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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Dec 13. 2023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존재, 친구

: 왕따 호랑이와 호랑이 꼬리에 핀 민들레의 동거 이야기

이지은, 『친구의 전설』(웅진주니어, 2021)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 



이 말로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호랑이가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의 마음과는 달리 다른 동물들은 그 말에 모두 등을 돌린다. 그저 성격이 고약한 호랑이일 뿐이다. 



항상 심심하게 혼자 놀던 호랑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자신의 꼬리에 말이다. 호랑이 꼬리에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친구가 된 것은 아니었다. 호랑이는 민들레를 떨어트리려고 했고, 민들레는 호랑이 꼬리에서 떨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서로가 떨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호랑이와 민들레 모두 힘들 뿐이었다. 그래서 호랑이와 민들레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되었다. 



민들레와 한 몸이 된 호랑이는 예전의 호랑이가 아니었다. 호랑이는 다른 동물들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들을 도와주라는 민들레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뜻하지 않게 다른 동물들을 돕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민들레는 호랑이를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진정시켜 주기도 하면서 호랑이의 기분을 잘 살펴주었다.  



동물 친구들은 음식을 준비해 호랑이와 민들레를 대접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들은 이제 잡아먹지 않을 테니 먹을 것만 내놓으라고 협박만 하던 이전 호랑이의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호랑이 또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민들레의 꽃잎이 하나씩 떨어질 때가 되었고, 호랑이의 털도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이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노란 민들레와 누런 호랑이가 어느새 하얀 민들레와 하얀 호랑이가 되었다. 이들은 하얗게 된 자신들 모습을 멋지게 받아들이고 신나게 더 놀기로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서글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주름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많은 경험으로 세상을 알게 되면서 생긴 시간의 흔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대하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얀 민들레와 하얀 호랑이가 숲 속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둠 속에 숨겨진 덫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밤산책을 하다가 덫에 걸렸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들이 이 위기를 벗어날 생각을 하던 중 민들레가 호랑이에게 ‘후’하고 불어도 눈감지 않는 게임을 하자고 한다. 게임이 재미있을 것 같던 호랑이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신이 났다. 아마 호랑이가 혼자였다면 절망스러운 상황이었겠지만, 민들레와 함께 있어서 그 상황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을 제안한 민들레가 먼저 힘껏 호랑이 눈에 대고 ‘후’하고 불었다. 호랑이는 게임에 이기려고 눈을 부릅뜨면서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이겼다는 기분에 들뜬 호랑이는 지쳐 있는 민들레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채, 자기가 공격할 차례인 것에만 신이 났다. 



잔뜩 설레는 기분으로 호랑이가 민들레의 눈에 대고 ‘후’하고 불려고 하자, 민들레가 묻는다. 



“호랑이, 우리 이제 친구지?”



모든 신경이 게임에 이길 것 같던 기대감에 쏠려 있던 호랑이에게 던져진 민들레의 이 질문은 호랑이의 온몸에 꼿꼿이 서 있던 승리의 신경세포를 푹 꺼지게 했다.  



호랑이는 민들레의 존재가 너무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것을 무엇이라고 명명해야 하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아마도 이제까지 호랑이에게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친구’라는 말이 주는 의미이나 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호랑이는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바로 친구라고 답했다. 아마도 호랑이는 친구라는 것은 자신에게 민들레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호랑이는 민들레의 질문에 친구의 정의가 생긴 것 같다.  



호랑이는 힘껏 불었다. 





‘후~~~’



그리고 하늘로 한 올 한 올 씨앗이 되어 날아가는 민들레를 보며 호랑이는 당황했다. 민들레는 떠나가면서도 호랑이에게 잘했다고 마지막 칭찬을 하면서 날아갔다. 



깜깜한 밤하늘 위를 반짝이며 날아가는 하얀 민들레 홀씨를 부엉이가 보고, 호랑이가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숲 속 동물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들이 힘을 합쳐 호랑이를 함께 구해냈다. 민들레가 떠난 자리를 이들이 채워주었다.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가 다를 것이고,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자신의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서 그것이 또 변할 수도 있다.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묵직한 나만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호랑이와 민들레처럼 처음부터 맞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 혹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들처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서로에게 맞춰주며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가면서 고마워하는 관계가 친구인 것 같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즐겁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애절해지기도 했다. 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나에게 친구는 어떤 존재인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친구인지에 대한 물음표가 계속 떠올랐다. 동시에 앞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다기보다는 친구란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나 역시 친구의 부족한 면을 받아줄 수 있기도 해야겠지만, 굽이굽이 꺾인 서로의 인생을 함께 걸어간 시간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민들레와 누런 호랑이에서 하얀 민들레와 하얀 호랑이로 변해가는 그 시간이 이들을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지나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해준 친구들과 그들의 인생의 모든 순간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 감사하게 다가온다. 







<우리 아이의 한 마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만의 ‘‘친구의 전설’ 이야기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힘든 것을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






https://headla.it/articles/PcK67V9Shfu1EK0OVOJ6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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