁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간고사는 핑계고, 나는 잔소리 없는 집에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머리에서는 일어나라고 수도 없이 소리치는데 그 소리가 내 몸까지 전해지지가 않는다. 아무리 소리쳐도 꼼짝도 못 하던 내 몸이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유리 파편 같은 엄마의 목소리에 벌떡 반응했다. 구겨진 종이를 하나하나 펴듯이 내 몸이 침대에서 일으켜졌다.
할머니가 계실 때, 우리 가족은 추석 하루 전에 할아버지 댁에 갔었다. 어려서는 학원과 숙제에서 벗어나 할아버지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고, 할머니와 엄마가 전을 부치는 옆에서 밀가루 장난도 쳤다. 하지만 이제 고1인 나는 시장 구경 가는 것도 귀찮고, 전 냄새가 나는 자리에 끼고 싶지도 않다. 더 이상 나는 추석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차피 추석 때는 학교도 학원도 모두 쉰다는 것을 이제 알아버렸다. 내가 커버린 것처럼 할아버지도 훌쩍 커버렸는지 할아버지의 추석도 이제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가 색을 잃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명절이 되면 엄마가 우리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명절날 아침에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엊저녁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 코를 파고드는 기름 냄새는 나에게 ‘내일이 추석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번 추석도 집안을 뒤덮은 기름 냄새로 명절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그 냄새가 나를 들뜨게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에게 나를 후지게 보여주는 장치 같다. 그 냄새는 주방 일에 찌들어 나온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할아버지께 출발한다고 말하는 아빠의 통화 속에서 ‘명절이 별것이냐, 번거롭게 올 필요가 없다’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핸드폰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빠는 대꾸도 하지 않고,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아빠의 뒤통수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그 순간 내가 할아버지 댁에 가기 싫어진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른 새벽 시간, 기름 냄새, 그리고 우리를 반기지 않는 할아버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조금 전에도 있었던 이 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간신히 눈을 떴는데 아직 해도 뜨지 않았다. 왠지 모를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주변은 어둡고 조용했다. 그 고요함 속에 희미하게 할아버지가 느껴졌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굳게 닫힌 대문 앞에 앉아 계셨다. 그 대문은 할아버지의 입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툭 치면 부스러져 내릴 것 같이 낡을 만큼 낡았던 대문이었다. 페인트 껍질이 다 벗겨지고, 녹이 슬어 대문 색깔이 어떤 색인지 제대로 알 수도 없었다. 몇 번 덧대어 칠해서인지 파란색도 보이고, 초록색도 보였다. 하지만 대문이 항상 활짝 열려 있어서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고 나갈 때 그 대문을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눈에 들어온 것은 새 대문으로 바뀌면서부터였다. 할아버지께서는 혼자 이 집에 남게 되면서 가장 먼저 대문을 고쳤다. 예전과 다른 초록색의 깔끔한 그 새 대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다. 묵직한 느낌의 새 대문은 마치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려면 자신에게 가장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듯이 위엄 있게 다가왔다.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뵙는데, 나를 반기는 것은 할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아니라 쓸쓸한 등이었다. 그 등은 우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운한 감정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저렇게 나와 앉아 기다릴 거면서 왜 그렇게 못되게 말씀하시는 거야?’라는 말이 비좁은 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퉁명스러운 말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내 잃은 슬픔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배려 아닌 배려로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 같다.
우리가 오는 길을 바라보지 않고, 등 돌리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 놓인 빈 의자가 마치 ‘빨리 와, 여기 앉아!’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할아버지의 진심일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치밀어 오르는 서운함을 꾹꾹 누르며, 할아버지에게 어떤 말도 꺼내놓지 못할 것 같다. 할머니가 앉았던 그 의자를 치우지 못하면서 그것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것이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우리에 대한 기다림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빈자리의 아픔이 치유되는데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빈자리만 볼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에 시선을 돌릴 수 있기를 이번 밝은 보름달에게 빌어본다. 노란 보름달의 따뜻함이 할아버지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할아버지 댁의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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