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기정, 염창희, 염미정 엄마예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이 하길래 여름이라 그런가 했더니 죽을병이었나 봐요. 밥을 안쳐 놓고 잠깐 누웠다가 일어나려고 했는데, 영원히 못 일어났어요.
이제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나 싶어서 한참을 내 몸 옆에 앉아 있었어요.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내가 죽은 건지, 산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앉아만 있었어요. 내 마음을 아는지 누가 데리러 오지도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밥이 타는 냄새가 나서 가스 불을 끄려고 일어났어요. 그런데 나는 이제 가스 불도 끌 수가 없더라고요. 밥이라도 다 해 놓고 누울 걸 그랬어요.
우리 창희가 들어와서 나를 깨우는데, 애간장이 끊어지는 거 같더라고요. 죽었으면 죽은 데로 마음이란 것도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모성도 내 생명처럼 끊어져 나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내 새끼가 내 눈앞에서 무서워 서럽게 우는데 나는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이보다 더 큰 벌이 어디 있어요? 이건 해방이 아니에요!
자식들 놓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서른 넘어 사십이 다되어 가는 자식들이지만, 난 저 애들을 놓고서 갈 수가 없어요. 엄마 없이 우리 애들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막막하고 두려워서 갈 수가 없어요. 자식들이라도 다 여의고 왔으면 이렇게 발을 못 떼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지요. 기정이 사귀는 사람에게 밥이라도 사주고 왔고, 구 씨에게는 밥도 많이 해주고 왔으니까요.
미정이가 구 씨랑 사귄다고 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어요. 솔직히 믿고 싶지도 않았어요. 구 씨 덕에 내가 일을 좀 덜었으니 그 사람은 나에게 그저 고마운 사람이고, 우리 집 양반이 마음에 들어 하니 신기한 사람이긴 하지만, 어디서 뭐하고 살다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이름조차 모르는데 그런 사람하고 사귄다니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조용하고 수더분한 우리 미정이는 아주 고집이 세요. 이러고저러고 흥정이 안 되는 애예요. 지 아빠를 꼭 빼다 박았어요. 내가 말린다고 들을 애도 아니고, 그래서 오히려 시끄럽게만 될까 봐 입을 닫았지요. 우리 미정이를 믿고, 구 씨에게 그저 느껴지는 진중함과 솔직함을 믿어보자고 수도 없이 혼자 속으로 다짐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구 씨가 떠났을 때는 ‘다행이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우리 미정이가 울면서 시장을 돌아다녔다니... 집에서는 티도 안 났던 애가 그랬다니 나는 모른 척만 하면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던 게 미안하더라고요. 항상 그랬어요. 기정이랑 창희만 있었을 때는 여행도 가끔 다니고, 애들이 해달라는 것도 좀 해줬던 것 같은데, 미정이 낳고는 시누이 빚보증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뭐하나 애한테 신경 써 줄 수가 없었어요. 우리 미정이는 혼자 크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애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었나 봐요. 엄마가 자기를 봐주지 않으니까...
엄마인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우리 미정이가 안쓰럽더라고요. 그럴 줄 알았으면 구 씨에게 좀 더 잘해줄 걸 그랬나 봐요. 구 씨가 술도 끊고, 돈도 많다는데 싱크대 만드는 거랑 농사짓는 거 빼고 뭐라도 하면서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집 양반이 젊어서 나한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게 마음이 쓰여서 내가 결혼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저 양반, 나 아니면 누가 거둘까 싶었는데... 아휴, 내가 미친년이지. 나 떠나고 그렇게 빨리 재혼할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래도 다행이지요. 애들 귀찮아지지 않게 된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 집 양반 나중에 저승 오면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나 염제호 씨랑 살면서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거든요. 나랑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볼 여유도 없이 살았어요. 눈이 내리는지,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고 살았다고요. 이렇게 죽어야 해방될 줄 알았다면 살면서 좀 더 행복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요.
염제호 씨랑 살면서 내가 잘한 건 우리 애들 셋 낳은 거지요. 내 성질을 닮은 기정이, 내 얼굴을 닮은 미정이 그리고 내 성질과 내 얼굴을 모두 닮은 창희까지. 그 삼 남매 속에 그렇게 내가 살고 있었어요. 꼬물거렸던 그 아기 때 그 자식들이 주던 그 행복으로 평생을 버텼어요. 근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또 그것이 행복인 줄은 몰랐지요. 그것들이 다 커서 더 큰 속을 썩이니까 어렸을 때 방긋방긋 웃어주고, 말도 들어주던 그 시절 아이들이 그리우면서 나도 그때 ‘행복했었구나’를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아쉽지요. 그 당시에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쉬워요.
염제호한테 시집와서 나를 다 갈아 넣고 살았어요.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잊고 살았어요. 내 이름을 잊은 지는 오래됐지요. ‘엄마’가 내 이름이에요. 우리 집 양반은 그조차도 부르지 않아요. 그저 눈알만 굴려대지요. 내 이름은 등본이나 떼어 봐야 거기에 쓰여 있어요. 그랬던 내 이름이 죽으니 자기 몫을 하긴 하더라고요. 내 뼈가루가 담긴 그 하얀 그릇에 대문짝만 하게 내 이름이 까맣게 쓰여 있더라고요. ‘곽혜숙.’ 꼭 남의 이름 같아요.
시누이 빚보증을 잘못 서 줘서 우리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징그럽게 고생했어요. 잘못은 염 씨들이 하고 그 뒤치다꺼리는 우리 애들이랑 내가 같이 한다는 것이 너무 성질이 났어요. 집안일에 밭일에 공장일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 애들 크는 것도 제대로 못 봐주는데 그것까지 내 몫이었지요. 내 몸이 몇 개가 되어야 그것들을 잘 해낼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이 짓거리가 언제 끝이 나는지... 끝이 있기는 있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지요.
나도 가끔이라도 다른 여자들처럼 멀쩡한 옷을 차려입고 백화점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차라도 한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따가운 햇볕에 나를 가리기만 급급했어요. 나는 식구들이 마실 주스나 미숫가루를 만들기에 바빴고요. 하루 세끼 식구들 밥 차리는 것으로도 시간이 모자랐어요. 싱크대 공장에서 날리던 나뭇 가루를 몇 개월 마시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죽기 전에 욕이라도 시원하게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내가 세상에 남긴 건 내가 낳은 자식 셋과 내 무릎에 있던 인공 관절이에요.
자식 있는 남자를 만나는 기정이, 알코올 중독자에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만나는 미정이, 돈 쓸 줄 모르고 허영만 있는 창희 그리고 소처럼 일만 하는 염제호. 이 염가들을 놓고 가려니 처음에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내 생각보다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고, 우리 집 양반도 새 사람 만나서 잘 살아가는 것이 이제는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오히려 내 빈자리를 서로 채워주면서 더 단단하게 살아갈 것 같아요.
이제 나도 해방이에요.
나는 우리 애들 모두를 추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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