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치가 있는 청춘

: 클럽 '닐바나'와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통해 본 청춘

by 박세미

1970년대 통행금지, 심야 영업 금지, 장발 금지, 미니스커트 금지 등 사사건건 ‘금지’가 붙던 그 시절 청춘들을 ‘고고 70’과 ‘쎄시봉’ 영화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의 청춘을 마주하고, 지금의 청춘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고 70’은 1971년 데뷔해서 1980년에 해체된 그룹 데블스(Devils)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리고 ‘쎄시봉’은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함께 노래했던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오근태, 민자영의 음악과 사랑을 그려냈다.


같은 시대에 다른 얼굴을 한 청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고 70’이 화려하고 폭발적인 심야 문화 속의 청춘들을 표현했다면, ‘쎄시봉’은 통기타의 선율 속에 잔잔하고 서정적인 문화 속의 청춘들을 표현했다. ‘고고 70’ 청춘의 얼굴은 열정과 무모함이었고, ‘쎄시봉’ 청춘의 얼굴은 순수와 설렘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고고’와 ‘포크’라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창조해 냈다.




대구의 한 왜관의 기지촌 클럽에서 컨츄리 음악을 연주하던 상규와 강렬한 기타 소리를 들려준 만식이가 만나서 6인조 밴드 데블스를 결성했다. 여기에 상규를 좋아하고 가수가 꿈인 미미가 함께 이들과 동반하여 서울에서 열리는 ‘플레이보이컵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이 무대에서 그들은 해골 무늬 옷을 입고 관 퍼포먼스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내 눈에는 핼러윈 축제 때나 볼 수 있는 퍼포먼스 같았다. 그 시대에 그런 퍼포먼스를 했다니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여기서 팝 칼럼니스트 눈에 띄게 되었지만, 퇴폐 풍조를 근절하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데블스 멤버들은 특별상으로 받은 밀가루로 버티면서 생활하였다.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의 소개로 클럽 닐바나에서 데블스는 노래를 하고, 미미는 그에 맞춰 춤을 추면서 이들의 공연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밤새도록 공연을 즐기고, 통금이 풀리면 클럽에서 나왔다. 데블스는 ‘고고’라는 장르를 만들어 냈다. 군사정권 시대에 문화까지 통제하던 그 시절에 데블스는 정치이념과 상반되는 심야 공연 문화를 ‘고고’라는 이름으로 젊은 사람들과 함께 즐겼던 것이다. 억눌렸던 그들의 감정이 데블스의 음악을 타고 밤새 폭발했다.


데블스의 공연에서 보여주는 젊은이들의 광기 어린 파티의 음악은 클럽 밖의 전경들도 리듬에 맞춰 그들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전경들도 클럽 안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청춘이었다.


‘젊음은 무모함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밤 자기 멋대로 공연한 것에 대해 자신이 치루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은 것을 알면서도 열정 하나로 공연을 밀고 나간다는 것은 청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을 믿고 일방통행으로 달리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쎄시봉에서 노래했던 가수들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60-70대의 노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의 젊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나에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쎄시봉 영화 속에서 오근태와 민자영과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민자영이 강명찬 감독과 결혼하자 오근태는 군대를 갔다. 그래서 오근태는 윤형주와 송창식과 함께 ‘트리오 쎄시봉’이라는 그룹을 만들지 못했다. 윤형주와 송창식은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으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이후, 국가에서 대마초 파동으로 가수들을 단속했다. 경찰서에 끌려온 오근태는 동료들 중 대마초를 핀 사람을 지목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그 혐의의 대상자들 중 민자영을 제외시키는 조건으로 오근태는 쎄시봉 친구들이 대마초를 피웠다고 허위 진술을 한다. 이러한 죄책감에 오근태는 더 이상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오근태가 미국에서 이장희를 다시 만나면서 그의 얼룩진 과거를 정리하게 된다.


청춘은 설렘이다. 맑은 통기타의 선율을 따라 젊은이들의 사랑을 노래하던 그 청춘은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오근태가 민자영을 위해서 기타를 배우고, 이장희가 만들어 놓은 노래를 자신이 만든 것처럼 민자영에게 들려주고,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서로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영화 속의 장면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게 만드는 면이 있다.




