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만 버티면 되는 줄 알았다. 코로나가 조금 주춤한가 싶었는데, 다시 제자리이다. 더 우울해졌다. 이젠 조금도 더 못 버티겠다. 야속하기만 하다. 모두가 이 정도로 노력했으면 그만 사라져 줄 것도 같은데,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 공포영화 같다.
코로나로 우울해지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밝은 모습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로맨틱 홀리데이였다. 서너 달 동안 스무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내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새벽 1-2시다. 나는 이 시간이 되면 이 영화를 혼자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아서 보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듯이 보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그동안은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딘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을 수 있었다. 코로나 없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휴가(Holiday)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말은 내 안에 갇혀 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밖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새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기대하게 하고, 내 주변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상과 다른 느낌의 하루가 시작될 것 같은 기대를 준다. 그런데 그 휴가가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낯선 곳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설렘과 두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관문을 나설 수 없는 지금의 나에게 이 영화는 그런 휴가와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낯선 장소에서 철저히 혼자서 휴가를 즐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으로 힘든 줄도 모르고 무서운 것도 없이 하루하루를 신이 나게 지냈었다. 하루 종일 한국어 한 마디 못하고 낯선 말로 쭈뼛거리며 낯선 도시를 헤매고 다닌 날이 있었다.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 한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맴돌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레코드 가게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편안하게 음악을 듣고, 서점에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앉아서 보고 싶던 책을 모조리 다 읽은 적도 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하루를 꽉 채웠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쫓아다녔다. 나는 그 도시도 몰랐고,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 중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이면 그만이었다. 그때 나는 만나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이 영화는 그 시절의 나를 불러냈다.
실연당한 두 여자가 집을 바꿔서 휴가를 보내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집을 서로에게 내어주면서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여자는 영화 예고편을 제작하는 사업가인 미국에 사는 아만다이고, 다른 한 여자는 영국에서 웨딩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아이리스였다.
아만다는 미국 서부의 대저택을 뒤로하고, 영국의 동화 같은 오두막집에서 혼자만의 휴가를 보내려고 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영국의 외딴 마을에서 아만다는 혼자가 되고자 했다. 그녀는 먹을 것을 한 아름 사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묻고 자신이 만든 영화 예고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그녀는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설렘도 잠깐 뿐이었다. 아만다가 마주한 오두막집은 동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 추운 집안의 공기는 아만다의 외로움을 극대화할 뿐이었다. 그녀의 외롭던 휴가는 아이리스의 오빠인 그레엄이 불쑥 찾아오면서 설렘 가득한 예측하기 어려운 휴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만다와 그레엄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렸지만, 다른 국적과 다른 상황으로 인한 서로의 다른 모습을 더 크게 느꼈다. 그러나 이들이 시간을 함께 하면서 다른 조건들은 점차 자신들의 마음 뒤편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가면 뒤에 넣어두었던 자신만의 상처를 드러내 놓고, 그것을 서로가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만다는 부모가 이혼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떠난 이후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랬던 아만다가 그레엄과 헤어져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그레엄을 만나면서 자신의 상처를 마주했고,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그레엄의 사랑으로 생긴 것이다. 그레엄 역시 아만다의 서프라이즈 등장으로 두 딸과 함께 생활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아만다에게 그대로 보여주게 되었다. 아만다는 그레엄의 일상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 자연스러움이 그레엄이 아만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아만다 역시 자신의 상처를 그레엄의 두 딸을 통해서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아빠의 자리가 없었던 아만다가 엄마를 잃은 그레엄의 두 딸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아이리스는 3년 동안 만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그녀와 그녀 직장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보았다. 그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낯선 미국으로 도망치듯이 떠나왔다. 따뜻한 햇살과 정신없는 바람이 있는 으리으리한 아만다의 집에서 아이리스는 몸도 마음도 따뜻한 휴가를 맞는다. 한 없이 늪으로 스스로 빠져 들어갔던 아이리스는 이웃의 아서 애봇과 아만다의 동료인 마일스를 만나면서 자신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자존감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아이리스의 연인이었던 재스퍼는 자신의 기분에 맞춰 그녀를 만났던 사람이었고, 아이리스는 재스퍼와의 관계에서 항상 자신의 잘못을 찾았던 사람이었다. 