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춥고 무섭던 그 해 겨울

:슬의생 2 제1화에 등장한 ‘연우 엄마’

by 박세미

아이가 태어나서 병원에서만 지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 엄마는 아이가 떠난 병원에 수시로 드나든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도 같고, 병원을 살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엄마는 비가 오는 날, 두고 간 우산을 가지러 또 병원을 찾았다. 아이의 생일날이라고 그 엄마는 케이크를 사 가지고 왔다. 당직 간호사는 혼자 있어서 케이크를 다 먹기 어려우니 가지고 가라고 한다. 아마도 병원 사람들은 자주 찾아오는 그 엄마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아이의 주치의였던 의사 선생님과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그 엄마는 자신이 병원에 오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이곳에 오면 나를 연우 엄마라고 불러요.”

“남들은 힘든 기억이니까 빨리 잊으라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이가 떠난 병원에 아이의 생일날 케이크를 사 온 엄마의 입에서 ‘연우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한다. 잠시나마 이 엄마가 의료과실 소송 자료를 찾으려고 병원에 오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이 사람을 엄마로 본 것이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동시에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 2013년 12월을 소환했다.




그 해 겨울, 나에게는 잔인한 시간이었다. 4살 된 아이가 왼쪽 무릎이 아프다며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동네 정형외과에 갔는데, 며칠 동안 경과를 지켜보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집 근처 큰 병원에 일주일 정도 다녔다. 병원 안에서 검사를 받느라 아이를 안고 다니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것들이 뒤엉켜 내 전신에 흘러내렸다.


아이가 아프다고 말한 곳은 정확히 왼쪽 무릎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어려서 표현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서 왼쪽 고관절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만 했다.


특별한 약도 처방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집에서 아픈 부위를 만지지 않고 아이를 따뜻한 물속에 넣어 놓았다. 그렇게 2주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갑자기 아이의 무릎이 펴졌다. 나는 이제 다 나았다고 생각해서, 대학병원에 예약을 한 것을 취소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친정 엄마는 아이가 이제 괜찮아도 확신할 수 없으니 병원 예약을 취소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토요일 오전, 병원 검진을 받고 소풍이라도 갈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세 식구는 병원에 갔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소풍은 가지 못했다.


아이는 모든 검사를 다시 받았고, 무릎에 염증이 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다. 의사는 서둘러 수술을 받을 것을 권했고, 아이는 그날 바로 입원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소풍이 입원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집에 이런저런 물건을 챙기러 갔고, 나는 아이와 입원 시간을 기다리며 병원을 돌아다녔다. 소풍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걱정하면 아이가 더 놀랄까 봐 담담한 척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아이가 입원했을 때 나에게 가장 위안이 되었던 말이 ‘얘는 왜 입원했어요? 멀쩡한데’였다. 병동 안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많이 아픈 아이들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왜 입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이 옆의 침대에 누워 있던 아기는 태어나서 병원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백일도 돌도 모두 병원에서 지냈고, 아침이면 여러 과의 담당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회진을 오셨다. 건너편에 누워 있던 아이는 기형적인 손가락을 수술했고, 그 옆의 아이는 뇌수술을 받았다. 모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우리 아이의 아픈 왼쪽 무릎이 가장 큰 병 같이 느껴졌다. 조금 더 일찍 이 병원에 왔다면 정말 별 수술이 아닐 수 있었겠지만, 2주간 방황하면서 염증 부위가 커져서 성장판이 건드려졌다. 아이는 자라면서 지속적으로 무릎 상태를 확인해야 했고, 다리가 휜다면 재수술을 몇 번이나 받아야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낯설던 병원 생활이 1주일 정도 지나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크리스마스만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당시 나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아이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나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믹스 커피만 마셔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눈이 오는 날, 우리 엄마가 왔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갈비를 하나 가득 싸가지고 왔다. 나는 ‘무거운데 뭣 하러 이걸 해 가지고 왔어’라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그 갈비를 아이 밥상에 올렸다.


우리 엄마가 말했다. ‘너 먹어!’ 엄마는 아이가 아니라 나를 먹이려고 그 먼 곳에서 그 무거운 것을 힘들게 들고 오셨다. 고마운 마음보다 짜증이 앞섰고, 눈물이 쏟아져서 먹을 수가 없었다. 고기를 잘 먹지 않았던 아이가 다행히도 그 갈비를 맛있게 잘 먹었다.


수술 전날, 병원에 있던 예배당에서 안수 기도를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휠체어에 아이를 태워 갔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를 외면하고 산 시간이 적지 않다. 그때는 그 기도를 받지 않으면 아이의 수술이 잘못될 것 같아서 무조건 매달렸다. 안수 기도를 받고 올라와서야 나의 마음이 편해졌다.


병실에 들어오는데 전공의를 마주쳤다. 짤막한 인사를 하고, 아이의 침대에 와 보니 친구가 두고 간 파이가 보였다. 파이를 들고 무작정 그 전공의를 따라갔다. 나는 ‘내일 수술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며 파이를 건넸다. 전공의는 자신이 직접 수술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수술 당일, 아이 침대 앞에 아이를 수술실로 데려갈 침대가 놓였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침대에 올라탔다. 그리고 남편의 신발을 그 침대칸에 놓았다. 담담하던 내가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아이가 마취되는 것을 보고 남편은 그 신발을 신고 나왔다. 그 사이 남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나와 남편은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수술실 앞에 앉았다.


나는 수술시간 내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수술 시간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엄마에게라도 쏟아내려고 나는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다. 나의 불안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로 바뀌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고, 눈에서는 물이 마구 떨어졌다. 앞뒤 없이 쏟아내는 내 말을 엄마는 단번에 진압했다. “괜찮을 거야. 엄마가 교회에 가서 내내 기도하고 왔어.” 나는 주저앉아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다.


아이의 수술이 잘 끝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성장판을 좀 더 건드렸기 때문에 자라면서 재수술 확률이 98%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수술 전보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 해 나는 소원을 이루었다.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냈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더 어느 크리스마스보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깁스를 풀고 유치원에 갔다 온 아이가 자신의 수술 흉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엄마, 이거 친구가 지네 같다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네. 지네 비슷하네. 그건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표시야. 아무나 갖고 있지 않아.”


나는 평상시에 아이의 왼쪽 무릎의 상처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 안쓰럽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앞서가는 아이의 두 다리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고, 아이가 잘 때 아이의 무릎을 감싸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일상이 생겼다.


그 뒤로 아이는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1년 뒤에 한 번씩 가는 것으로 기간이 길어졌다. 아이가 이제 12살이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두 다리가 곧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년에 한 번씩 아이의 주치의를 만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한 ‘연우 엄마’의 모습이 2013년 너무나 춥고 무서웠던 그 해 겨울이 떠올랐다.


그 드라마 안에서 연우엄마와 의사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아픈 아이의 모습을 가장 많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와 의사 선생님뿐이라는 것이 공감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나는 무사히 나의 작은 그 고개를 잘 넘었는데 ‘연우 엄마’는 그 큰 산을 넘지 못한 것 같아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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