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영웅이 되어야 하는 지금

: 윤동주의 ‘자화상’을 마주한 오늘

by 박세미

중국 우한 사람들이 마스크가 없어서 자몽 껍데기를 마스크로 만들어 쓰고, 페트병을 뒤집어쓰고 있던 모습을 뉴스로 보았을 때, 현실 같지 않았다. 장난처럼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점령하고, 마비시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때이다.


코로나가 무서워 네모 반듯한 아파트 안에 갇혀 지낸 지도 6개월이 넘어간다. ‘갇혀 지낸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나의 일상은 6개월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나는 다행히 아직까지는 생계를 잘 유지하고 있고 ,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의 줄어든 행동반경 속에서 남편과 아이만 만나는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나조차도 이제는 이 생활에 화가 나고 힘이 든다. 많이 힘들다.


코로나의 기세가 좀 꺾이는 것 같자 사람들은 어린이날을 즐겼고, 여름휴가를 즐겼다. 그리고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고, 광화문에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이날도 여름휴가도 즐기지 못했고, 다니던 교회조차 나가지 않았고, 광화문에도 가지 않았지만, 코로나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너무 억울했다. ‘코로나가 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의 순간에 몇몇 사람, 몇몇 집단들이 코로나를 되살려 놓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들처럼 이 네모 반듯한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해이해지기는 했었다.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 피해자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의 2월 말에는 한 두 달이 지나면 모든 생활이 다시 원상복구 되었을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이 두렵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전쟁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잘 지키면, 코로나를 정복할 수 있는 무기가 빠른 시일 내에 개발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손에는 백신을 다른 한 손에는 치료제를 들고서 ‘걱정 마세요! 이제 다 끝났어요!’라고 큰 소리로 우리를 안심시키며 늠름한 모습의 영웅이 나타날 줄 알았다. 유령을 잡는 고스트 버스터즈(Ghostbusters)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는 모든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거해 주는 영웅이 나타날 줄 알았다. 막연한 두려움보다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다.


그런데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도 코로나는 우리를 여전히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노인들에게 더 위협적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는 어른도 아이도 가리지 않고 괴롭혔다. 게다가 그것은 변종을 양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완치자라도 다시 감염이 될 수 있었다. 코로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악한 본성을 더 드러내는 것 같다.


코로나는 사람의 몸도 마음도 훼손시킨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나아도 후유증이 남는다고 한다. 그것도 억울한데 사람들은 ‘코로나 확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그들을 외면한다. 코로나 확진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입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게 된다. 코로나 확진자들도 피해자인데, 어느 누구로부터 이해받거나 위로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시켰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왔을 때는 세대 간의 갈등이 일어났고, 교회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많이 나왔을 때는 종교 간의 갈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갈등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단절되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을 피해야 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약속이 줄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피해서 가야 한다. 물리적 관계에서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서로의 눈만 빼꼼히 내놓고서 우리는 서로를 스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한다.




코로나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자연재해로 우리는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올해 유난히 길었던 장마는 강수량도 만만치 않았다. 홍수로 인해 생활터전을 잃은 이재민이 8000여 명, 34,200여 건의 주택 피해가 8월 14일 기준으로 접수되었다고 한다. 홍수피해가 수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강한 태풍이 밀고 올라왔다. 유리창을 깨뜨리고, 길거리 간판을 떨어뜨리고, 가로수를 부러뜨리는 등 막대한 바람과 비를 몰고 온 몇 차례의 태풍은 우리를 또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조차 우리를 가만두지 않고 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쳐서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고, 의료업계와 정부가 의료정책으로 팽팽히 맞서면서 병원도, 환자도 의사도 모두 고생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춤을 추고 있고, 몇몇 지역에서는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와서 물을 사용하는 것에 불편함을 겪었다. 그리고 종교나 인종 같은 사회적 문제가 터져서 사람들 마음을 상하게 하고, 회의감을 갖게 한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가정폭력이나 ‘묻지마’ 사건 같은 폭행 사건들로 사람에 대한 마음이 더 닫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터널 안에서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코로나와 자연재해와 싸우고, 우리들끼리 헤매면서 싸우고 있다. 아주 길고도 어두운 터널이다. 어디선가 햇살이 중간중간 파고드는 것 같은데, 그 햇살이 파고드는 사이로 균열이 일어나서 이 터널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뒤를 돌아보니 들어온 길이 사라져서 돌아갈 곳도 없어진 터널에 서 있는 기분이다.




모두가 억울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황이다. 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나의 집뿐이다. 현관 밖은 무섭다. 이런 무거운 생각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무심코 바라본 거울 속의 ‘나’는 모든 것들을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하루빨리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영웅이 ‘짜잔’ 하고 나타나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영웅이 있을까.’

‘정말 나는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고,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과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유리창에는 아직도 뽁뽁이 비닐이 붙어 있다. 겨울이 지났지만 귀찮아서 그대로 붙여 놓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이 택배 상자 같다. 물건이 깨지지 않도록 상자 가득 뽁뽁이 비닐을 넣어 놓은 택배 상자 말이다. 나는 언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침투될지 몰라서 집안에 갇혀 있는 내 신세가 뽁뽁이 비닐로 칭칭 감겨 택배 상자 안에 있는 깨질만한 물건이 된 기분이다. 택배 상자 같은 집안에서 하루 종일 종종 거리고, 뉴스로 세상 소식을 듣고, 온라인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타인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역시 타인으로부터 최소한의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생활이 나쁘지 않지만, 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의 시간이 나에게 주었던 그 일상의 소중함이 많이 그립다. 이런 감정으로 윤동주의 ‘자화상’을 만났다.


우물 속의 모습이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라는 구절에서 마음이 턱 내려앉았다. 날씨가 유난히도 맑고 하늘이 파랗고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날을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 슬펐던 요즘이다. 우물 안에 한 사나이가 밉고, 가엾고, 그리워하는 그 감정이 지금의 내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들이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괴로워하던 시인의 감정이 지금 오늘을 사는 나의 감정과 소통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러면서도 너만 힘든 거 아니라며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은 위로를 그 시를 통해 받았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화상을 마주하고 자신의 속도를 늦춰서 잠깐 설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읽고 또 읽으면서 서글프기도 했지만, 타인에게 향해 있던 날카로움들이 뭉뚝해졌다. 나를 들여다보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다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벌어진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하고, 자연재해는 미리 예방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사람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만드는 가짜 뉴스, 정책 다툼, 폭력, 갈등 등의 문제는 우리가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좀 덜 괴로울 것이다. 코로나와 자연재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끼리라도 힘을 낼 수 있게 서로 다독이고 위로를 해주어야 할 때이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힘든 시기에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제대로 코로나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제는 코로나 영웅을 기다리기보다는 우리가 모두 영웅이 되어야만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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