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헤어졌다. 처음에는 이별을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그 사람을 떠날 수 있어도 그 사람은 나를 떠날 수 없다는 오만함의 착각이 내게 있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점점 이별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다투고 나면 나는 아주 쉽고 가볍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헤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익숙해진 것들을 모두 도려내는 것이 헤어짐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별의 이유도 나 밖에 모르는 나의 이기심이 아니었던가. 나는 사회생활을 통해 내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면서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사랑까지 얹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었다. 나의 미래에 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별을 선포했다. 나는 이별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이라는 말도 나의 일방적이고 막무가내의 이별에 대해 뭔가 면죄부를 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 내가 벌인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처음 겪는 이별이 힘들다고 친구들에게 칭얼거렸다. 언제까지 칭얼거려야 하는지, 얼마나 더 칭얼거려야 그 이별이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제어되지 않던 내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별을 인정하는 데만 1여 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이 내가 이별을 제대로 마주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1년 여 동안 나는 모든 것들을 애써 외면하기만 했다.
캐나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내가 어떤 말을 앞 뒤 없이 떠들어 대도, 내가 미친 듯이 울어 대도 ‘괜찮다’고 해 줄 친구가 당시 토론토에 있었다. 그 친구를 만나서 나의 분노, 후회, 이기심 등을 다 쏟아 내고 싶었다. 내가 벌려 놓은 많은 일들에 대한 지친 감정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도 나의 상처에 천천히 딱지가 앉기 시작했던 것 같다. 누가 낸 상처도 아니고, 내가 후벼 판 상처라서 더 아팠던 그 상처에 내가 점점 둔해지는 것 같았다. 나의 통증은 사라졌다. 그래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면서 나는 더 이상 내 안에 그 이별의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려움보다 더 큰 설렘을 안고 토론토에 도착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나는 긴장하기보다 마음에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항상 인생의 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진학해야 했고,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실패도 경험했다. 그 실패를 만회하면서 나는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중요시 여겼다. 그런 나 때문에 나는 매번 더 큰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토론토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을뿐더러, 내가 기대하는 일도 없는 곳으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내 힘든 것을 다 털어놓고, 새로운 것을 담아낼 준비만 하면 되었다.
친구의 집에 들어서자 은은한 오렌지 빛 조명과 차가운 공기가 나를 먼저 반겼다. 텔레비전 대신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방 안에서 바라본 창문 밖의 세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창문 너머 시계탑과 멀리 보이는 백화점 불빛들이 마치 내가 삼성동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아래 지나다니는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이곳이 삼성동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빌딩들 사이로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내 마음처럼 여기저기 얼어 있었다. 그리고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쓰레기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쌓여 있었다. 나는 그냥 웃음이 났다.
친구는 내가 온 것을 환영하면서 라디오를 끄고, 벅스 뮤직에서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첫 번째 음악이 이기찬의 <감기>였다.
(......) 그래 줄게 지우려고 준비해볼게
잊어줄게 잊으려 노력해볼게
왜 안되니 널 지우려 애써봐도
기다리면 올 것만 같은데
일 년이면 되니 돌아올 수 있니 (......)
노래 속의 남자가 연인을 잊으려고 노력해보는데 그것이 어렵다면서 1년이 지나면 돌아올 수 있는지를 그녀에게 묻고 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1년이 지나면 다시 만나도 되는 건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동시에 노래에서 ‘잊겠다면서도 또 기다리면 올 거냐’고 묻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다시 만날 마음은 없으면서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진 혼란스러운 내 마음 같기도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 노래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들었다.
흘러나오던 노래가 끝났다. 친구와 나는 다운타운을 구경하다가 다양한 술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주류 백화점에 가서 사고 싶은 술들을 모두 샀다. 당시 우리가 자유를 만끽하고 일탈하는 최소한의 행동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들만의 파티를 했다. 파티의 시작은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한 잔씩 마시는 것이었다. <감기>가 가장 먼저 흘러나왔다. 그 파티에서 나는 내 이별을 묻어 두려고 혹은 이별의 아픔을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안에 있던 이별은 비행기를 타면서 이미 다 털어냈다고 생각했었다. 친구와 나는 신나게 술을 마셨다. 친구와 내가 낯선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신났던 이 파티는 ‘이불 킥’으로 끝났다. 몸도 힘들었지만, 믿고 싶지 않은 나와 친구의 행동들이 흐릿흐릿하게 토막토막 떠올랐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 많은 이유들로 우리는 울기도 했고, 노래도 시끄럽게 따라 불렀다. 그런데 정말 내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던 기억이 중간중간 끊어진다. 바로 내 친구가 헤어진 내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내 친구도 나의 예전 남자 친구와 친하게 지냈던 사이여서 담담한 내 이별 이야기를 듣고 술김에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내 친구도 나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완전히 이별했다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았던 내 마음의 찌꺼기들을 내 친구는 보았던 것 같다.
내 친구가 예전 남자 친구와 담담히 통화하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통화를 끝내고 내 친구는 무거운 입을 열어 나에게 ‘이제 그만 잊어라’고 했다. 전화 통화를 끝낸 친구의 어두운 얼굴만이 내 눈에 담겼다. 마치 내 친구가 몸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여기까지 내 머릿속에서 만화 영상 같은 장면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화가 난 친구의 목소리가 내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반갑게 인사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예전 남자 친구의 태도가 상당히 기분 나빴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나에게 소리로만 남았다.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영상이지만, 그 일로 나는 복잡하고 구질구질한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내가 다시 들은 <감기>라는 노래에서 ‘언제까지라도 널 사랑할게’라는 노래를 나는 담담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처음 이별은 요란스럽게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내가 처음 겪은 이별을 감기처럼 앓고 나는 개운하게 일어났다. 덕분에 나의 토론토 생활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충전하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이기찬의 <감기>를 들으면 추웠던 겨울 토론토 시내와 내 친구 방의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조명이 느껴진다. 그곳에서 어린 나는 내 이별에 대해 위로받으려고 이 노래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창피해서 잊고 싶은데 절대 잊혀지지 않는 전화통화의 악몽을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포장해 놓았다. 동시에 그 노래 속에서는 이별의 아픔을 충분히 앓고 나서 조금은 성숙해진 어린 시절 내 모습도 되살아난다. 아파해야 할 일은 충분히 아파해야 그 안에서 나를 지켜내는 면역력이 생기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