1970년대는 독재정치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사회적 과제 아래, 누구라도 자기 목소리는 숨기고 생계를 위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뛰던 세대들이 살았던 시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없는 시대였다. 무엇하나 자신들 마음대로 표출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래서 청춘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기분으로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바위가 부수어지지 않아도 계란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것이 청춘이다.


그런 시대 속의 청춘 중에 나의 부모님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아빠의 장발과 엄마의 미니스커트가 영화 속에서 살아 나왔다. 처음으로 아빠와 엄마의 모습만 있던 나에게 내 부모의 청춘에 대해서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도 젊은 아빠와 젊은 엄마에 지나지 않았었다.


나는 그들의 청춘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들려주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나 군대 이야기 등과 같은 그들의 시절은 그들 인생의 한 조각이 되어 내 머릿속에 떠다닐 뿐이었다. 그것들은 내 마음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부모님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눈앞에 그 시절이 펼쳐진 것 마냥, 내가 집중해서 듣던지 말던 지 자신의 이야기를 즐겁게 꺼내놓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부모님은 30-40년 전의 일은 상세하게 기억한다.


교회에서 기타를 치던 우리 아빠, 가수가 되고 싶었던 사촌 형을 따라 레코드 사를 돌아다녔던 우리 아빠, 할머니 허락 없이 몰래 나가서 친구들 만나서 놀다 들어와서 엄청 혼났던 우리 엄마, 미용실에 선금을 미리 주고 자주 가서 머리를 하고 손톱 정리를 했던 우리 엄마는 나에게 그려지지 않는 청춘이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고, 할머니 눈치를 보고, 자신을 꾸미는 것에 집중하는 내 부모님의 모습을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는 결혼하고 난 다음부터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자식은 내가 없던 시절의 부모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


두 영화를 통해 1970년대 부모님의 청춘과 1990년대 나의 청춘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 청춘도 나의 청춘처럼 무모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설레었다. 그리고 그 청춘이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도 그대로 살아 있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청춘의 모습은 같을 것이다.




청춘은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 있는 배짱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청춘일 때는 내 손에 무엇이 있는지 나만 모른다. 청춘이 눈부시다는 것을 그 시절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청춘에게는 좋은 기성세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고 70’에서는 ‘너희 놀고 싶지?’라고 물어주던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이 있었고, ‘쎄시봉’에서는 쎄시봉에서 노래하던 가수들을 존중해 주던 쎄시봉 사장이 있었다. 이들 같이 청춘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기성세대가 청춘을 더 빛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라때’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나 때는 말이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소리를 축약시켜서 소위 ‘꼰대 노릇’의 서두를 열어주는 단어를 말한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 청춘들이 얼마나 편하게 사는지를 느끼게 해 주는 말들 앞에 이 말이 보통 붙는다. 그래서 이 말이 등장하면 청춘은 웃음으로 자신의 귀를 닫는다. ‘당신들의 지나간 청춘으로 지금의 내 청춘을 판단하려 하지 마세요’라는 마음이 저절로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말하는 입장에서 변명해 보자면, ‘라테’에는 지금을 지적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미처 그것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도 묻어 있다. 내가 청춘이었던 시절에 내 청춘의 온전한 모습을 알지 못했고, 이 청춘이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기 때문이다.


청춘은 어떤 사회에든지 존재하고, 그 시대 한가운데서 꽃을 피우게 되는 것 같다. 청춘은 절대치가 있다. 70대에게 40대가 청춘이 아니고, 내가 열정을 가지고 이루어내는 그 시간이 청춘이 아닌 것 같다. 청춘은 세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세상을 두려움 없이 만나서 내가 부서지더라도 마음껏 세상을 누려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청춘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청춘들도 계산기를 잡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중심을 잡고, 알지 못하는 세상 속에 뛰어들어 지금을 느껴보라고 다소 버겁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신의 즐거움과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던져 보라는 것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느 순간 바뀌어 있을 것이고, 자신은 그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클럽 닐바나와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노래했던 청춘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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