아이리스는 그에 대해 오해한 것이 없는지를 혼자서 곱씹어 보고 혼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재스퍼는 휴가를 떠난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원고를 검토해 줄 것을 부탁할 정도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무례하게 그녀를 찾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이름만 달랑 적힌 엽서를 원고와 함께 아만다의 집에 머무르는 아이리스에게 보냈다. 아이리스를 존중하지 않는 재스퍼를 보면서 아이리스의 자존감이 왜 바닥이 났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너무 무례하고 당연스럽게 하면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그 사람을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익숙함은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한 없이 작아진 아이리스를 스스로가 멋진 괜찮은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 90세의 아서 애봇이다. 그는 아만다의 이웃으로 할리우드의 명성 있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아서 애봇은 당당한 여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그녀에게 추천해 주었다. 그녀가 그 영화를 보면서 서서히 초라함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다. 또한 아이리스는 거동이 불편한 그를 걷게 해서 작가 협회 연설 단상에 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서는 아이리스의 힘을 크게 생각하고 그녀에게 많이 고마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작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리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마일스이다. 이들의 연인에 대한 마음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마일스가 직장 동료인 매기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배신을 당하는 모습에서 아이리스는 자신의 모습도 보았고, 자신의 상처를 마일스에게 드러냈다. 이들은 서로 닮은 모습에 끌렸고, 상처에 공감했고 위로를 받았다.
아만다와 그레엄, 아이리스와 마일스, 이 두 커플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서 위로해 주고, 위로를 받으면서 각자 인생의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시간에서 이루어진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 영화를 ‘로맨틱’보다는 이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도 자신을 찾아가는 그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일에만 파묻혀 있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 아만다와 사랑에 소심해져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리스가 진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상처까지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낯선 장소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 설레게 만들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두 여자가 낯선 사람의 집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음악이 아만다와 아이리스가 있는 공간을 가득 크게 채우며 삐죽삐죽 날카로운 듯, 부드럽게 사방으로 꽂힌다. 그 음악사이로 아만다는 제멋대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인지 몸짓인지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침대에 누운 채로 몸부림치듯이 춤을 춘다. 이들의 춤은 나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들로 인한 지친 마음을 격렬한 몸짓으로 떨쳐 내는 것처럼 보였다. 새로운 행복을 담을 수 있도록 자신의 불행을 비워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의 두려움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안에 갇혀 있는 것 밖에 없다. 그 무력감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매일매일 하루 확진자가 몇 명인지, 우리 동네에서는 확진자가 나왔는지를 신경 쓰고 있다. 매일 한 두 차례 울리는 빨간 안전 안내 문자가 나를 더 안전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의 판단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90세의 노인이 과거의 명성을 현재의 초라함으로 덮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찬찬히 자신의 주변을 보니 그에게는 화려한 과거가 있었고, 그의 하루를 위해 매일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언제까지 떠오를지는 모르지만, 바로 오늘 하루를 함께할 친구들이 그에게는 있었다. 하누카 파티를 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남자들이었고,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살아 있는 전설들이었다. 그들의 대화와 웃음에서 그들의 호흡이 젊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전이나 계획을 실천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요즘이다.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요즘이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것에 흔들리기보다는 나를 굳건히 붙잡아야 할 때가 요즘인 것 같다.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멸망을 앞둔 벼랑 끝에 서서 절망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 아니라, 정확하지 않은 해결책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오늘을 다독이며, 휴가와 같은 하루가 되는 마법을 부려야 할 것 같다.
다만, 휴가는 기간이 정해져 있을 때 소중한 것이다. 무기한적인 휴가는 휴가가 아니다. 그것은 불안감만을 가져올 뿐이다. 아이리스와 아만다도 2주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서로의 집을 바꿨다. 내가 지금 즐기려고 노력하는 이 휴가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내가 예상한 것보다는 빠른 시일 내로 끝났으면 한다. 그 빠른 시일을 누가 정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시일을 정하는 것에 누구 하나 빠질 수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만 그 시일이 조금이라도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고,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영화를 보면서 휴가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마법을 부려보면서 오늘 하루도 잘 살아준 나를 다독여 본다.
https://headla.it/articles/K9jkiRCXYnMVoUmqmvyYDg==?uid=4f8c6c5e6d91434c8dde0827240053c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